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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by phobbi posted Apr 20, 2025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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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20

2025. 04. 20.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새번역 성경 요한복음서 20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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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는 부활 신앙을 믿는 종교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이신 나사렛 예수는

유대 성전 당국자들에게 밉보여서,

로마 제국의 반체제 인사로 고발당하고,

흥분한 군중들의 여론몰이 속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

 

뿔뿔이 흩어졌던 예수 추종자들은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으나,

일정한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부터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다.

 

그들의 증언은 대체로 세 가지 내용을 지닌다.

첫째,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선포

둘째, 빈 무덤 이야기

마지막으로 부활한 예수를 보았고 만났다는 보고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셨다는 선언 외에

빈 무덤 이야기나 부활 현현 이야기는 복음서마다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다.

부활한 예수님은 이전의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기도 하고,

못 알아볼 만큼 다른 분이기도 하다.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함께 존재한다.

 

부활은 단순히 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고,

제자들의 환상이나 착각도 아니며,

역사적 사실로만으로 환원하기에는 그 속뜻이 깊고,

단순히 의미 부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분명히 존재한 사건으로 보인다.

부활은 언제나 그 실체에 도달하기 어려운 신비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깊은 슬픔에 잠겨서 울고 있다.

예수가 그녀에게 나타나셨으나 동산지기라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은 언제나 모른다는 것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이해는 언제나 오해 속에서 생성되는 법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를 누군가 옮겨놓아서 무덤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누구든지 그 시체 있는 곳을 알면 자기가 모셔가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가 마리아야!”라고 부르는 순간 그녀는 깨닫는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에게 꽃이 되었다는 싯구도 있지만,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깨달았고, 그래서 응답한다.

 

라부니! 나의 선생님!”

 

마리아야라고 부르고, “나의 선생님!”이라고 응답하는 짧은 대화 속에

긴 이야기가 담겨 있고, 다 풀어내기 어려운 깊은 친밀감이 녹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다.

부활은 이전의 세계와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릴 때, 해 오던 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예수님은 나의 선생님!”만은 아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께로 올라가셔서,

누구나의 마음속에 살아계신 분이 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앞에서 언제나 우리는 응답할 수 있다.

나의 선생님!”

그러나 그분은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다.

그는 동산지기가 아니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할 때마다,

주님께 기도할 때마다,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그분을 따라 살아갈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갈릴리가 아니어도. 2000년 전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주님은 새로운 존재가 되셨고,

우리 또한 지금 여기에서 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16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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