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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바늘구멍 통과하기 ㅣ 박희규 ㅣ 2024-10-13

by 이민하 posted Oct 17,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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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0-13

하늘뜻펴기 20241013 창조절7

 

바늘구멍 통과하기 

(욥 23:1-9, 16-17, 시 90:12-17, 히브리서 4:12-16, 막 10:17-31)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달라는 시편 기자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가 날을 세는 방법은 15절에 나온데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 만큼 우리가 재난을 경험한 햇수를 세어 우리에게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달라는 희망의 청원입니다. 이런 기도의 지혜는 상담사의 입장에서 보면 참 은혜로운 지혜입니다. 이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이제는 바닦을 쳤으니 앞으로는 좋아질 것 밖에 안 남았다는 계산은 고통 속에서 하기 몹시 어려운 계산이거든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의 어두운 세상을 같이 헤매다 보면 정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심연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여기보다 더한 어둠이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내담자의 상승 곡선은 경이로운 지혜이자 은혜입니다. 

 

한편 고통의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며 날을 세는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대하게 되는 중요한 담론의 장에서 자주 만납니다.“라떼는 말이야”라는 우리 시대의 매우 파워풀하게 작동하고 있는 담론이 있는데요. 여기에서 날을 세는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지요. 많은 날을 살아 본이가 적은 수의 날을 살아본 이를 향해 예전에 경험한 고통에서 자신이 어떻게 빛을 향해 나아갔는지를 밝히며 “라떼는 말이야”라고 운을 뗍니다. 젊은이더러 자신의 살아온 날들 속에서 좋은 교훈을 찾아보라고 권면을 하는 것이지요. 저도 살아 온 날들이 꽤 쌓이면서 “라떼는 말이야” 장르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 같아 요즘 참 걱정입니다.  

 

그러면서 제 딸의 세대를 바라보니, 이들은 이 시편기자와도, “라떼는 말이야”의 담론과도 너무도 다른 날을 세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세상이 붕괴될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대학 안가겠다 했던 제 딸래미의 타임라인에서는 살아갈 날을 세는 것은 매우 치열한 작업이더군요. 딸이 앞으로 살 날짜들을 세고 있으니 어미인 저도 날을 셀 수 밖에 없더라고요. 이 셈은 시편기자의 셈과도 다르고 라떼는 말이야의 셈과도 다릅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 밝음과 발전을 향한 숫자세기가 아니라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에서 점점 더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어려워지는 파괴와 붕괴로 향해 가는 날짜를 세는 작업이거든요. 이렇게 방향이 다른 날짜 세기를 해보며 시편기자가 드리는 기도를 드려봅니다.“우리에게 우리의 날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바로 이렇게 날을 세다보면 우리는 왜 변하지 않는냐는 답답한 질문이 몰려옵니다. 아무리 급박하다고, 앞으로 오는 재앙과 붕괴를 현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실험을 하고 설명을 해도 인간의 변화는 극히 느리고 답답합니다. “우리는 왜 변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날짜를 세어 보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됩니다. 여러분, 앞으로 딱 1년 밖에 더 살 수 없다면 여러분은 그 일년 동안 뭘 하시면서 사시겠습니까? 사실 이 질문을 제가 여러 군데에서 던져 봤는데 은퇴하신 분들은 주로 사시던대로 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의 답은 좀 결이 다릅니다. 우선은 하고 있던 일을 때려치고 정말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겠다고 합니다. 여행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5년이 남았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5년을 마냥 여행을 다니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바짝 하기에도 시간이 애매해집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에서는 하던 일을 때려치진 않더라고요. 하던 일을 어느 정도 하면서 무언가를 더 의미있게 지낼 생각을 하게 됩니다. 10년, 15년, 30년으로 시간을 늘려 보면 사실 사람들이 당장해야 할 선택은 사라지고, 현재 살고 있던 삶과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이 지낼 것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당장의 죽음과 당장의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는 우리는 과격한 변화를 강행할 수 있지만, 재난이 일정시간을 두고 미뤄지면, 한없이 행동이 느려지는 현상은 인간의 행동에서 여기저기 발견되는데요, 이걸 학자들은 region beta paradox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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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목표지점이 얼마나 멀어야 사람들이 걸어서 가지 않고 자전거로 가나를 실험한 결과를 그렸습니다. 묘하게 사람들은 1마일이 넘어가는 지점이 목표지점이 되어야 자전거로 갈 선택을 하게 되는데, 걸어서 1마일을 가려면 20분이 걸리니 자전거를 타고 10분 안에 도착하는 것이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전거가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걷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서 20분까지는 효율성이 떨어지더라고 사람들이 그 비효율성을 그냥 버텨낸다는 것이지요. 베타 구역은 바로 그 20분간을 나타내는 구역입니다. 20분이라는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 20분을 사람들은 훨씬 느린 방법을 선택하는 아주 묘하게 시간을 비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구간이지요. 우리는 현재 이 지극히 역설적인 베타 구역을 살아내고 있어서 살아갈 날들이 가져야 할 긴박함을 합리적으로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패러닥스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후위기의 긴박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이야기하는 섭씨 3도가 올라간다는 지점은 단순히 우리가 열대 지방에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생태계가 무너져 우리의 모든 식량이 더 이상 생산되지 못하고, 우리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정치체제가 무너져서 더 이상 인간이 살아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멸종을 한다는 지점입니다. 의학은 우리가 100세 세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오늘 태어나는 아이는 70년 후에 모든 것이 붕괴될 때 고통 속에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때 마다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를 복습합니다. 근데요, 여러분 제가 지금 방금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소리 하도 많이 들어보셔서 별 느낌 없으시지 않으신가요?  

 

너무 낯익어서 무감각하게 듣는 이 이야기들은 그래서 무의식 같은 암울함이 되어 먹구름처럼 우리 사회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 먹구름을 인식하고 지내는 학생들도 있고, 전혀 인식하지 않고 코앞에 닥친 문제들에 집중하고 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의 일선에서 몇 십년 동안 활동해 온 목회상담가이자 목회신학자인 Bruce Roger-Vaughn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상담하러 왔던 이들은 자기가 뭐가 힘든지를 정확하게 알았다고 합니다. 직장 안의 인간 관계에서, 가족이 겪은 고통 속에서 등, 아픔의 근원이 확실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요즘 상담을 찾는 이들의 우울의 근원은 허공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고, 내담자들은 이 고통이 딱히 어디서 연유한지를 말 못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세대에서 세상이 끝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 이들은 그들이 인지 못하는 먹구름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데 정부는 그들에게 애를 낳으라고 하고, 윗세대는“라떼는 말이야“라고 무게있는 조언을 합니다.  이런 먹구름을 어떤 이들은 생태불안감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기후트라우마라고 합니다. 무엇이 되었던 간에 이 먹구름은 베타 구역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세대가 머리에 이고 가는 고통이고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아픔입니다. 

 

나름 region beta paradox를 벗어나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남은 날을 세어보려고 하던 중 아주 이기적인 결론을 하나 가정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내렸던 결론과도 닮았는데요,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때, 차라리 나라는 존재를 제거해 놓는 것이 딸에게, 주변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딸래미한테 이런 생각도 해봤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이 녀석이 그러더라고요.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고, 자신도 하고 있고, 자신의 친구들도 함께 나누는 생각이라고요. 딱히 이런 생각이 우울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합리적인 계산을 하다 보니 도달했던 결론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그런 혼돈 속에서 목회상담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폭력과 혼동이 가득한 그 어느 역사의 순간에 위기에 관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저희 분야 학회에서 저와 매우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는 다른 동료 학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펼쳐지는 여러 재난의 시나리오를 들고 있는 목회신학자가 해야 할 일은 전 세대가 해야 할 일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성을 가지고 신학작업과 돌봄의 훈련을 진행해야 하기에 이 작업을 같이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 동료교수는 Cody Sanders라는 저랑 같은 세대 학자인데요, 이 친구는 여러 목사들과 이러한 미래에 대한 인터뷰들을 진행해 봤다고 합니다. Cody가 발견한 묘한 현상이 있었는데요, 목사들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줄어드는 교인 수, 교회 제정의 어려움 등 코 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목회 현실밖을 내다 보지 못하더라는 겁니다. Cody 교수가 목회상담을 가르치는 매우 유능한 친구라 정말 여러 모양으로 기후위기, 정치경제체제의 붕괴 등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접하게 될 위기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여러 모양의 질문들을 아마 아주 설득력있게 던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목사들은 매우 일관적으로 교회 내에서 자신들이 경험해온 좌절의 담론을 넘어서서 사고를 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가 온다고는 말해 왔지만, 그 위기 속을 어떻게 살아 볼지를 생각하는 것을 꺼립니다.  

 

생태정의를 위해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노력들이 이런 파국의 시나리오를 앞에 두고 보면 너무 비율이 안 맞는다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분리수거를 하고 에너지와 물자를 아껴쓰는 우리의 실천들은 재난을 없애는 노력이 아니라 재난의 시간을 늦춰서 다음 세대가 살아 숨쉴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한 안간힘의 노력입니다. 중요한 노력이고 계속 되어야 하는 노력입니다. 그런데요, 이 노력들이 앞으로 닥칠 일들의 시나리오 앞에서는 미미해 집니다. 사실 자동차와 석유 산업계에서는 몇 십년 전에 이미 끝낸 계산이더군요. 자신들이 팔고 있는 제품이 환경에 미칠 영향과 결국에 이를 파국에 대해 가장 비관적이고 심도있는 연구를 매우 일찍 끝내 놓고, 어짜피 인류가 붕괴될 것이기에 그때까지 최대한 돈을 벌어놓는 것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이득이라는 계산을 치밀하게 해놨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습니다. 온세계 사람들이 열심히 아껴써서 줄여놓은 탄소 발자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주변 국가들을 향해 터뜨리는 폭탄 하나가 만드는 기하급수적 탄소 발자국으로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조금 더 뒤로 미뤄보려는 파국 앞에 우리의 실천 사항들은 어찌보면 소꿉장난처럼 미약하고 이런 미약한 실천밖에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생태불안감의 먹구름을 더 짙게 물들게 합니다. 

 

이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서서 오늘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세상 착하게 살아온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어떻게 얻겠냐는 질문에 답해주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을 행하지 못한 부자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부자들의 헌금으로 목회를 이어나가야 하는 목사들에게 이 말씀을 액면가 그대로 전하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봐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따르지 못하기에, “가진 것을 다 파는 부분을 빼고” 이 말씀을 어서 추상적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에서는 이런 부분을 추상화할 필요없이 어짜피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내어 놓아야 하는, 혹은 쥐고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다가옵니다. 이 청년에게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 어쩌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다 팔아야 하는 것은 희망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질 거라는 희망,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 번영할 것이라는 희망, 좀 더 좋은 미래가, 좀 더 안락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라떼는 말이야 담론이 깔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버려야 할 때입니다. 라떼에는 정말 힘들게 고생했지만, 그 고생 끝에 낙이 올 가능성이 농후한 때였기에 그 고생을 감내하고 버텨낼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생을 하시면서 뿜어낸 매연과 열기가 쌓여 지금 너무도 몸편히 지내고 있어 보이는 다음 세대는 고생을 감내해도 누릴 수 있는 미래의 번영이 없을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런 희망을 버려야 다른 종류의 희망이 보일 수 있는 때입니다. 

 

이 희망은 region beta에서도 선명한 합리성으로 남은 날을 셀 수 있을때 생기는 희망입니다. 남은 날을 세다 보면 날들의 모습을 직면하고 그 날들의 성격에 맞는 작전과 전략을 짜는 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더 좋아진다는 거짓된 희망을 놓고 하는 계산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인간 사회 붕괴의 모습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찾는 이들이 보입니다. 붕괴학, 영어로는 Collapsology라 부르는 분야가 형성되어, 기후 붕괴, 생태계 붕괴, 식량체제 붕괴, 정치체제 붕괴, 경제체제 붕괴 등 여러 붕괴의 시나리오가 연착륙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붕괴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사고하고 전략을 형성하는 것은 붕괴의 시점을 지연시키는 것과는 매우 질이 다른 작업들을 요구합니다. 붕괴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연구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모으는 작업은 붕괴를 지연시키는 노력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지와 행동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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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고를 펼쳐나가는 이들은 부숴질 때 함께 부숴지자(Breaking together by Jem Brendall), 트러블이 있는 곳에 머무르자고(Staying with the Trouble) 초대합니다. 저는 이들의 연구와 대화하다 보니 비로소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즉 발전의 희망의 반대편에 서있는 붕괴를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우리가 제대로 같이 할 일이 있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이런 희망을 감히 가슴에 품어 놓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반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하신다면 이 붕괴 뒤에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 않으실까요?  

 

저번 주 우리의 성만찬 식탁에는 버섯과 곰팡이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우리의 밥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버섯들이 올라오곤 하는데요, 혹시 여러분은 두리안의 열가지 맛의 조화를 알게 되면 계속 안 먹을 수 없다는 것처럼 오만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는 자연송이를 드셔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한 번 사먹어 보려고 찾아보니 1kg에 한 50만원 안팎 하더라고요. 전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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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송이를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Anna Tsing 교수는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세상의 끝에서 피어나는 버섯)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숲을 베어 파괴한 폐허에서 자라나는 자연송이가 만들어내는 땅 밑의 세계와 땅 위의 세계를 탐색합니다. 생산자와 1차, 2차, 3차 소비자로 이해하는 먹이피라미드에서는 버섯과 곰팡이가 하는 일을 잔글씨로 쓰여진 각주처럼 이해하고 있었지만, 현 생태계를 연구하는 이들은 버섯과 곰팡이의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의 질량 중 모든 동물들의 질량을 다 합친 값보다 큰 질량을 가지고 있는 버섯과 곰팡이는 긴밀한 네크워크로 연결되어 우리 세상을 지탱해 왔습니다. 그들은 광합성과 뿌리의 흡수작용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영양을 식물들에게 제공하고, 숲의 생명을 살려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버섯과 곰팡이는 사람들이 망가뜨린 폐허 속에서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아 한없이 느린 것같아 보이는 분해작업을 해나가며 새로운 생명체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함께 살아나갈 공간을 재창조해 나갑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폐허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버섯과 곰팡이의 자리를 생각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 새로운 세상이 하나님 나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이 생겨날 때 돌을 모래로, 모래를 흙으로 만들어서 식물과 동물이 살길을 열었던 그들이 세상의 끝에서도 페허를 흙으로 만들어가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지가 첫째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은 버섯과 곰팡이가 창조하는 세상에서는 반드시 일어나겠구나 싶습니다. 저는 아무리봐도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바늘구멍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래도 제가 여지껏 준비해 온 설교를 교우들께서 꽤 좋아해 주셨던 것 같은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는 자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저 보고 아무도 설교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체념과 이 얘기는 어딘가에서 꼭 해야 한다는 소명감 사이에서 헤매다가 이런 설교는 하려면 향린교회에서밖에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생태적 전환은 예전의 푸르르고 너그럽게 풍성했던 지구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희망과 무관한 타임라인을 가지고 진행되는 폐허의 현장에 연착륙하기 위한 지혜를 도모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붕괴에 이르르는 날을 세어가며 폐허에 도달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붕괴 후 썩어가는 것들의 영양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이 시대가 해내야 할 생태적 전환입니다. 향린교회는 다른 교회가 감당하지 못한 시대가 주는 숙제들을 기꺼이 감당해 왔습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숙제는 이런 생태적 전환인 것 같은데 함께 고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래야 많은 걸 가진 부자인 우리가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싶습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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