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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정복하는 정신이 아니라 배회하는 영혼

by phobbi posted Apr 12, 2025 Views 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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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12

2025. 04. 12.

 

시카고 유학 시절 탁월한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성과 속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에서 교수가 마지막 날 수강생들에게 한 질문은 종교란 무엇인가?’였다. 학생들의 이런 저런 소감을 다 듣고 나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요약했다. ‘()’(why)’를 묻고 대답하는 것이라면 ()’어디(where)’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우리가 전화를 받을 때나 전화를 걸 때 제일 먼저 알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의 소재다. ()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왜 그리 중요할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도 그렇다.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으며 어느 교회를 다니고 어느 회사를 다니고 어디에 사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장소에 대한 정복을 제1원칙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 아닐까, 라는 말을 던진 교수는 ()’에 대한 내용으로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과 다르게 소재를 파악하여 대상을 분석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정신이 아닌, 끊임없이 사물과 사건의 원인과 이유를 묻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사람, 즉 구도자는 늘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불안한 동거를 인지하면서 진리를 향해 방황하고 배회하는 가위눌린 영혼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꽤 긴 여운과 울림을 준 시간이었다.

 

이상철 지음, <죽은 신의 인문학>(돌베개, 2018. 7. 2.), 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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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은

어느 한 장소에 머물러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방황하고 배회하는 영혼이어야 한다.

 

종교가 말하는 진리는 소유가 아니라 추구이며,

그것도 끝내 모르면서도 가는 길이고,

끝나지 않을 길이며,

다리를 절뚝이면서라도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종교는 답을 주는 곳이 아니다.

더 깊은 질문을 통해 이전 질문을 넘어설 뿐이다.

계속 묻고 파고드는 마음은 하늘처럼 높고, 바닥 모를 심연보다 깊다.

 

- 향린 목회 16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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