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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깨어있어라! | 김희헌 | 2022-11-27

by 김희헌 posted Nov 27, 2022 Views 2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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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11-27

깨어있어라! (2:1~5, 13:11~14, 24:36~44)

2022.11.27. 대림절 첫째 주일

 

[대림절에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으로 새로운 해의 시작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가고 새로운 시간이 다가옴을 의미합니다. 대림절은 두 시간 사이의 자리,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많은 종교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보상의 종교요, 다른 하나는 각성의 종교입니다. 보상의 종교는 구원의 시간을 미래에 두지만, 각성의 종교는 자신의 구원을 현재에서 찾습니다.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우 여러분은 어떤 종교를 믿고 있습니까?

같은 기독교를 믿고 있어도, 보상의 종교를 사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감내하지만, 각성의 종교를 사는 사람은 오늘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대림절 신학은 오늘의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열어가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을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카이로스의 시간, 종말론적 깨달음의 시간으로 여기라고 종을 울립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표면적인 모습으로만 보면 구원의 시간으로 보기 힘든 어둠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며칠 전 신촌의 한 원룸에서 모녀가 오래된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은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 합의도 정쟁의 거래에 가깝지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애도의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며칠간 화물연대의 총파업에도 노동자의 삶의 애환을 주목하기보다는 불법행위자 엄벌만 외치는 정부의 선동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며, 격화되어온 남북 간의 대결은 이제 서울이 과녁이 되었다라는 북의 위협과 추가제재를 운운하는 남의 실효성 없는 엄포가 희망없이 교차하는 허무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어둠 깊은 현실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어떤 빛이 비췰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그 그리움에는 어떤 선물이 주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대림절의 비밀은 정보의 양으로 풀리기보다는 앎의 방식이나 깊이에 달린 것 같습니다. 때로는 성육신에 관한 신학적인 해명이 그럴듯한 답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 추위를 뚫고 들려오는 성탄절의 멜로디가 마음을 설레게도 하며, 때로는 오래된 성서의 신화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이 순박한 종교의 언덕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림절의 관심이 우리 삶과 우리 세계에 임하는 거룩한 탄생에 관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피하고 싶은 믿음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발견해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대림절에 우리가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린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시대는 무엇을 그리워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림(待臨)’이란 기다림만이 아니라, ‘모심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이요, 사회적으로는 역사의 어둠을 뚫고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믿음이겠지요. 자기 삶에 강림하는 그리스도가 되었든, 역사를 헤치고 오는 하나님 나라가 되었든, 그 기다림의 마음에는 모종의 어둠과 절망의 경험이 전제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난 삶에서 여러분의 영혼을 꺾어버렸던 어둠과 절망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성서의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 그 삶의 절망과 슬픔, 그 고통과 허무, 그리고 번민하는 그 마음이 차마 놓칠 수 없었던 갈망과 믿음을 향해 하늘이 들려준 소리는 한결같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성서 본문에는 두 개의 외침으로 들려옵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 깨어있어라!

 

[주님의 빛 가운데로! / 이사야서 21~5]

오늘 제1성서 본문의 이사야는 절망 깊은 어둠의 시대를 살았지만, 대림절의 메시지를 당당하게 외칩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이사야 예언자는 기원전 740년부터 약 40년간 남 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가 살던 때는 암울하고 비극적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지도층의 비리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서 통합정치가 불가능하고, 외부적으로는 강대국에 의존하는 사대주의로 인해 나라의 위기가 깊었습니다.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불신의 시대에 사대주의적 정치가 벌어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사야서 1장을 보면 예언자의 비판이 가득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약탈하는 일에 자기 힘을 활용하고, 사법적인 공평함이 없는 사회에서 불평등은 커졌습니다. 종교는 허례허식에 빠져서 경건을 가장할 뿐, 정의로운 영혼을 길러내는 일에 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부동력이 갈기갈기 찢긴 사회에서,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들이 득세하고 정치는 더욱 사대주의로 흘러갔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나라가 분단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옆 나라와 동맹을 맺고 남 왕국을 공격했고 (주전 735). 이에 맞선 남 왕국 유다는 앗시리아 제국을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주전 732). 결국, 앗시리아가 먼저 북쪽 동맹세력을 정복하여 포로로 끌고 간 후, 이어서 남 왕국까지 조공을 바치는 봉신국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사야가 예언을 시작한 때는 이런 비극이 오기 전입니다. 사람들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언의 외침을 따라, 결단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라고 외쳤습니다. (2:3)

사람들의 이런 열망에 부응한 예언자의 목소리 역시 평화에 관한 영원한 상징이 될만한 가슴 벅찬 내용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4)

칼을 쳐서 보습으로! 이것은 위기의 시대를 정직하게 돌파하려고 했던 당대의 진취적인 정신을 대변한 구호였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농부 예언자 미가 역시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4:1~3) 이들은 현실을 모르는 낭만주의자들이었던 것일까요?

역사에 가정법을 적용하는 것은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때로는 오늘의 선택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물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미 포로기를 거친 예언자 요엘이 거꾸로 말했듯이 (3:10),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이사야가 살던 시대와 비슷하게, 오늘 우리 사회는 분단의 위기를 사대주의적 군사동맹으로 해결하려는 세력,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여 갈등의 대결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득세하며 앓고 있습니다.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나라는 미국을 통해서 10만 발의 포탄을 제공하였고, 무기수출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해가는 현 정부는 군수산업 강국이라는 눈먼 맹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재작년 30억 불이었던 무기수출이 올해는 200억 불을 넘어설 것이라 하는데, 그것이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까요?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군축이라는 분단국가의 지상과제를 저버릴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우리는 차마 평화를 말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욕망의 모순, 이데올로기로 인한 불감증, 영혼의 잠식 상태는 어둡기만 합니다. 이러할 때 들려오는 이사야의 목소리, “주님의 빛 가운데 걸어가자!”라는 외침은 얼마나 낯선 목소리인가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려는 영혼은 하지만 얼마나 갸륵한가요?

이사야는 대림절의 상징을 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어둠 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빛을 찾아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 마음을 같은 시대를 살아간 미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 사람아,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6:8)

하지만, 닫힌 마음에는 빛도 어둠일 뿐, 마음이 깨어있지 않고서는 빛이 오는 시간은 영원히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자가 오는 시간 / 마태복음 2436~44, 로마서 1311~14]

마태복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에 느끼는 곤혹스러움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인자가 올 때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라고 말합니다. (36) 사람들은 그렇기에 노아의 때와 같이 예전의 삶을 이어갑니다.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가기 전까지 어둠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삶에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다른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 합니다. 그것은 우연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깨어있는 삶의 필요성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공동체가 찾은 해법은 깨어있는 삶이었습니다. “러므로 깨어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44) 깨어있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그것을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잠들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11~12)

깨어있는 삶이란 자신이 잠들어 있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은 분별의 시간입니다. 분별이란 거짓된 안정감을 주면서 유혹하는 것에 잠겨 있는 삶에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법을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는 지성소를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지를 돌아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고통의 세계에서 우리가 가진 일차적인 열망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고통 자체를 극복하여 벗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고통의 세계를 직시하는 것에 달려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교는 이 점에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환상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삶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고통의 현실을 떠나서는 삶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은 그 삶 자체에 있기보다는, 잘못된 집착에 있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유는 과거의 공포에 집착하고, 미래의 두려움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 생활의 목표도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도 자유로운 삶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의 적막한 사막으로 뛰어드는 존재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4:12)

깨어있는 삶에 관한 바울의 두 번째 권면은 어둠의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것입니다. 이것은 행위의 도덕적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거룩한 옷에 관한 또 다른 종교적 집착에 관한 말도 아닙니다. 잘못된 열정에 심취한 종교는 소음과 욕망으로 채워진 자기중심적인 방황을 계속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는 바울의 말은, 이 세상의 고통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삶의 모습을 깨닫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20) 주님의 빛 가운데를 걸어가는 깨어있는 삶이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삶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삶입니다. 바울이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 말한 깨어있는 삶이란 바로 앞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13:10)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원하는 평화, 자신이 원하는 그리스도를 기대합니다. 원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묻습니다. 주님, 언제 오시렵니까? 그러나, 대림절 첫째 주일, 우리는 깨어있어라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kenosis)입니다. 깨어있는 마음은, 욕망을 비우며 그리스도를 얻고, 두려움을 버리고 사랑을 심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또한 삶의 진리가 고통 안에 숨겨져 있다는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깨어있는 마음에, 예수께서 성탄의 기쁜 소식으로 오시기를 기원합니다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어두운 잠에서 깨어납시다.

오늘의 고통 속에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빛 가운데로 걸어갑시다!

성탄의 기쁜 소식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합시다.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평화가 대림절의 은총으로 우리 삶과 우리 역사에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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