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매체-기계와 사람의 관계는 당연히 일방적일 수가 없다. 철학자 헤겔은 주종(主從) 관계에서도 서로 되먹히는 상호 영향의 변증법을 밝혔지만, 사회생활의 중요한, 포괄적인 조형력으로 작동하는 갖은 매체들은 이미 일방적인 이용과 조작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는다. 자크 엘륄이 말하는 기술의 ‘수렴 현상’에 의하면, ‘기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사이보그처럼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우리 시대의 인간은 이미 매체-인간(내가 흔히 ‘휴대 전화-인간’이라고 하듯)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반 일리치는 도구가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 성장하면 그 사용자의 의존, 착취, 무력감을 증가시킨다면서, 한 가지 유형의 도구-매체가 전체를 지배하는 이른바 ‘근본 독점’을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전 포괄적 규제력을 지닌 매체-기계들의 견고한 네트워크이며 조직적 시스템이므로, 개인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식의 논의는 안이하고 비현실적이다.
사실 매체와 사람은 이미 속 깊이 연루하고 있어 한쪽을 뺀 채 다른 쪽을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뜻에서 ‘매체의 죄’를 물어보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자 논의를 좀 더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이며, 갖은 매체들의 위세가 등등한 문명의 전환기를 좀 더 ‘인간적으로’ 살기 위한 지혜의 시작인 것이다.
김영민 지음, <자본과 영혼>(글항아리, 2019. 5. 6) 15-16.
=====================================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을 보낼 때
여러 종류의 금식을 시도하면서,
종종 휴대폰, 인터넷, 영상 금식을 하기도 한다.
올해는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이미 노예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유는 역시 끊임없는 투쟁으로만 얻을 수 있다.
좀 더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휴대 전화 없는 시간들을 만들어야겠다.
- 향린 목회 164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