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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신음하는 피조물을 해방하는 생명의 잔치 ㅣ 김경호 ㅣ 2024-10-06

by 김지목 posted Oct 12, 2024 Views 3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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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0-06

2024년 향린공동체 연합예배

 

신음하는 피조물을 해방하는 생명의 잔치

김경호 목사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호세아 4:1-3)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18-2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빛이다. 빛은 모든 것들 위에 있다. 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왔고 모든 것은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나무를 쪼개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 올리라. 그러면 너희는 거기 있는 나를 발견하리라. (도마 복음 77)

 

아직 절차가 마쳐지지 않아서 오늘 선언식은 아니지만 그동안 정성으로 준비하신 향린공동체 생태정의 선언문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 공동선언문은 ‘지금 우리 앞에 빈 의자가 있다“라는 일반 선언문의 방식이 아니고 문학적인 말로 시작한다. 빈의자는 누군가가 앉을 수 있도록 일부러 비워둔 의자이다. 그런데 그 의자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나이가 어린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지구에 있는 인간 너머의 존재, 그리고 목소리 없는 존재들을 위한 자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태정의라고 하여 생태의 문제가 정의와 연결되고 있음을 밝힌다. 아주 의미있는 선언이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 명문으로 짜여져있다. 그동안 수고하신 생태정의 TF 팀들 수고 많으셨다. 

 

2013년에 우리나라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세계대회는 ‘생명’이라는 주제였다. 그동안 WCC 선교의 개념에서 강조하던 정의, 평화를 넘어서서 모든 피조물, 생명, 우주 자체로 하나님의 선교가 확대되었다. 

 

여기서는 인간의 죄의 용서와 인간구원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구원관을 넘어선다. 모든 생명, 모든 피조물의 번성을 선교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선교, 생명의 구원의 문제는 단순히 번성과 축복에만 있지 않다. 이것은 생명을 유린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세력들에 대항하고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이일은 피조물의 해방과 관계된다. 이제 선교는 우주적 차원, 전 생명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이 문서는 선교를 “생명의 잔치”라고 한다.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생명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선교의 목적은 “생명의 충만함”, “성령의 능력에 의한 계속적인 재창조”, “온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추구할 새로운 선교과제이다. 

 

교회가 단지 정해진 울타리 안의 영역이 아니듯이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생명을 위하여 가장 행복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목회의 영역이다. 우리 선언문에 나오는 인간 너머의 존재들이 우리의 새로운 목회의 영역이 된다. 

 

요즈음 기후위기와 관련된 국제회의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책임론이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중국등의 나라들이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한국도 만만찮다. 그러나 이들은 세계화라는 명분 속에 공해산업들을 이미 제3세계국가들로 이전했다. 가난한 나라들은 이제라도 먹고 살겠다면 공해 산업을 받아 들였다. 물건은 그들이 생산하고 쓰기는 전 지구가 쓰는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기후 문제를 책임지기 위해서 탄소세를 도입하고 무역에 제제를 가하겠다고 한다. 이는 미래에 발생시킬 국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반면 가난한 나라들은 그동안 발생시킨 놈들이 책임지라는 공방이다. 

 

우리 인간은 추상화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미 호모사피엔스 이전 약 70만전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나 하이델베르크 인에게도 무덤에 그가 생전에 즐겨 쓰던 물건들을 함께 매장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일찌감치 인류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하고 삶을 넘어서서 추상화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다리뼈가 골절된 사람이 뼈가 접합된 화석이 발견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다리가 골절되면 사망이다. 바로 무리 가운데서 버려진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부러진 다리가 다시 붙을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 돌보아 주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당장의 불편함을 넘어서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주신 복이다. 이것은 나의 입장을 넘어서서 남의 아픔을 살피고, 서로를 위하라고 주신 능력이다. 긍휼히 여김이 하나님 본래의 심성인데 이것은 나의 경험을 넘어서고, 또 인간 너머의 존재들과 소통하고 돌볼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호모사피엔스 20만 년 전부터 생겨난 현생인류인데 덩치는 작지만 인간보다 훨씬 큰 맘모스라든가 매우 강력한 짐승들을 물리치고 지구의 최강자가 되었다. 그것은 서로 협동하는 능력이다. 나를 넘어서 서로 협력한다는 것도 당장 눈앞의 불편을 감수하며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편을 넘어설 수 있는 추상화 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호모사피엔스는 민주, 정의, 평화, 생태라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 제도화 했다. 광화문에 십만 백만의 사람이 모여도 질서정연하게 흩어지고 심지어는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것을 촛불에서 경험했다. 그런데 동물이 그 숫자만큼 모았다고 하자 통제 불가능이다. 난장판이 되기 쉽다. 동물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모일 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추상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 이 능력은 오늘 불가능해 보이는 지구 생태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남은 우리의 희망이고 오늘 우리가 생태정의 선언을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2-3년간의 짧은 멈춤이 일어난, 코로나 기간에 하늘의 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 지구 곳곳에 어떻게 생명들이 되살아나는지 그 가능성을 보았다. 추악한 자본들은 이미 늦었다며 비관론을 퍼뜨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의 탐욕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모든 만물의 출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2. 모든 만물은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다. 3. 모든 만물과 우리는 동일하신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형제, 자매의 관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도마복음의 본문은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빛이다. 빛은 모든 것들 위에 있다. 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왔고 모든 것은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나무를 쪼개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 올리라. 그러면 너희는 거기 있는 나를 발견하리라. (도마복음 77)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마지막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누가 참 잘했다고 인정하기 전에, 그런 말을 기대하기 전에... 하나님은 스스로 좋았다고 느끼고 생각하셨다. 하나님은 자신 안에 이미 최선을 다하셨고, 완성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온갖 공을 다들이신 결과물로 세상이 생겼고, 우리들이 생겨났다. 

 

하나님은 연인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에 빠지신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그리워하신다. 

 

로버타 본디(Roberta Bondi)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흠뻑 빠져계신다”라고 한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과 만났던 그 사랑의 기억이,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냉철한 비판자로 있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사랑의 관계 속에 있기를 갈망하신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의 사람됨을 놀라울 만큼 바꾸어 준다.   

 

파리협약은 지구의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의 수준보다 섭씨 1.5도 이내로 상승하도록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보고서에 의하면 2023년 11월에 이미 1.43도가 증가했고 아무도 올해 목표치인 1.5가 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몰려오고 이에 대응하는 황급한 조치들은 더욱 엄청나고 견딜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IPCC는 2100년에 3도 상승을 예상한다. 우리들의 평균 체온이 3도 올라가서 40도가 되면 견딜 수 있겠는가? 이미 작년도에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지구 열대화’로 바뀌었다. 구스테프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가 마침내 기후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탄식했다. 

 

올해 추석은 제 평생 처음 맞는 추석이었다. 휴일이라 낮에 산보 하러 나갔다가 어찌나 덥든지 기겁을 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현재 치명적인 폭염에 노출된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3이지만 금세기 말에는 3/4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지구는 항상 기온이 내려가는 기간과 올라가는 기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지구 45억년 역사 중에 지구상의 생물들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는 위기들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구의 변화는 수십만 년에 거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난 현상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후의 변화는 너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수 만년도 아니고 수 천 년도 아니고 오늘 우리들이 생존해서 살아가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위기들이다. 그것이 수 만년에 걸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지구에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멸종하고 다른 생명체들이 지구의 주인으로 바뀌었다. 

 

오늘 향린 공동체의 생태정의 선언은 아주 구체적인 실천의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가 실천해야 하는 몫은 남겨 놓았다. 각 교회에서 논의를 통해서 채워가야할 부분이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을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다. 육식을 억제하고 채식을 늘려가는 방법, 우리의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것, 일회용 제품 등을 쓰지 않는 것, 내가 생태위기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자발적인 탄소헌금을 해서 그것을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활동에 사용하는 것, 생태운동을 하는 단체 등을 후원하는 것, 생태 문제로 소송할 수 있는 기금 마련을 마련하는 것,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의 생태 공약을 유도하는 것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고 이것을 계기로 각 교회에서 활발한 논의와 실천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연대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위해 상생하는 존재가 될 때 우리에게 찬양이 가능하다. 마지막 날(여섯째 날)의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다른 날에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파헤치고 쑥대밭을 만들며 심지어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훼방하는 행위이다. 이런 상태라면 하나님께서 이렛날에 안식하실 수 없다. 이레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신다는 것은 최고의 평화와 안정을 뜻한다. 우주 만물이 조화와 평화를 누릴 때 가능하다. 그 조화로움이 아름다움이고 하나님을 향한 찬미이다. 찬미야 말로 우주의 발생부터 계속 존재해오는 원리다. 그것은 전체가 부분들에 의하여 권리를 강탈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찬미는 권세들의 배반을 고쳐주는 치유행위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가 이 창조 세계 안에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삶은 찬미가 됩니다. 이 찬미는 우주의 발생부터 계속 존재해오는 원리입니다. 그것은 전체가 부분들에 의하여 권리를 강탈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권세들의 배반을 고쳐주는 치유행위입니다. 세상에 나가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주와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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