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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따라 ㅣ 김지목 ㅣ 2021-07-25

by 김지목 posted Jul 26, 2021 Views 15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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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07-25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따라

삼하11:1-15, 3:14-21, 6:1-21

성령강림절 10

 

코로나 백신 접종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팬데믹이 이제 소강되려나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더욱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에게 조금 더 인내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우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시고, 우리 공동체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돌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바꾼 코로나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오늘도 비대면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대면예배의 방식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우리 공동체의 예배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우리 공동체를 연결시키는 새로운 방식에 우리는 지금 적응하면서, 보다 유효한 방식을 실험해나가고 있습니다. 비단 비대면예배 뿐이겠습니까? 인간관계와 만남을 비롯하여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새로운 방식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본질또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예배의 방식을 비대면으로 새롭게 구성하면서, 예배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친교인 예배의 본질만큼은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흔들어 놓으면서, 우리 삶의 본질을 재고하게 하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내도록 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를 연결시키는 일은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온라인 콘텐츠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에, 온라인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유의미한 하나님나라의 친교가 되게 하는 일 역시 이전보다 더 많은 정성을 요구합니다. 대면이 단절된 펜데믹의 상황에서, 우리 서로가 연결을 위하여 더 섬세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시절입니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 곧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삶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고 삶의 방식을 적절하게 전환시키는 일이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정입니다. 더 노력하고, 더 정성을 다하도록, 이토록 지난하게 인류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인류에게 주어진 문명사적 과제를, 우리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생태적 전환이라는 목표로 함께 인식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전환이란 모든 피조물을 타자로 대상화하고, ‘타자를 자기에게 복속시키려는 인류의 욕망을 고발하고 돌이키는, 하나님나라를 향한 회개운동입니다. 욕망은 맘몬의 이데올로기, 생태계 파괴, 차별과 혐오 등의 폭력적 실체로 나타났습니다. 욕망으로 작동하는 모든 악을, 생태적으로, 유기체적인 공존과 상생의 방법으로 극복해나가자는 것이 바로 생태적 전환입니다.

 

생태적 전환은 우리가 다듬고 세련되게 실험해나가야 할 선교 방법론입니다. 그동안 실천해왔고, 또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우리 교회의 선교활동들과 교회건축에 이르기까지 생태적 전환이라는 방법론으로 새롭게 추진되고 또 아름답게 성취되기를 빕니다.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강림절기, 신앙의 동력으로 활동하시는 성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생태적 전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우리의 인고의 발걸음을 신명나게 옮기게 할 신앙의 동력이, 우리 서로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2성서의 에베소서를 함께 보았습니다. 서신의 문체나 신학적 주제를 살펴보았을 때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직접 집필하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사도바울이 이방선교를 하는 과정에서 유대그리스도인들과 처절하게 분투했던 내용과 긴장감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보낸 서신들의 수신자는 분명했던 반면, 에베소교회라는 수신자가 특정되어 있다기보다, 유대와 이방의 모든 교회가 수신 대상입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을 추종했던 후대 그룹이 집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에 대한 보편적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사도바울의 권위에 기대어 집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를 한 사도가 주후 100년경에 예루살렘과 주변 이방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로 가정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3장의 말씀은 사도가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기도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내용을 밝혀주면서 에베소교회가 그 내용에 합당한 신앙공동체 되기를 바라는 사도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 내용으로 신앙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사도가 전하려는 권면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우쳐 아는 것입니다. 에베소 신앙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을 깨닫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을 깨우치면, 하나님의 풍성하신 선물을 받은 신앙인이 됩니다. 결국 사도는, 에베소교회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선물로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다함없는 것이어서 풍성하심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신앙인은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력을 충분히, 차고 넘치게 공급받은 존재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생명력을 공유하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풍성하신 하나님의 생명력을 충분히 공유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이것이, 사도의 권면 후반부 내용입니다. 전반부부터 정리하면서 권면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신학적인 논리이며 신앙적 가르침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력에서 성령이 분출하여 활동하십니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감응하면 속사람을 품은 신앙인이 되고, 성령이 속사람에 드나드는 활동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굳건해집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터를 잡고 살아가면서,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되고, 결국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풍성하신 하나님의 생명력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의 신학논리에서 우리 신앙의 특징 또는 교훈, 몇 가지를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회란 어떤 곳이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가는 공간이라고 규정합니다. 에베소서를 받아 읽어보는 수신자는 유대교회와 이방교회를 포괄합니다. 이것은 유대교회와 이방교회 간의 갈등 속에 있다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교회와 안디옥 등지의 이방교회들 간에는 어쩔 수 없이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갈등이 뒤따랐을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방선교의 선두주자였던 사도바울과 예루살렘 유대교회의 베드로 간에서도 할례나 식사나눔 같은 문화적 차이로 갈등했습니다.

 

에베소서의 수신자가 되는 유대교회와 이방교회 사이에서의 차이와 갈등은 한편으로 피치 못할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차이와 갈등이란 건, 어떤 공동체에라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채워지는 교회일 때야 비로소 교회는 교회로서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차이와 갈등에 천착하지 않고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워나가는 성숙한 속사람의 공동체가 되기를, 사도는 교회에 권면합니다.

 

둘째는, 교회가 채워가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훈련을 통하여 습득되는 것이며, 다각적으로 체험해 나가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께서 드나드는 속사람이 되게 하는 것도 신앙의 훈련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정례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 기도회와 같은 경건한 시간을 마련하고 참여하는 것들은 우리 마음에 성령이 활동하여 드나들 수 있게 하는 훈련의 일환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성령이 능력으로 우리 믿음을 강건하게 하여주시고, 강건한 믿음을 켜켜이 쌓아감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된다고, 사도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은 훈련을 요하고 이를 위해서 시간과 정성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18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너비가 있고, 길이가 있고, 높이가 있고, 깊이가 있다고 합니다. 성서주석가는 이러한 묘사가 당시의 점성술과 관련이 있는, 우주론적 사변의 반영이라고 분석합니다. 일례로, ‘깊이란 별들이 떠오르는 지평선 아래의 하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채워나갈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주를 우주론적으로 무한히 확대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묘사한 것은, 그 사랑과 하나님의 무한한 풍성하심을 연결시키기 위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채워나가야 할 사랑의 과제는 다양하며, 가이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것, 이것은 우리 교회의 숙명입니다.

 

 

셋째로는,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에 연결되고 그 생명력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에 연결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실천해나갈 때 은총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신앙의 근원이자 동시에 성취해나갈 신앙의 최종목표입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신앙 안에서 그 시작점과 종착점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원으로 이어져 영원하고 무한하다는 표현입니다.

 

교회에 사랑을 채워나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훈련해나가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신앙생활! 사도는 우리에게 이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영원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생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생명일까요?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된다는 것은 신비적이고 사변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된,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그 생명의 정체는 무엇까요? 오늘 요한복음서 오병이어 기적설화를 보겠습니다.

 

오병이어로 수천명을 먹이신 기적설화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시라는 것을 설파할 목적으로 다듬어진 이야기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생활을 할 때 모세를 통하여 만나와 메추라기 곧, 생명의 양식을 하늘로부터 내리게 한 것이, 이 오병이어 설화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에 축사하신 것만으로 수천명을 배부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한 모세와 같은 구원자시며,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력을 하나님과 공유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또한 이 설화는 떡과 잔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오심을 기념하는 성만찬 예전의 바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떡과 잔이 되시어,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양식이 되신다는, 성만찬 신학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에 축사하시고 수천명을 먹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력을 공유하신 분, 하나님의 은총을 그대로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생명의 양식이 되셔서 우리에게 몸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의 결정체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시다는 그 생명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 라고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누구를 어떻게 살리는 생명인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린 민중을 먹이시고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빼앗긴 이들의 삶과 인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정의이요 평화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생명 정의 평화는 그의 지극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과 피의 사랑이, 우리 삶에 생명과 정의와 평화로 나타난 것입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 이 세 가지 핵심 키워드가 교회의 선교 핵심과제로 정립된 것은, 개신교 선교 100년 역사의 결실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와 같은, 2013년에 부산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였습니다. 선교열정과 회상, 협의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교회가 수행해야 할 선교과제는 생명 정의 평화로 집약한 것입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나타난 사상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교회로서 바른 의미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꾸준히 채워나가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 사랑은 차이와 갈등조차 아름답게 창조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서로 보듬는 사랑을 안에서부터 발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또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는 선교의 공동체가 되도록 신앙의 훈련에 매진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린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

 

(파송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 공동체가 터를 잡고,

생명 정의 평화의 선교로써 그 사랑을 힘써 훈련하면서,

향린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켜켜이 채워지기를 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헤아리며

그 사랑을 날로 깨우쳐가는 향린 공동체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이 늘 충만하기를 빕니다.

 

 

(함께 축복기도를 나눕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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