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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속 사람 ㅣ 김지목 ㅣ2024-07-28

by 김지목 posted Jul 28, 2024 Views 6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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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07-28

하늘뜻펴기 20240728 성령강림후10 

 

“속 사람" 

삼하11:1-15  시145:10-18  엡3:14-21  요6:1-21 

 

기원전 1천년에서 900년으로 접어드는 세기의 전환기, 제1성서의 역사적 배경에는 다윗이 있었습니다. 성서를 펼쳐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다윗이라는 이름을 들어봤고, 또 다윗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만큼, 성서인물 중에 다윗은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 유명세만큼 다윗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큰 야망의 포부로 일국의 왕이 된 데다 후대에 지극한 칭송을 받기까지 했으니, 과연 성공한 인물이라고 평할 만합니다.  

 

성서는 이 성공적인 인물 다윗의 일대기를 보도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개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으로 이해합니다. 부요하고 강대한 왕국을 회복해줄 기복신앙인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다윗의 여러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 다윗을 보는 우리는 그의 야망, 치부, 간교함을 함께 보면서, 다윗을 추앙하는 것이 성서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크게 세개의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일대기 초기가 첫번째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스라엘과, 그에 인접한 블레셋과 부족들 사이를 떠도는 용병단의 장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아래는 이집트제국이 있고, 위로는 메소포타미아 세력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팔레스타인에서 세력을 갖추기 시작한 부족들이 연합하면서 군사적 경쟁과 대결이 빈번하던 때입니다. 제법 강력한 용병집단을 이끌던 다윗은 좋은 조건에 맞춰서 전쟁을 찾아다녔는데, 이스라엘 소속으로 블레셋과 싸우다가도 사울에게 쫓기면 블레셋 군대의 편제 하에서 이스라엘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은 다윗용병대를 편제시키면서 이스라엘과 다윗이 서로 싸워서 분열되기를 바랐으나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블레셋을 공격하여 결국 블레셋을 물리친 이스라엘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하는 환호소리가 귀에 거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레셋 점령 후 다윗은 사울 일가와 대권을 두고 싸우면서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다윗의 첫번째 장면입니다. 전쟁과 모략으로 대권을 쟁취한, 전쟁영웅인 다윗의 모습입니다.  

 

두번째 장면은 왕으로 살아가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적통이었던 사울을 밀어내고 등극한 다윗은 왕위의 정통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탕평책으로 대신들을 명분있게 고루 등용하고 법궤를 궁전으로 가져왔습니다. 이전 사사시대 전통에서 왕권체제로 전환하는 기로에서, 권력도 취하고 전통도 흡수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성서를 기록한 예언자그룹은 이 다윗의 성공을 위기와 긴장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위주로 기록된 역대기 성서는 관제의 냄새가 농후합니다. 이와 다르게 사무엘기와 열왕기는 비교적 민중전승의 흔적을 남겨놓았는데, 다윗의 여러 일화들은 당시 왕궁세력과 예언자세력 간의 논쟁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밧세바 이야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밧세바는 다윗 수하의 장수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우리야가 전방에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임신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씨임을 감추려고 우리야를 불러들이지만 우리야는 밧세바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야를 최전방에서 죽게하여 이 스캔들을 무마시키려 합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고 밧세바를 낳은 그 아이가 솔로몬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치정, 우리야의 죽음, 밧세바의 임신의 이야기를 사무엘기에 기록한데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을까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우리야를 위한 당시 민중들의 애도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이 잘못했고 부정이 있었다는 당시의 민심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사무엘기를 기록한 예언자그룹은 민중의 전승을 여기에 실으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야의 말로 남겼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밧세바와 자도록 집으로 보냈지만 우리야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궐 문간에서 잤습니다. 이튿날 다윗이 왜 집으로 가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우리야는 “전선에서는 동료들이 전쟁 중에 있는데 어찌 저만 집에 들어가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통이었습니다. 이 말인즉슨, 다윗은 왕의 월권으로 우리야를 죽인 자로서, 왕권으로 이스라엘의 전통과 율법을 해쳤다는 고발을 하기 위해서 성서기자는 이 본문을 남긴 것입니다.  

 

부족연맹체제였던 이스라엘은 사울 때부터 국가로 전환되었습니다. 사사가 등장했던 시대는 야훼사상에 입각한 평등사회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작은 나라들이 발흥하고 군사력을 갖춘 전쟁들이 일어나는 시대로 들어서자 이스라엘도 이에 준동했을 것입니다. 부족연맹체제를 유지하여 야훼정신을 지금처럼 지켜나가자는 세력과, 시대에 발맞추어 국가체제로 변화해야 살 수 있다는 세력 간의 충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논쟁의 결과는 어쩔 수 없이 국가체제로 전환하지만 부족연맹체제에서 지켜왔던 야훼의 평등사상은 꼭 지켜 나가자는 결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예언자 사무엘은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옹립하였습니다. 사무엘기상 8장 17절에서 예언자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은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남겨두고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예언자그룹과 왕권 세력 간의 긴장감이 조성되었습니다. 왕권의 폭정으로 야훼사상이 해쳐지는 상황을 예언자는 경계했던 것입니다. 사울에 이어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된 다윗왕에 이르자 예언자그룹이 감내해야 할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의 치정이 드러났습니다. 사무엘의 예언자그룹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가 죽임을 당한 것이야말로 다윗이 왕권을 남용한 것이며 처음부터 우려했던 일이 이렇게 나타났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통을 지키려는 우리야를 죽인 것은, 왕이 야훼사상을 죽인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다윗의 두번째 장면, 그가 왕위를 차지한 이 시기는 새롭게 국가체제로 전환하는 시기였습니다. 왕권으로 국력이 강화되면서 파생되는 오류들, 훼손되는 야훼사상을 고수하려는 예언자그룹의 응전이 치밀했던 시기였습니다. 다윗은 이 시기를 많은 실수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보낸 인물이었습니다. 도전적인 시대에 사명을 감당한 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견제대상이었고 반면교사의 모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캐릭터이기에 일면 매력적입니다.  

 

다윗을 이해하는 세번째 장면은 다윗 사후에 형성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어 서로 적대적으로 싸우다가 결국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포로가 되어 70여년의 바벨론 유수기를 보내게 됩니다. 포로생활에서 해방되고 다시 국가를 온전히 재건하기를 꿈꾸었던 이스라엘은 과거 찬란했던 시대를 동경하며 시온의 빛으로 인도할 인물로 다윗을 강조하고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다윗은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상징으로, 패망국 백성을 북돋우는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건,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이 되고, 자신이 죽게 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미담이 창작되는 등 당사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윗은 부국강성 정치권력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다윗의 전설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권력자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고 지금의 기복신앙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윗으로 수렴되는 시오니즘은 민족적 배타주의를 낳았고, 다윗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의존하는 무책임한 신앙인 되게 하는 일에 일조했습니다.  

 

세번째 장면의 다윗의 모습은 희망이 간절한 이에게 빛이 되는 모델입니다만, 역사 속에서 이것이 끼친 효력을 볼 때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한, 위험한 모델입니다. 성서는 다양한 시대가 겹쳐 있습니다. 다윗의 세 가지의 장면들도 겹쳐져서 2차원의 지면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한 거플씩 벗겨내면서 다윗을 읽어보았습니다.

 

에베소서 본문을 보겠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19절에 있습니다. 에베소의 교우들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총 가운데 살기를 기원하는,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첫번째 소망은, 신앙인이 지식에 매여 있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감안한다면 이 지식은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의 지식은, 육체라는 한계를 극복하여 영에 도달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지식을 초월하라는 권면은, 육체를 버려서 영에 이르려고 하지 말고, 또 영에 이르기 위해 인간적인 힘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깨우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랑의 비밀을 깨우치고 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그 시작은 마음에 그리스도를 품는 것이라고 사도는 말합니다.(17절)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내 마음속에 있다, 있다고 주문을 외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 과정을 위해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고 실험하고 또 확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확대하여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력을 경험합니다. 사랑의 확장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을 체험하는 것! 사도는 이것이 진리요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확장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나누어 받는, 이 진정한 신앙을 위해서는 두 가지의 요소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속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줄곧 “속 사람"과 함께 “겉 사람"을 말했습니다. 세속에 영향을 받고 흔들리는 “겉 사람"과 다른 “속 사람"은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입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만, 인간이 가진 “겉"과 “속", 두 가지 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겉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물질을 지향하는 원심적 속성이라면, “속 사람"은 하나님을 인지하고 깨달을 수 있는 구심적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려면 “겉 사람"과 “속 사람"은 둘 다 중요한 요소이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역학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원심력이 세질 수록 구심점의 무게도 더해져야 합니다. 세속에 현혹되어 “겉 사람"의 강한 원심력으로 “속 사람"의 구심점의 자리를 이탈하게 된다면 존재가 파괴되고 맙니다.

 

다윗의 왕권으로 “겉 사람"이 강대해지고 부요해지는 만큼, 예언자가 고수하려 했던 야훼사상 곧 “속 사람"은 더욱 굳건히 구심력에 무게를 더해야 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속 사람"으로 기후재앙을 반성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겉 사람"인 우리 문명의 가치가 보전되는 것입니다. 생태정의란, “속 사람"의 신앙으로 “겉 사람"의 탐욕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속 사람"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속 사람"으로 불어와 하나님과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역사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을 살피는 이 수행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속 사람"을 성령께서 강건하게 해주셔서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품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주체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서로 그 사랑을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함께 확장해 나가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을 이 땅에 가득하게 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진리입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의 풍성함" 이것은 사도 바울의 핵심사상 중에 하나입니다. 이미 하나님 안에 풍성하신 그것을 풍성히 선물로 받는 것! 이것을 목표로 두고 신앙생활을 하자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때때로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을 우리가 누리는 것! 이것은 사랑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로 모이는 까닭은, 우리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넓게, 길게, 높게, 깊게 확장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최대한 크게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넘어서 각 가정과 일터와 이 사회와 한반도와 온 세계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나누기 위함 입니다. 이것은 신앙에서 오는 지극한 기쁨입니다.  

 

다윗의 세번째 장면에서 눈살이 찌뿌려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나눌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면에서 풍성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 공동체로 우리가 함께 모여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험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넓어지도록, 길어지도록, 높아지도록, 깊어지도록 함께하는 우리가 함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속 사람"을 두루 운행하시며, 우리 가운데 풍성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이 넘쳐서 세상을 사랑으로 적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니 그 온기를 하루하루 느끼십시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십시오. 우리의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사랑으로 “풍성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이 이 땅 위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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