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3.
생명을 살리는 종교와 해로운 종교 사이의 갈등 한복판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관한 근본 문제가 놓여 있다.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버려야 할 가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거라는 가정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과 해로운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이지지들과 해로운 하나님의 이미지들 사이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을 살리는 예수의 이미지들과 해로운 예수의 이미지들 사이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예수의 이미지들 중에도 제국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들이 여럿 존재한다.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 늘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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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종교와 해로운 종교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을 꾀어 소수의 특권층에게 이익을 주고 인류 대부분과 이 지구를 착취와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경제체제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미국에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정교분리 원칙이 존재하지만, 교회와 경제의 분리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지배적 종교와 지배적 경제체제가 서로 협력해서 기독교는 마침내 미국이 선전하는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많은 기독교인이 “이 세상의 종말을 상상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종말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외르크 리거 지음/정준화 옮김, <예수 대 카이사르 : 문명 붕괴 시대에 예수 새로 찾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03. 05.) 2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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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은 과연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해로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을까?
주술공화국이자, 사이비 이단들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주류 개신교는 얼마나 올바른 예수 정신을 지켜왔는가?
“성공과 번영”에 집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개신교와
그것을 선전하는 불량 신학이 가득한 곳에서
예수는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들로 덧칠해지고 있는가?
- 향린 목회 13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