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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함께 마주하기 | 조은화 | 2018-06-17

by 이성환 posted Jun 22, 2018 Views 23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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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06-17

2018.06.17. 하늘뜻펴기

 

함께, 마주하기

(차별과 혐오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주일)

(에스겔 17:22-24; 고린도후서 5:6-10; 마가복음 4:26-34)

 

 

 

[성정의주일]

 

2017년에 임보라 목사님에 대한 8개 교단에서 이단시비가 있었고 이에 대한 향린공동체 내에서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각 교회 내외에 만연한 성불평등에 대응하고 내부적으로 교인들의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향린공동체 내 성정의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각 교회별 성평등 조직과 사회참여 조직에서 대표를 파견하여 관련된 이슈를 공유하고 공동의 활동 협의하고 대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성혐오 문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교육과 행사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보수 교회의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고통 받는 성소수자들을 생각하고 교회의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서 향린공동체협의회에서는 차별과 혐오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주일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예배 전부터 무지개떡 나눔과 엘라이 운동, 몇 가지 캠패인을 하고, 예배 중에는 성정의를 이루기 위한 공동기도와 청소년부와 함께 드리는 세대 간 통합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달라서 죽는다]

 

(성소수자에 관한 영상과 사진)

 

브라질에 단다라 도즈 산토스는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집에 머물던 중 갑작스럽게 남성 6명에게 붙잡혀 거리로 끌려나와 집단 폭행을 당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러시아 혐오사례도 있습니다. 게이 헌터라고 자칭하고 게이들을 찾아 협박과 폭행을 자행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동성애 혐오 이것은 멀리 다른 나라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앞서 하늘말씀읽기를 해주신 김정현 교우가 소속되어 있는 장신대에서 최근 채플에서 동성애 상징 무재개 옷과 깃발 들고 사진을 찍은 학생 8명에 대해 그들이 사진을 찍은 행위와 사진을 sns상에 올려 퍼뜨린 행위에 대해, 학교교칙과 총회법에 따라 불러 조사를 하려 한다는 학교의 입장으로 사전에 지도교수와 보직교수들이 계속 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행한 학생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유감을 표하며, 교계에 염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는 대학교학처장과 신학대학원장의 글은 기가 막힌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성애, 그리고 성소수자라고 하는 이 말이 어떻게 들려지시나요? 보수기독교단에서는 성소수자들에 대하여 성서에 반하는 죄다. 몸 안에 악령이 들었다. 그러니 기도로 낫게 해야 한다며 구타에 가까운 안수기도를 하고, 성정체성이 바뀌기를 바라며 전환치료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다. 빨리 죽는다.’ 등의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말들을 만들어가며 마녀사냥 하듯 동성애 혐오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사실 잘 모르면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불신과 혐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되게끔 하는 그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의 길을 안내합니다.

 

 

[세상이 보는 눈 VS 믿음의 눈]

 

오늘 에스겔 17장은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이야기로 바빌론과 이집트 사이에 선 유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597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비롯하여 모두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만 남은 유다 왕국에는 여호야긴의 삼촌이었던 마따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시켜 왕으로 세웁니다. 후에 시드기야는 이집트에 기대어 바빌론 왕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이로 인해 예루살렘은 전쟁으로 처참히 짓밟혔고, 시드기야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들이 살해되고 자신은 눈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에스겔은 강대국 틈에 끼어 약소국으로 사는 유다 입장에서 바빌론과 이집트 사이에서 정치적 상황판단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시드기야를 비판합니다. 결국 이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묻기 보다는 성급하게 강대국의 힘에 의존한 것은 아닌가를 묻고 있습니다. 바빌론으로부터의 유다의 구원은 이집트의 힘을 빌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힘의 논리에 따라가서 해결할 게 아니라, 새로운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고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센 강대국일지라도 피조물에 불과하니 거기에 흔들리지 말로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성서는 계속해서 세상과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예수는 당시의 보편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예수님은 특이한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살았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죄인이라 규정한 창녀, 세리, 병자, 이방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나누는 이단아였습니다. 예수의 삶은 당시의 시선으로 봤을 때 성공일까요 실패일까요? 결국 예수는 지도자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이상한 행, 지배층의 규칙을 뒤흔드는 불안하게 하는 반동자였습니다. 예수가 보인 사랑의 방식은 다르고 불편했습니다. 결국 그는 십자가형으로 처절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실패로 끝난 것 같은 이 낯선 내어줌의 삶, 그 죽음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후서에서 말하듯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예수,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예수,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인간에게서 우리는 구원자를 만납니다. 바울이 고백하듯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신비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힘센 것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힘없이 죽어가는 하나님에게서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정말 낯선 것이고, 이 낯설음을 통해 우리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오늘 마가복음 본문은 스스로 자라는 씨겨자 씨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스스로 자라는 씨는 사람은 씨를 뿌리고 땅은 싹을 틔우고 하늘은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 과정이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씨를 뿌린 것은 사람이지만, 정작 자라는 것은 땅과 하늘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의 힘으로 다해보겠다는 전능감은 내려놓게 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활동에 있어 자신의 정치적 힘이나 폭력 사용으로 그 목적을 달성해보려는 이들에게는 경고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씨만 뿌리고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가?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일뿐만 아니라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무엇보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의 수고와 함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장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 것, 기다리다 보면 하늘과 땅은 열매를 맺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힘이 필요하겠지요.

 

이것과 연계하여 겨자씨 비유는 단순히 작은 것이 커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 작아 눈에 보일까 말까합니다. 더군다나 나무가 아닌, 자라나도 나무와는 비교가 안되는 잡풀입니다. 기득권자들에게는 잡풀로 인식되는 민중들의 살은 겨지씨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죄인으로 취급되며 소외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이 비유는 이렇게 당당히 이야기 합니다. 니들이 세상을 품고 구원할 것처럼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실상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이 이루어간다. 그들에게 새들이 깃들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존의 인식의 틀을 깨버립니다. 보잘 것 없이 초라해 보이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되는, 넝쿨이 생겨 서로가 얽혀 붙는 것이듯 연약하지만 함께 있기에 새들이 그 속에서 머물 수 있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가구고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약한 것에서 새 힘을 찾아내 보는 작업부터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동성애를 포용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여기며 적대시하는 태도를 흔히 호모포비아’, 다른 말로 동성애 혐오 또는 동성애 공포하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흔히 동성애를 성 중독, 소아 성범죄 또는 소위 종북과 연관지어 부르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동성애라는 개념이 더러운’, ‘항문’, ‘수간등의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종류의 단어를 동성애와 엮어서 표현하면 성소수자와 교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알 수 없는 공포를 품게 한다. 말이 사람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것이다.

 

L G B T (Q)는 레즈비안 게이 양성애를 갖고 있는 바이섹슈얼 생물학적인 몸과 성 정체성이 다른 경우 트렌스젠더, 그리고 어느 쪽에도 끌리지 않는 무성애인 퀴어까지를 말합니다. ‘퀴어란 본디 기묘한이라는 뜻으로 상궤를 벗어났다는 표현입니다. 현재는 퀴어 퍼레이드, 퀴어 영화 위주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지만, 넓은 의미로는 규범화된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입니다. 개인이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적 지향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해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는 미국소아과학회의 소견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인지하게 되는 십대에는 이미 개인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소견입니다.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등 성적 정체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애 경로에서 성적 지향성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랑, 성적 욕망, 판타지 등에 대해 매우 확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기도 합니다,

 

차별은 안해. 근데 내 눈에 안보였음 좋겠어.”, “성소수자 그래 괜찮아.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는 없었으면 해”, “조용히 살고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 성소수자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공동체 내에서는 불편하다는 생각이 많지요.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한다면서도 어떤 기준에 맞아야 넌 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가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실들을 고려해야 하니 그렇겠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에 기준을 맞춰야지, 기준에 사람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특히 식민 열강의 지배를 받고 수동적으로 해방을 맞고, 동족끼리 갈라져 전쟁을 치르고 흑과 백의 논리로 살아가면서, 경제성장을 이루는 압축적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간 이런 과정 속에서 인권에 대한 소수자의 목소리는 계속 있어 왔음에도 늘 급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 이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룬 다음, 통일을 이룬 다음에 이야기하자. 여성을, 장애인을, 소수자를 이야기하자. 이명박근혜 정부를 바꿔 문재인정부로 들어섰고, 이제는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언제까지 다음이라고 하고 다양한 소수자들의 소리를 묵인하고 가겠습니까? 이제 향린도 그간 밀어두었던 과제들을 하나씩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름을 본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가야할 방향. 바로 서로간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이것을 정화하고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약함을 인 돌보지 않아서 죽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427일 남북회담에 이어 612일 북미회담을 보면서 기다리던 평화의 소식 곧 통일도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간 적폐, 분열조작으로 절대 불가능할것이라 믿었던 한반도의 평화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노력하고 만나고 변화를 꿈꾸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미 국제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와 함께 가야 합니다.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성소수자들의 혼인을 법으로 인정한 나라입니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은 같은 권리를 가지며 아이들도 입양 가능합니다. 2003년 이후 부터 벨기에도 동성애의 혼인을 인정하며, 2006년도에는 입양도 허락했습니다. 스페인의 좌파-성향 정권 또한 2005년도에 성소수자들의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아이들을 입양해도 되며, 보증서 같은 문서 또한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심지어 총리부터가 레즈비언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세계 나라들이 성소수자 인권문제에 대해 법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마주하기]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지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요, 이 말처럼 우리가 조금씩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면 세상은 변할 수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정의주일입니다. 그간 사회정의는 부르짖고 따르고자 했던 우리들이 이제 우리의 근간이 되는 성에 대해 정의를 찾자고 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믿음은 우리가 놓쳤던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불안해서 적대시하고 몰라서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더욱 낯선 이들과 낯선 방식으로 함께 마주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약함을 바라보던 방식, 그래서 어떤 이들이라도 그 마음을 함께 해주었던 주님의 길을 같이 갔으면 합니다. 살면서 큰 저항과 갈등을 직면할 때가 오면 그 순간에도 주님의 영은 여전히 내 곁에서, 내가 다르게 바라보고 선택하기를 바라며 모든 준비를 끝내놓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믿고, 함께 마주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보냄의 말]

 

주님께서 무엇이 되시건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되어야만 혹은 무엇을 하여야만 한다는 편견어린 욕심이 제겐 없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미리 헤아려 보고픈 바람도 제겐 없습니다.

그저 주님 모습 그대로 발견하기를 바랄 뿐, 주님께서 저를 실망시킬 리 없는 까닭입니다.

(칼릴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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