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29.
서양 문명과 역사 그리고 철학적 자기인식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 이념의 이름은 자유와 주체성이다. 자유가 노예 상태의 부정을 뜻하는 한에서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상이다. 마찬가지로 주체성이 자아의 능동적 활동성을 뜻하고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객체성의 부정인 한에서 이것 역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특히 한국인들처럼 오랜 세월 동안 밖으로는 외세에, 안으로는 전제적 지배 권력에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적 억압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유와 주체성이란 너무나도 매혹적인 이상이요 소중한 가치이다. 명목상으로는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이 아직도 남의 나라에 가 있는 이 나라에서 참된 자유와 주체성을 실현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자유란 무엇인가? 서양 정신이 추구해온 자유는 본질적으로 철저한 자기관계에 존립한다. 그것은 자기로부터 있음이며, 자기 곁에 있음이고, 또한 자기를 위하여 있음이다. 주체는 이 자기관계를 통해 자기의 주인이 된다.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서양적 자유는 수동성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발성과 능동성이야말로 자유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수동성을 거부하고 순수한 자발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주체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내 앞에 나와 같은 타자적 주체가 있다면 나는 그 주체에 의해 작용받는 객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나만이 주체여야 한다. 이렇게 타자적 주체 없는 세계에 홀로 군림하는 주체의 존재를 우리는 홀로주체성이라고 부르는데, 절대적인 홀로주체성의 실현이야말로 서양적 자유의 이념 아래 숨겨진 은밀한 욕망이다. ~~
우리는 서양적 자아의 이런 운명을 가리켜 한 번도 타자 속에서 자기를 상실해본 적이 없는 자유로운 주체의 나르시시즘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나르시스가 타자에게 매혹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지만 결과적으로 자기를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나르시시즘에 빠진 서양적 자아 역시 타자를 배제한 절대적 자족성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도리어 초자아에 의해 참된 주체성을 상실하고 사물화되고 노예화된다. 그런데 서양 문명이 전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 형식이 되어버린 오늘날, 나르시시즘은 서양의 질병으로 끝나지 않고 전 인류의 생존이 걸린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모두가 자기의 자유와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타자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 각축하는 세계에서 인류의 평화로운 만남과 공존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런 경쟁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예정된 미래는 더불어 몰락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르시시적 문화와 나르시스적 주체성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과제이다.
김상봉 지음, <서로주체성의 이념: 철학적 혁신을 위한 서론>(길, 2007. 2. 20.), 16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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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만 몰입되어 순전히 자기를 위하여 제 맘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큰 병폐이다. 특히 이렇게 생각하는 자가 자유를 추구하며 윗자리에 있을 때, 그 사회는 나락에 떨어진다.
나르시스적 주체성, 홀로주체성을 가진 자가 권력을 잡으면,
국민이 배제되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은 사물화되고,
권력자의 욕망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타자를 대상화하고 물상화할 때 자기마저도 그렇게 된다.
모든 존재는 관계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출된 권력이 선출한 국민을 우습게 여길 때,
그 또한 자기를 상실하고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와 비참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향린 목회 14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