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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깊은 사색적 주의

by phobbi posted Jan 10, 2025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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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1-10

2025. 1. 10.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hyperattention)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의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 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이 공동체의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 우리의 활동 공동체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한병철 지음/김태환 번역,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 2012. 03. 05.)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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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고대인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색적 주의”, “깊은 심심함”,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다.

분초(分秒)를 다투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절대 놓쳐선 안된다.

 

산만한 삶,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현대인은 삶의 짙은 농도를 잃어버렸다.

그러기에 얄팍한 불안, 외로움, 두려움에 자꾸 시달린다.

 

아마도 종교 이후의 종교는 이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 향린 목회 6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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