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 20240818 성령강림후16
“그리스도인의 지혜"
왕상2:10-12, 3:3-14 시34:9-14 엡5:15-20 요6:51-58
성령강림절기에 오늘 우리는 지혜를 주제로 한 성서를 읽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지혜란 성령의 반응인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인 성령을 느낄 때 우리는 지혜의 존재로 화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지혜라는 주제를 두고서, 시편을 포함한 오늘의 네개의 성서본문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지혜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지식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지식이 어떤 물체라면 지혜는 물체를 다루는 사람의 어떤 능력으로 이해됩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기술, 삶을 위해 다뤄지는 유익한 능력입니다. 지식을 잘 다루는 지혜로 말미암아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세상의 원리 또는 법칙을 통달하여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게 하는 인간의 특수한 능력, 이것이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지혜는 관계의 올바른 정립 속에서 순리를 바르게 따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과의 정확한 법칙을 아는 것,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살필 줄 아는 것. 동양의 지혜는 이런 바탕이 짙다고 생각됩니다. 관계 속에서 겸손한 대응, 무위자연의 섭리, 연기설 등 동양의 깨달음의 종교사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들입니다.
제1성서로 문화적 배경을 형성한 유대교는 토라, 곧 율법에 지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토라)에 따라 사는 삶을 지혜로운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오랜 공동체적 삶의 결과로 빚어진 율법에는 분명히 온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지혜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교조적으로 맹신된다면, 율법을 따르는 삶은 결코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이 지혜를 담은 것인지, 아니면 율법이 살아있는 지혜를 화석화시켰는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예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지혜를 바탕으로 성서가 증언하는 지혜의 깊은 의미를 살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이 가르치는 지혜의 담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제1성서의 열왕기상의 본문입니다. 잘 알려진 본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부국강성이 되게 한 다윗왕이 죽고 이제 그 뒤를 이어 젊은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왕의 자질을 단련합니다. 그 성실함에 하나님이 보응하시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시자 솔로몬은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선과 악을 분별하여 백성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게 하소서" 하고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렇게 간청하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 부귀와 영화를 내려 주십니다.
솔로몬은 기브온의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를 드린다는 것은 제사를 지낸 후 희생제물을 공동체가 함께 먹고 나누는 잔치로 이어졌습니다. 즉 솔로몬이 일천번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기브온의 사람들을 위해 천번의 잔치를 배설했다는 것이 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봉헌한 제물을 공적으로 나누어 공동체를 먹이는 것,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백성을 먹이는 일이었고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흡족한 마음에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지혜로운 마음"을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이때의 지혜는 “귀 기울여 이해하는 마음" “인내심"을 뜻합니다. 즉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일에 있어서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간구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간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솔로몬의 지혜였습니다. 이같은 솔로몬의 설화가 전해진 것은,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운 왕을 고대하는 백성들의 염원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처럼 백성에게 선을 베풀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백성의 호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인내심 많은 지혜로운 왕을, 민중들은 고대했던 것입니다.
시편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일만 하는 사람,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이 곧 지혜자입니다. 타인에게, 이웃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선한 일, 그리고 평화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선한 삶,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선행과 평화추구 속에 지혜가 있습니다. 지혜자는 부족함 없이 인생을 즐겁게, 좋은 것을 오래보며 사는 축복을 얻는다고 시편기자는 증언합니다.
에베소서에서 지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깨달아 세월을 아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며,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가슴으로 하나님과 잇닿아 있는 사람이며 항상 삶을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고, 십자가를 통한 인류구원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난과 부활의 의미, 그것을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지식이나 논리로 이해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속사람”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감화될 때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속의 논리를 거슬러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포부. 이것을 위해 자기의 생애를 바치는 것. 이같은 숭고하고 신성한 것이 곧 지혜입니다. 지혜자는 신성한 노래를 주고받는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 교회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지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 참양식과 참음료를 먹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리시고자 세상에 보내신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참양식으로 먹는 사람입니다. 인자를 먹는다고 하여, 인육식신, 인신공양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취하는 것은, 인자의 살과 피를 내 몸속으로 받아들여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현존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현존하는 코이노니아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신인합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세상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이 곧 지혜자입니다. 세상을 살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지혜자는 하나님의 그뜻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네개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란? 이렇게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며,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 그래서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과 잇닿아 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 부족함 없이 즐겁게 오래도록 좋은 것을 보면서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 곧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웃과 타자에게 선을 베풀고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민감하게 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우리 서로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만찬예식으로 이것을 기념합니다만, 이 의례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의례로써 신인합일을 체험하고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서가 증언하는 지혜의 담론을 이 세상에 펼쳐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감수성과 능력으로, 생명 정의 평화를 세상에 공급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는 “지혜의 프로젝트" 수행자로 우리는 파송을 받았습니다.
지난주 우리나라는 제79주년 8.15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한 이 나라의 광복을 기념하는 국가절기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79년동안 전승된 광복의 의미를 반역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의 취지를 전면으로 거역하고, 일제 식민지배에 관한 과거사 언급이 전혀 없는, 오히려 일제의 전쟁범죄 역사를 모두 지우는, 대통령의 참담한 축사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일제의 과거사 문제가 한일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일 공동이익, 한미일 파트너 협력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선전포고를 하듯 적대적인 흡수통일을 겨냥하면서 수구세력의 결집을 도모했습니다. 이같은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인 역사퇴행, 친일행각은 지금 우리 민족에게, 국민에게, 역사를 향하여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뉴라이트의 몰상식적인 사상을 정치적인 지배이데올로기로 구축하려는 허황된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행정부는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성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는 뉴라이트 사상의 도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2006년 이명박 정부 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뉴라이트 사상은 정치적으로 강요하려는 보수세력의 이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몰상식적이고, 현실이해에 오류가 많고, 이기적인 인간관에서 기인한 것이라 정상적인 사상이라고 말하기가 조금 무색합니다.
신보수 이데올로기인 뉴라이트 사상은, 한국사회 1950년대 냉전반공주의에서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원에 세력화하고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장착했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 보수의 지배이념으로 반공주의를 확립하고 민주세력을 탄압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면서 이들이 잠시 주춤했습니다만, 민주화의 저항을 억압하는 박정희 개발독재정권의 무기로 다시 채용됩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도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지배이념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6월항쟁에 다시금 주춤했지만 노태우, 김영삼 정부까지 이들의 반공주의와 개발주의는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이에 보수세력은 긴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뉴라이트 세력을 확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보수언론과 협작하여 빠르게 세력화하였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대북강경론을 주창하고, IMF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세를 등에 업고 개발독재의 야욕을 연장시켰습니다.
뉴라이트 사상의 주장은 담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억지주장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반일적 역사관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근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성과라고 보면서 일본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친일파의 공헌을 내세웁니다. 해방과 독립을 위한 희생은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합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강제징용, 독도 등의 이슈에 대해서 일본 편에 서서 주장합니다. 또 뉴라이트 이들은 반북주의를 노골화합니다. 북한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점령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실증과 어긋난 현실인식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근대문명화를 이루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합니다. 국가적 자주성 보다는 개방을 강조하고 외세 침략을 합리화하면서 남한사회에 일본과 미국의 개입을 옹호합니다. (박태준, 정해구)
뉴라이트가 득세한 이 어리석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이 어리석은 권력을 우리의 지혜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생명 정의 평화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반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인간성이 결여된 이기주의와, 언제나 강자에게 붙을 수 있는 기회주의가 상식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닌 까닭입니다. 시장지배주의 하에서 약자가 울부짖고 도태되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북한을 대적하고 무력과 전쟁으로 흡수통일하려는 공작으로부터 한반도의 생명과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 세상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있는 힘을 다해 평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 모든 지체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날을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노래하며 하나님나라의 선교를 함께 이루어가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우리 향린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지혜로운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 참 양식을 하루하루 먹으며 사십시오.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하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면서, 이 세상의 어리석음을 이기는 지혜자로 사십시오. 성령께서 충만함으로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