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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살만한 삶을 살려면

by phobbi posted Apr 13, 2025 Views 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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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13

2025. 04. 13.

 

자세 교정 전문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누워 있는 건 누워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없어요. 그건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몸을 널어놓은 거에요.” 제대로 눕는 자세는 힘을 뺄 대로 빼서 온몸을 내팽개쳐버리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군.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기를 좋아할 뿐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군. 하긴, 눈 감는다고 다 자는 게 아니고, 입에 넣는다고 다 먹는 게 아니고, 말한다고 다 대화가 아니고, 비난이 곧 비판인 것도 아니고, 아첨이 곧 존경인 것도 아니고, 산다고 다 사는 게 아니고, 죽는다고 다 죽는 게 아니겠지.

 

산다는 건 무엇인가. 숨을 쉬고 있으며 다 사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살아 있는 상태인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사는 것인가. 뇌가 작동하면 사는 것인가. 생존하고 있으면 사는 것인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열악한 요양 시설에서 누워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이들은 생명을 경시하는 게 아니다. 한갓 생존에 불과한 삶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살면서 다들 한 번씩은 중얼거려보았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라는 말들에서 인간은 단순한 생명 유지 이상을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깃덩이 이상의 삶, 의지대로 사는 삶, 보람 있는 삶, 충만한 삶, 그리하여 살만한 삶을 원한다.

 

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5. 04. 10.), 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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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인해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은 죽이더라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대신 영혼도 몸도 죽여 지옥에 보낼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세요.”(새한글성경 마태복음서 10:28)

 

모든 사람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사랑과 친밀함을 원하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한다.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구현되었을 때, 그리고 구현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 때 진정 살아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어떤 삶 속에서 고깃덩이 이상의 삶, 한갓 생존에 불과한 삶을 넘어서서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한번은 한 율법 교사가 예수를 찾아와서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여기서 영생이 바로 진짜 살만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 후 율법학자에게 묻는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는 강도들을 만나게 된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나도 강도를 만나고, 남도 강도를 만난다.

그때 내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남에게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 삶은 의미 있고, 사랑이 넘치며, 소망 있는 살만한 삶일 것이다.

 

 

 

 

- 향린 목회 16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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