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이사야 5:1-7)
성령강림절 열째주일 / 평화통일주일
교회연합운동의 본을 보여 주시고 특별히 교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의 평화통일선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주신 향린교회 공동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직접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1989년 모스크바에서 모인 세계교회협의회 (WCC) 중앙위원회는 8.15 직전 주일을 전 세계교회가 남북교회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 (8.15 평통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 후 세계교회는 매년마다 남북교회가 합의한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을 가지고 8.15 평통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한 2020년부터 NCCK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KCF)가 8.15 공동기도문을 발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고 분단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성찰해 보겠습니다.
오늘 이사야 5장 1-7절 본문은 기원전 8세기 변화하는 유다의 사회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여성 농부의 시각에서 시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어, 두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갈등과 반목 속에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리아 등의 강대국들에 둘러 싸여 늘 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되어 왔습니다. 안으로는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중앙집권적 왕권 체제로 편입되는 과정에 있었고 백성들은 전쟁과 건설사업에 빈번하게 동원 되었습니다. 강제 징집과 노역, 세금 징수에 시달리면서 그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권을 중심으로 한 도시 엘리트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산악지대에 적합한 전통적인 농사 방식인 다품종 생산방식을 농장형 농업으로 전환하고 있었습니다. 관리, 교환이 쉽고 수출하기 쉬운 포도나 올리브 같은 현금 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겨 빈농으로 전락하고 비옥한 땅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생계 유지를 위하여 부지런히 땅을 가꾸고 지혜롭게 공동체를 유지해 온 여성농부는 왕과 그 주변의 세력들이 저지르는 불의한 상황을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라고 한탄합니다. 불의가 만연한 상황을 섞은 포도에 비유한 것입니다. 3절에서 6절에는, 말하는 이가 하나님으로 바뀌면서, 포도원을 짓밟고 폐하겠다는 섬뜩하고 종말론적인 야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7절에서 말하는 이가 다시 여성농부로 바뀝니다. 그녀는 포도원은 가족과 야훼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또한 공동체와 땅과 하나님을 대신하여 포도원을 파괴하는 자들에게 ‘야훼께서는 살육의 현장을 보았고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고 경고하지만, 야훼께서 정의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소망을 암시하며 이 시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를 통해 분단과 갈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선제타격, 삼축체계 운운하며 북에 대한 적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북 또한 핵무기개발을 가속화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되는 신냉전속에서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갇혀 있습니다. 안으로는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남남갈등과 생태위기는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대 초반 NCCK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잠시 나누겠습니다. 1993년에 조선인민공화국 출신인 비전향장기복역수 이인모씨가 북송 되었습니다. 그가 북송 되기 2년전인 1991년부터 이미 NCCK는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등과 함께 장기수 북송운동을 해 왔습니다. 제가 나눌 이야기는 1964년 남파간첩으로 체포돼 23년을 감옥에서 살고 1988년 교계의 신변보증으로 풀려난 장기수 최인정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벌써 30년도 넘었지만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기에 아직도 마음 속 깊이 담아 두고 있습니다. 1927년생인 최인정씨는 1964년에 남파되었지만 이틀 만에 경찰에 체포되어 23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1988년 석방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이듬 해인 1991년 11월 21일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약 한달 전 대전 인권위원회를 통하여 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와서 급하게 통일부에 연락하였습니다. 당시 남과 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표를 앞두고 화해의 분위기를 이어 가는 중이었기에, 통일부는 11월 22일까지 북한주민접촉신청서를 내면 그가 요청한 데로 12월 31일에 판문점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최인정씨는 너무 기뻐했으며, 11월 22일 오전, 신청서 접수를 위해 새마을호를 타고 대전에서 NCCK 종로 5가 사무실로 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날 밤 10시경 운명하였습니다. 결국 인권위원회는 그가 아내에게 쓴 편지 ‘문설주 이별이 28년 세월을 삼켰구려’를 북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통일부에 요청했지만, 통일부는 최씨의 편지 전달은 수십만의 이산가족의 편지 전달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며 거부하였습니다. 후일 우리는 WCC를 통해 이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참으로 분단의 수 많은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그 긴 세월 동안 화해와 평화의 영성을 확산하기 보다는 갈등과 반목의 종교적 이념을 생산해 왔다는 사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분단을 빌미로 정의를 말살하고 살육을 저지르는 불의한 정권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자본의 탐욕을 비호해 왔습니다. 분단신학, 번영신학, 반생명신학에 대한 깊은 성찰과 회개 없이는 오늘 본문 이사야서와 누가복음서의 경고처럼 우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제 포도밭을 잘 가꾸어 제대로 된 열매를 추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은 하나입니다. 남북이 화해와 통일을 이루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며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행동하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저는 세 가지 신학적 비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모두를 위한 풍성한 삶’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중심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 (요 10:10)입니다. 이 생명의 풍성함을 이루는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사랑의 길을 가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자유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려는 끝도 없는 절망적 노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서로를 죽이려는 욕구를 합리화하는 비이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 달에 독일에서 개최되는 제11차 WCC 총회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 입니다. 한국교회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제 타격이 아닌 선제적 사랑을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풍성함은 인간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랍비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내려 주신 만나는 해가 뜨면 녹기 시작하여 땅에 스며 들어서 벌레들과 곤충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주변의 풀과 나무들, 하늘의 새들에게도 좋은 양식이 되었고, 조그만 개울가에 녹아 들어 거기에 사는 생명들에게도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나를 독점하고 축적할 때,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만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둘째, ‘은혜의 나눔’에 대한 비전입니다.
1987년 WCC는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에서 발표한 나눔의 지침 에서 “우리의 … 나눔에 있어, 일방적으로 주는 자도 또한 일방적으로 받는 자도 없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고 선언하면서, 진정한 나눔이란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고 진리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남북의 신뢰회복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 나눌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오래 전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일주일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로제수사께서 저희 일행 여러 명을 아침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바게트 빵을 잘라서 몇 쪽 돌리고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참으로 간단한 아침이었습니다. 말없이 감사하며 먹는 가운데 거의 식사를 마칠 때쯤, 로제수사께서는 공동체의 재정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떼제공동체에는 전 세계교회와 기관들로부터 엄청난 헌금이 들어오고 있지만 공동체를 꾸리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경비를 제외하고는 그 헌금 모두를 연말까지 잘 모아두어 연말이 되면 1프랑도 남기지 않고 먼저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세계의 가난한 공동체와 함께 나눈다고 하셨습니다. 돈이 축적되다 보면 탐욕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빵과 버터를 먹으며 노동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큰 가르침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셋째, ‘다름의 축복’에 대한 비전입니다.
분단 이후 남북은 ‘다르다는 것’이 폭력적으로 탄압되는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벨탑 이야기(창 11:1-9)에서 ‘획일화’하려는 인간들의 시도를 무위로 돌리고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다양성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때, 화해와 평화가 이 땅에 도래할 것입니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때로는 북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때로는 우리와 종교와 문화가 다른 이주민에 대한 차별로, 때로는 성적 지향이 다른 LGBTQ를 향한 혐오로 이어졌습니다. 환대하는 공동체가 될 때만이 증오와 차별과 혐오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조되는 남북 위기, 심화되고 있는 남남갈등, 한계상황을 넘고 있는 생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땅과 창조세계 전체가 울부짖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듣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생태운동, 교회개혁운동, 이 운동들의 힘은 교단 본부나 NCCK같은 연합 기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힘은 매주 이렇게 모여 간절하게 기도하고 행동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는 풀뿌리 공동체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향린 공동체를 더욱 더 강건하게 하시고 귀히 쓰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권세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용감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함께 새로이 배워야 한다. 테러, 잔학행위와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소외된 이들, 갇힌 이들 그리고 난민들과 연대할 수 있도록 함께 배워야 한다. 교회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고, 집을 잃은 이들의 집이 되어야 한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창립총회 폐막 메시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