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넘어서기
사도행전 4:5~12, 요한1서 3:16~24, 요한복음서 10:11~18
가끔 시를 읽으시는지요? 우리 교우분들도 좋아하는 시 혹은 시인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두꺼운 철학 혹은 신학책들을 읽다 보면 눈이 모이는 것만 같고, 뇌에 쥐가 난 것 같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시를 읽곤 하는데요, 시가 주는 심상으로 몸에 여백과 여유를 주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시들이 있습니다. 글밥이 촘촘하게 많은 책들은 보통 논리와 설명으로 우리를 설득하지만, 시는 다르지요. 또렷한 인과관계도 없고 분명한 목적도 없어보이지만,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를 쿵-하고 내려놓는 시가 있습니다. 이성복 시인이 제겐 그랬습니다. 특히나 그의 첫 번째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중 ‘그날’이라는 시는 저를 조금 많이 고통스럽게했고, 어떤 신학책보다 조금 더 신학적이었습니다.
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돕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안병무는 민중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결국 세리와 창녀, 병자, 가난한 자 등으로 표상되는 천민대중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자주 가난하고 빼앗긴 민중들과의 연대를 말하지만, 실상 가난과 빼앗긴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불편하고,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런데 이성복의 시 ‘그날’은 그 고통의 얼굴들을 그대로 노출시켜버립니다. 시인 자신에게 일어난 그날의 아픈 현실을 덤덤하고도 망설임 없게 써나가는 그의 표현방식이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좀 천천히 써나가도 될 것을, 어머니의 퉁퉁 부은 낡은 다리, 대낮부터 서성이는 성노동자들, 장차 성노동자가 될 어린이들, 잡초 뽑는 여인들, 사장과 다투는 아버지 등 민중들의 아픈 현실을 죽죽 써나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성복은 우리를 한 번 더 불편하게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지요,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황현산)고 한 문학비평가의 말을 참 무색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낡은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는데 시인은 세상이 완벽하다고 말합니다. 잔디 뽑는 아낙들이 자신들의 삶까지도 솎아내고 있고, 집을 무너뜨리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하늘까지도 무너지고 있는 때에, 누구도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가 병들어도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삭막하여 공포감마저 주는 세상입니다.
만일 시인이 우리에게 까보이고 있는 이 아픔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면, 그리고 ‘나만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신음소리를 듣겠노라, 나는 먼저는 나의 아픔을 듣고, 그리고 너의 아픔도 듣겠노라’라는 마음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희망과 믿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에는 ‘선한 목자와 양’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이리가 오면 양들을 두고 달아나버리는 삯꾼과 자신을 대비시키며,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일컬어 말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깊이 사랑하여,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철저히 끝까지 양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가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며 전한 사랑의 내용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율법보다는 사랑이 먼저였기에, 예수는 안식일에 민중들과 함께 기적 사건 속에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기적사건은 민중언어입니다. 민중들이 보고 경험한 바를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며, 기적 이야기에는 저마다의 어려운 현실과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억눌림, 가난, 패배로 인해 얻은 생리적인 병으로 몸부림치는 구체적인 현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종교 지배 체제의 ‘죄인’, 즉 정죄당함으로 인해 한계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들과 함께 기적 사건 속에 있었으며, 그로 인해 늘 그의 생명은 위태로웠고, 결국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은 이런 의미에서 자기 옆 이웃들의 궁핍합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깃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합일에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시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목자의 음성을 양들이 알아듣는다는 말 속에서 두 관계 간의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한 1서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지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라는 표현은 이성복의 시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와 철저하게 대비를 이루는 표현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셨던 예수는 그날의 신음을 들었고, 병든 존재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예수가 만약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입증하려고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었’다면, 그것을 우리는 진실한 사랑이었다고, 선한 목자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민중들이 그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싸우고 또 격려하였습니다. 죄인, 귀신들린 사람 등으로 매도당하여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저항할 수 있도록 돕는 자로 살았습니다. 이로써, 예수와 민중은 해방의 사건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민중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 명제가 특별히 서구 신학자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민중과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제 경험이 있는데요. 제가 영국에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모두가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심지어 제 지도교수도 그야말로 서구 백인 학자였구요. 그때의 구성원 중 한 명에게 들었던 놀라운 말은 ‘나는 한국사람을 처음 봐’였습니다. 그 발언은 사실 교묘하게 인종차별적이었습니다. 제3세계에서 온 여성이 그 속에서 가만 앉아있는 것 자체가 존재 투쟁이었고, 실상 그들은 제 담론에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가 저에게 갑자기 ‘민중신학’에 대해 말해보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없는 사람처럼 늘 앉아있던 제게 온 첫 질문이니 얼마나 긴장이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한국의 민중신학을 얼마나 잘 설명하고 싶었을지 짐작이 되시지요? 그런데, 과도한 긴장과 짧은 영어 실력이 문제였습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저는 ‘예수가 민중이고, 민중이 예수다. 민중이 곧 메시아다’라고 띄엄띄엄 설명하였는데, 그때 교수와 학생들의 얼굴 표정은 마치 ‘쟤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뭔 신학이 저리 엉성해?’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교수가 다시 물었습니다. ‘민중이 예수와 동일한 역할, 곧 메시아적 역할을 맡을 수 있느냐?’ 저는 ‘예스’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음에 자세하게 다시 설명해주겠다,, 라고 말한 후 입을 다물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민중신학은 서구 신학자들이 말하는 교리적 신 이해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건 안에서 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사건을 일으키는 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개별적 차원 또는 존재론적, 관념적 차원에서 예수와 민중의 동일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지평에서 동일시를 말하는 것입니다.(안병무/최형묵)”
이때 우리는 민중의 자기초월의 의미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초월은 이렇게 풀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죽어가는 타자들의 삶을 갈망하는 것, 한계 상황에도 해방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 고통에서 풀려나고자 하는 이니셔티브, 사회구조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저항, 이것이 바로 안병무가 본 민중의 자기-초월이고 이러한 민중사건 안에서 예수는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서도 민중의 자기초월의 현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삯꾼과도 같은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기적을 일으킨 제자들에게 심문합니다. “당신들은 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한 것이요?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힘으로 된 것입니다. 예수는 버림받았던 돌이었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 본문이 던져주는 정황이 바로, 예수가 결국 죽임을 당하였지만, 바로 그 예수가 억압당하던 민중과 함께 부활하고 있는, 자기-초월의 현장인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가 절망했던 제자들 속에서, 고통당하고 절망한 이들의 가슴 속에서 존재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 다시 생명을 말하며, 버림받았던 돌을 머릿돌로 다시 세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민중예수의 부활이며, 자기초월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나’의 자리를 살펴봄으로써, ‘나’를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민중신학을 도구 삼아 하늘뜻펴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민중을 이야기하면서, 민중이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되지 않기 위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곳 향린에서마저 민중신학이 진보신학의 상품으로서 전락되지 않기 위한 주의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저의 자리를 먼저 살펴봅니다. 분명 제 봉급으로 봤을 때 저는 민중이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한 여성 목사의 삶이라 할 때 저는 민중이지만, ‘과연 목사가 민중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또 다른 환기를 불러옵니다. 그리고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됐거나, 혹은 동시대 사람들과 비교하여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모인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민중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다양한 삶의 자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저마다의 고통의 무게를 져야 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나’를 넘어가는 경험입니다. 지배적 담론에 의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약자, 소수자, 가난한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예수와 연대했던 기적 사건 속 민중들처럼 다시 일어나 희망을 말해야만 하는 무게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엄청난 존재투쟁이 될 것이며, 결국 굳건한 믿음 안에서 이뤄져야 하기에 그야말로 고통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교우들 역시도 ‘자기’를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지닌 무게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이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는 책임의 무게입니다. ‘너’ 혹은 ‘그것’으로 민중을 범주화시켜 스스로와 분리하는 인식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들과는 분리된 ‘나’로 파악하는 자기-이해야말로 반-공동체적 사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여된 책임 역시 자신의 소유를 포기해야만 하는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결국,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자기초월을 이루어 냄으로써 ‘초월하는 민중’이 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저마다가 지닌 고통의 무게를 견뎌낼 때, 비로소 푸른 초장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며, 예수가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서두에 밝혔던 시, ‘그날’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의 시를 다시 써봅니다.
모두가 그날의 신음 소리를 기억했다.
한 명이 병들자,
모두가 함께 아파하였다.
-파송사 -
나는 아프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음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넘어, ‘우리로’, ‘우리를’ 넘어 사랑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