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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네 사랑이 너를 구원하였다 ㅣ 장동원 ㅣ2024-09-08

by 이민하 posted Sep 11, 2024 Views 1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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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09-08

 하늘뜻펴기 20240908 창조절2

 

네 사랑이 너를 구원하였다

(22:1-2, 8-9, 22-23, 2:1-17, 7:24-30)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정의로운 평화와 아름다운 기쁨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오랜만에 강단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오랜만에 이 자리에 서니, 2018년 초에 평신도 하늘뜻펴기를 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상황이었는데요. 벌써 시간이 훌쩍 흘러 6년 반이나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한테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전도사가 되었고, 목사수련과정을 마쳤고, 대망의 목사고시를 합격하여! 안수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약간 궁금한 분도 계실 것 같아요. 제가 청소년부 전도사로 2년간 시무하다가 2021년 말에 사임을 했는데, 그동안 어떻게 이 과정을 거쳐왔는지도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당시 사임을 하고, 잠시 을 누리다가 대한기독교서회라고 하는 교회연합기관에 부름을 받아 목사수련생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독교사상이라고 하는 신학 전문 월간지와 단행본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필자들에게 글을 받아서 교정하고 편집해서 책을 만드는 일입니다. 매일 신학 글을 읽다 보니, 신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유아유치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유영상 전도사님과 선생님들, 부모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순수함, 천진난만함 덕분에 아주 행복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의 것과 같다는 말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단순히 교사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많이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서두에서 제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7-8년 전 청년으로 향린에 와서 신학을 하게 되고 전도사를 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한 이 모든 것이 향린 교우들 존재 덕분이라서 저의 여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기간 꾸준히 지원해 주시고, 성장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은 성가대 분들입니다. 저를 향린에 잘 적응하게 해주시고, 배우자까지 만나게 해주신 성가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늘뜻을 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창조절 둘째 주일입니다. 창조절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창조 섭리를 찬양하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존재적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절기입니다. 저는 최근 2년째 주말마다 중랑구에 있는 망우산을 오르고 있는데요. 망우산에서 걷기 기도를 할 때마다 정말 그 존재적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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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망우산을 잠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화면에서 보시는 것처럼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있는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주말마다 산을 오르기 전에 교회력 성서 본문을 먼저 읽고 묵상합니다. 그런 다음 산에서 한 발 한 발 걸으며 그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그 말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하나 되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화면에서 보듯이 유관순, 안창호, 한용운 조봉암 선생의 묘역이 있는데요. 독립운동가들의 얼과 혼이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과 아름다운 자연과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서로 뒤섞여서 큰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산 기도와 걷기 기도를 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기후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자연이지만, 자연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겁니다. 매주 달라지는 온도와 색깔, 향기, 소리, 촉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화면을 한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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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노란색, 보라색, 분홍색 꽃들이 만개하고요. 여름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뻗어 생명력을 뽐냅니다. 가을에는 노랗고 붉은 낙엽과 단풍이 참 고즈넉하게 드리웁니다. 겨울에는 설산이 절경을 선물합니다. 이렇게 색깔, 온도 등 매일이 다르고 매주가 다릅니다. 이러한 자연의 생동함을 오감 즉 온몸의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따금 고양이 가족을 만나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이처럼 망우산에서 만난 자연은 저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의로운 길을 걸어갔던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 지구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기후위기에 맞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라는 요청입니다. 그것은 바로 온 마음과 온 뜻과 온 힘을 다하여 행동하는 내면의 영성을 키우고, 그 심연의 에너지와 기운이 추동하는 바를 온전히 따르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마음에 품고 오늘 주어진 성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제1성서 잠언의 말씀입니다. 잠언은 지혜문학으로서 당대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에서 유행하던 격언, 속담, 어록 등을 하나로 모은 책입니다. 대표적인 주제는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의 사고인 인과응보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잘못을 하면 심판을 받고, 선을 행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21절에서는 재산보다, 은과 금보다 명예와 은총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돈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살라는 것이지요. 2절에서는 하나님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모두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고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뭔가 죄를 져서 벌을 받아 가난하다고 여겼는데,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계시지요. 오히려 하나님은 제1성서 전반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약자 보호법을 강조하시고, 이 본문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분명 하나님의 형상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잠언은 가난한 사람을 압제하며 악을 행하는 이들이 결국 재앙을 면치 못하게 되고, 그러한 악의 기세도 결국 꺾이고 만다고(8) 증언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을 잘 보살펴주면, 즉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 복을 받는다고 잠언은 분명 말하고 있습니다.(9)

 

이뿐만이 아닙니다. 22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것을 함부로 빼앗지 말고 그들을 압제하지 말라고 하고 있고, 23절에서는 주님께서 직접 가난한 이들의 변호인이 되셔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가난한 자들을 노략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고 섬뜩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악을 행하면 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줘라.’ 바로 그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 잠언 말씀의 핵심입니다.

 

다음은 제2성서 야고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소제목(차별을 경고함)부터 분명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데요. 즉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지요. 여러분은 지금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 금반지를 끼고 있는 부자에게는 좋은 자리를 주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여러분의 발 밑에 앉히려고 합니다.(2-3). 그렇게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4) 이렇게 예를 들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택해서 풍성한 믿음을 갖게 하셨지요. 즉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인 것입니다.(5) 이처럼 야고보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큰 계명을 잘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8) 그런데도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하면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므로, 범법자가 된다고까지 경고합니다.(9-10) 다시 말해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차별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겁니다.(13) 앞에서 읽은 잠언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가 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이웃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15) 그저 말로만 때우면 그게 해결이 됩니까? 16절 말씀처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이렇게 말만 하고 정작 필요한 물질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16) 이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17) 야고보서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예수의 큰 계명을 잘 믿고 잘 행해서 이웃을 차별하지 말고, 전심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투쟁하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두 본문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앞 두 본문이 행함을 강조했다면, 이 본문은 믿음을 강조하는 본문인 듯합니다. 본문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마가복음 5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5장에서는 예수님이 군대 귀신(레기온)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5:1-20),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걸린 여성을 고쳐주고 계십니다.(5:21-43) 여기서 치유 받은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지요? 바로 간절한 이들입니다. 희망도 꿈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람들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용기 있게 나서서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구원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어서 예수님은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과 풍랑을 잔잔케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데,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의 모습이 행간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5장과 6장은 서로 대비됩니다. 믿음이 강한 민중들의 모습(5)과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의 모습(6)을 대비시키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7장의 앞부분, 지난주에 함께 읽은 교회력 본문입니다. 여기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결법을 어긴 것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정결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항상 손을 깨끗이 씻고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에 맞서 예수님은 너희 바리새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해도 너희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고 꾸짖습니다.(7:6) 사람의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고, 오히려 사람 안에서 사람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팩트폭격을 하시지요.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바리새인들 너희 속의 나쁜 마음이 스스로를 더럽힌다는 겁니다. 저는 이 나쁜 마음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가난한 자들이 함께 모여 더러운 손으로 밥 먹는 게 나쁜 건가요? 그렇지 않죠.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이 시작됩니다. 그리스 사람인 시로페니키아 여성에게는 귀신 들린 딸이 있습니다. 그 여성이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에게 간청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충격인 것은 우리의 인자하신 예수님이 갑자기 너무 매몰차게 몰아붙인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7:27) 이 말씀 참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당시 시대적 배경을 유추해보면 그리스 사람들은 나사렛 촌동네에서 태어나 기적을 일으키고 다니는 예수를 이방신을 모시는 무당쯤으로 폄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로페니키아 여성은 자신이 살아온 문화에서 끊임없이 그런 선입견을 주입받았을 텐데, 그럼에도 그것을 뒤로 하고 용기 있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놀라운 사건이지요. 게다가 개들이라는 끔찍한 모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딸을 향한 신실한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딸이 죽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절대적 고난, 상상도 못할 슬픔과 위기 속에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입니다. 자기를 초월하는 믿음, 신실한 믿음이 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도 엄청나게 놀랐을 겁니다. 자신의 하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간청한 마태복음의 백부장(8:5-13)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 백부장을 두고 지금껏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아까 5장에서 살펴본 회당장과 혈루증 걸린 여성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시로페니키아 여성의 믿음이 그 딸을 구원했습니다. 이제 귀신은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짧게나마 마가복음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본문을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단순히 믿음만을 강조하는 본문으로 느껴지십니까? 앞에서 살펴본 잠언과 야고보서가 행위만을 강조하는 본문으로 보이십니까? 저는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면서 이 본문을 깊이 묵상했는데, 이를 통해 이 본문이 단순히 행위냐, 믿음이냐라는 이분법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네 사랑이 너를 구원하였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저는 이 힌트를 아까 바리새인들 이야기에서 얻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했죠? 율법의 깊은 차원을 무시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행하기만 했습니다. 정결법으로 이방인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차별했지요. 예수는 이에 대항해 분명 경고합니다. 너희 사람의 마음에서 더러운 것이 나온다고요. 바리새인의 마음은 고집과 완고함, 으스댐, 교만과 탐욕, 권력욕 등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한 마음과 믿음이 추동하는 결과는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에게는 믿음이냐, 행위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이 중요했던 겁니다. 바로 그것이 타자를 향한 사랑의 믿음인지, ‘사랑의 행위인지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걸 몸소 보여줬지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차별받는 이들, 죄인들을 모두 식탁으로 초대해 손도 안 씻고 밥을 먹었습니다. 나눴습니다. 그게 바로 환대의 식탁입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사랑했지요. 아마도 예수의 식탁은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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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야코포 바사노의 <최후의 만찬>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는 많이 다르지요. 다빈치의 그림이 전형적인 초월적 예수, 거룩한 하나님을 그리고 있는 반면, 바사노의 그림은 그러한 정결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지도 않았고, 질서가 잡혀 있지도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원하는 정결과는 많이 다르죠. 예수의 식탁은 이 이미지처럼 차별받는 이들과 나누는 평등과 환대의 잔칫상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진리를 위해 부단히 기도하고 정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실수하고 넘어지나 봅니다. 이방인인 시로페니키아 여성을 차별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 여성은 예수님을 다시 진리의 길로 이끕니다. 사랑과 환대의 길로 다시 들어서도록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편견과 체면 다 내려놓고 모욕받아도 그냥 엎드리며 오직 약하디 약한, 쓰러져가는 불쌍한 딸, 그 민중을 살리기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그게 바로 타자를 향한 사랑의 믿음이요, 죽음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믿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자기를 초월하게 하고, 변혁적인 행위를 가능케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과 행위로 나눌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추동하는, 존재론적 진리의 양태를 잘 보여준 믿음의 행위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행위는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의 자기초월적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사회를 변혁시키고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형시킵니다. 지금 여기, 우리 앞에는 수많은 차별받는 약자와 소수자가 있습니다. 자연, 동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난민, 모든 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재 그대로 찬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냐 행위냐의 논쟁을 넘어 온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영성을 키워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영성은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순간의 빛남과 찬란함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침묵하는 영성을 훈련해야 합니다. 즉 고요하게 머무는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때로 산을 오르며, 길을 걸으며,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일상의 순간에 감사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내 안에 피어나는 빛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 가는 일에 투신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은 창조절 둘째 주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다 함께 하나님의 창조를 노래합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합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다른 이름은 탐욕입니다. 반면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은 행함입니다. 그 행함의 다른 이름은 공허함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탐욕과 공허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믿음과 살아 있는 행함을 노래합시다. 살아 있는 믿음이 충만하여 그것이 살아 있는 행위로 흘러나오기를 소망합니다. 타자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온 존재를 있는 그대로 환대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머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파송사]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믿음이냐, 행위냐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맛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타자를 향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조건 없이 환대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며 존재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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