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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바울의 교회 운동

by phobbi posted Apr 26, 2025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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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26

2025. 04. 26.

 

바울의 교회들은 로마제국의 도시들 한복판에서 제국의 현실, 제국의 선전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현실을 형성해 갔다. 바울의 서신들은 제국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신앙적 열정만이 아니라 정치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바울이 사용한 주요 언어들이 로마제국의 선전에 사용되었던 언어들이었음을 밝혀주었다. 로마제국에서 복음’(euangelion), 기쁜 소식이란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알리는 소식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에서 이겼다는 승전보, 즉 시저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에 평화와 안전을 확립했다는 승전보로서 기쁜 소식이었다. 또한 시저는 전 세계에 구원을 가져다준 구세주’(soter)이다. 그러므로 제국의 백성들은 그들의 주님’(kyrios)인 황제에 대해 믿음’(pistis), 곧 충성심을 바쳐야만 했다. 나아가서 사람들은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와 같은 대도시의 민회(ekklesia, 성서에서는 교회로 번역)에서 주님이며 구세주인 시저를 경배하고 찬양해야 했다. 바울은 이러한 로마제국의 선전에 사용되었던 용어들을 물구나무 세워서 예수에게 적용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를 이 세상의 대안적인, 혹은 진정한 황제로 만들고 예수를 반() 제국적인 대안사회의 우두머리로 만들었다. 즉 제국에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는 것이 복음인 것이 아니라 제국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소식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이다. 그리고 황제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구세주이고 주님이며 충서을 바쳐야 할 대상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구세주이며 주님이고 충성을 바칠 대상이다. 또 로마제국 대도시의 민회가 삶의 중심인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선포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재림, parousia라는 말은 제국 각처에 황제가 내림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조만간 다시 오실 것이며, 이때 그분은 주님이자 구세주로서 돌아오시며, 그때는 로마의 통치가 분명히 끝나고 하느님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3:19-21, 고전 15:24-28, 살전 4:14-18)

 

박경미 지음, <시대의 끝에서>(한티재, 2017. 6. 19.),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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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아래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그의 뒤를 이은 바울의 교회 운동은 제국적 질서에 반대하는 다른 가치들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창출함으로써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오늘날도 교회는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

힘에 의해 지배되는 강력한 국제 질서에 맞서서

새로운 사회의 원리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평등하게 사는 세상,

어느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세상이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3:28)

 

그리고 첫 교인들은 이 말씀을 낭독하면서 세례를 받았다.

교회에 들어오려면 사회적 지위, 성별, 지역, 민족, 빈부 등등 할 것 없이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라는 신앙고백을 해야만 했다.

보편적 평등의 원리 속에서 모든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야말로

그리스도교의 뿌리인 것이다.

 

 

 

 

- 향린 목회 17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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