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29.
열아홉 살 때, 내가 자라났고 살고 있던 도시 위니펙의 중심가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줄의 맨 끝에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반대 길 건너편 골목에서 한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 남자는 원주민이었고, 길을 건너면서 “너희 백인들, 우리 땅을 훔쳐간 놈들”하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버스 정류장 줄에 서 있는 맨 앞 사람부터 시작해서 나에게로 향하면서 줄을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남자에게 등을 돌렸고 어떤 사람들은 맞고함을 질렀다. 열 번째 줄에 서 있던 나에게는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모퉁이를 돌아서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약 2분 후 그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 그가 나타난 것은 단지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는 내 앞에 발을 딛고 서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긴장했다. 그때, 그는 내게 아주 부드럽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 짧은 경험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고 나를 깊은 겸손으로 이끌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여기서 공유하는 이유는 불과 6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만남 속에 갈등의 본질에 대한 많은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베티 프리스 지음/김복기 한승권 옮김, <관계 공간>(비공, 2025. 2. 3.), 174.
=======================================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함께 사는 세상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
의견 불일치는 불가피한 상황이고, 그것은 언제나 긴장과 갈등을 불러온다.
그래서 이 갈등을 변화가 필요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건강하게 풀어가는 능력이 중요하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이 일화를 말한 뒤
갈등 전환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나열한다.
갈등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일이 벌어졌을 때, 줄의 맨 끝에 있어서 몇 초라도 생각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정의의 문제, 토지 소유권, 이민, 원주민의 권리 등에 대해 생각해 왔기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려 깊은 대응 방식과 약간의 감정적 거리 두기 또한 갈등을 대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그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자세와 태도,
조건 없는 사랑의 배려를 실천하려는 다짐,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말하고,
모든 상황에서 배울 수 있다는 자세로 경청할 때, 갈등을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고,
또 그런 경험은 나를 성숙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안전하고 살기 좋게 만든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갈등을 다루는 법도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 향린 목회 17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