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 20250413 사순절6 / 종려주일, 세월호기억주일, 씨뿌림주일, 4.19혁명기념주일
“향린의 시김새"
창2:5-15, 시51:1-19, 롬6:1-14, 마9:18-26
올해 예향 30주년 기념하면서 국악예배를 중점으로 연속 하늘뜻펴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개신교 근현대 선교역사 과정에서 두드러진 토착화 예배에 대해 나누면서 우리 교회의 국악예배가 주체적인 신앙고백의 결실이었음을 말씀드렸고, 우리 교회에서 국악예배가 자리매김하기까지 예향을 비롯하여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또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국악예배의 실제적인 내용인 우리음악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음악의 특징을 잘 살펴보고 이를 통해 더 뜻깊은 국악예배로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교우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에도 달았듯이 우리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김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국악예배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줄 수 있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우리가 국악예배를 도입한 취지는 “향린교인 생활실천다짐"에 드러냈듯이, “더욱 뜻깊은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뜻깊은"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근현대 역사는 제국주의 물결이 제3세계로 들이닥쳐 큰 혼란과 격동에 휩싸였던 시기였습니다. 한반도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었고, 정치 경제 문화적 차원에서 민족성과 주체성이 말살되었습니다. 이때 잃어버린 우리음악을 예배를 통해 되살리고 주체적인 신앙을 회복하자는 의지가 “뜻깊은 예배"에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전래된 서양의 예배양식에 우리 음악의 미를 적용하여 예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할 뿐만 아니라, 우리음악의 특유한 맛을 향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배문화를 창조해 나가자는 의지도 담겨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적으로 문화화inculturation 된 국악예배를 꾸며주고 있는 우리음악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이며 또 그 매력은 무엇일까요?
2.
서양에서 음악의 기본요소를 세 가지로 꼽는다면, 선율(Melody)과 리듬(Rhythm), 그리고 화성(Harmony)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화성이 강조되고 발전되었습니다. 선율의 흐름을 단음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음을 동시에 내서 단음이 아닌, 복음으로 연주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 음을 연주하니 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하모니를 연구하고 이것을 고도로 발전시켜서 묵직하고 풍성한 선율로 음악을 연주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니 리듬은 일정하고 단순하게 하고, 음들의 체계를 평균율로 구성했다는 것이 특징으로 남습니다. 그레고리안 찬트 같은 단음으로 구성된 음악도 있다고 합니다만 대체로 하모니를 강조하는 화성학을 발달시켜서 높은 수준의 음악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우리음악은 여러 개의 복음을 동시에 연주하면서 하모니를 고려하는 것에는 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단음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발전시켰습니다. 복음이 아닌 단음으로 연주하니 우리음악의 선율은 비교적 가볍고 자유롭게 운용되었습니다. 단음의 선율이 자유로우니 그 흐름의 변화도 다양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보다 음계의 획일적인 구분을 초월하여 음과 음 사이를 넘나들면서, 미묘한 감정을 예술적으로 다양하게 구사하는 음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음을 자유롭고 곡선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우리음악의 이러한 특징을 일컬어 농음/농현이라고 합니다. 음과 음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기교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시켜온 것입니다.
농음/농현의 기교에는 음을 떨어서 흔드는 요성, 미끌어 내리는 퇴성, 밀어올리는 추성, 굴리고 뒤집는 전성 등이 있습니다. 우리음악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농음/농현 기법을 구사하는 것을 일컬어 시김새라고 합니다. 시김새는 연주자의 예술성으로 자연스럽게 구사되는 것이기에 충분한 연습으로 곰삭혀 체화한, 삭힌 소리의 모양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김새는 서양의 멜로디에 해당하는 가락, 리듬에 해당하는 장단과 함께 우리음악의 3대 기본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이 시김새는 우리음악의 본질이라 할 수 있고, 우리만의 아름다운 멋스러움이며 또 우리음악의 맛깔스러움입니다. 우리네 국악기는 모두 농음/농현을 구사할 수 있고, 외래에서 전래된 악기일지라도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농음/농현을 연주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습니다. 우리가 국악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은 농음의 기교를 연마하면서 자신만의 시김새를 찾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 때 우리음악답게 찬송을 부른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농음을 살려서 노래를 부르면, “저 사람 시김새가 참 좋다"고 평가합니다. 농음을 잘 숙달하여 좋은 시김새로 노래를 부르면 “소리를 독특하게 잘한다"는 말이고, 또 “저 소리꾼이 저 소리를 저렇게 하기 위해서 연습을 많이 했고 그 농음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칭찬입니다.
시김새 예1-농음) 산밑으로 내려가자
산밑으로 내려가자 산밑으로 내려가자
주의 발길 따라서 산밑으로 내려가자
우리 힘은 작지만 아주 작지만
주께서 쓰실 때는 크게 쓰시니
시김새 예2-농현/요성) 가야금, 피리 : 예향
3.
화성학을 고도로 발전시킨 서양음악이 대단하고 훌륭한 것과 같이, 우리음악의 시김새라는 음악적 특징 또한 못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가대를 통해서 서양음악을, 예향을 통해서 우리음악의 진미를 맛보면서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향린 국악예배의 매력이 아닐까요?
서양화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두껍게 덧칠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그려내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화선지 담박하게 일필휘지로 그려낸 우리미술에서는 여백의 공간에서 감상자의 상상력을 채울 수 있도록 깊이 사색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서양화의 관점으로 한국화를 두고 “왜 그리다 말았느냐”고 품평하면, 그것은 우리네 아름다움에 대해 모르고 하는 실수입니다. 이렇듯 우리음악의 깊은 의미와 본질을 알아갈수록 우리 국악예배는 더욱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현대를 지나오면서 지금까지도 우리 문화를 천시하고 또 악마화해온 우리 한국교회는 더욱 진지한 자세로 우리음악의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우리 향린교인 생활실천다짐 3항에 담겨있습니다.
우리음악의 고유한 특징인 시김새, 그것을 성악으로 표현하는 농음은 사투리처럼 지역마다 다른 특색으로 나타납니다. 경기수도권의 경토리, 강원경상지역의 메나리토리, 전라지역의 육자배기토리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이 시간에는 육자배기토리의 굵게 떠는 시김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이런 농음이 발달했을까요? 사투리의 근원과 그렇게 발달한 이유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듯이 각 지역의 토리 또한 딱 잘라 개념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육자배기토리의 굵게 떠는 이 농음은 가슴에 맺힌 한을 눌러, 떨어서 흔들어서 풀어내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아서 죽을 지경이 되면 몸은 죽지 않기 위해서 웃게 만든다고 합니다. 실성한다는 말이 이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비슷한 반응으로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이면 몸은 바들바들 떨게 됩니다. 가슴에 한이 맺힐 만큼 충격을 받으면 몸은 이것을 풀어내기 위해 몸을 떨고 울분을 뱉으면 떠는 소리를 내게 됩니다. 가슴이 턱 막혀서 말도 안 나오고 숨조차 쉴 수 없게 되는 한 맺힌 것을 풀어내는 한풀이의 소리가 육자배기토리의 떠는 농음이 되지 않았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세월호기억주일입니다. 벌써 11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팽목항 바다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이제는 사랑하는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힌 유가족들의 울음소리. 참사의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현장으로 내려가서 유가족을 위하여 자원봉사를 했다는 분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유가족의 절규에 자신도 억장이 무너졌다고 하면서, 유가족들의 절규는 마치 소리 낼 수 없는 이의 큰 소리, 사람의 소리일 수 없는 차라리 큰 고통이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이전에도 해안가 민초들의 삶, 배가 뒤집어지는 슬픔 속에 한을 품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의 문화가 육자배기 떠는 농음으로 문화화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한 일입니다. 하늘뜻펴기 후에는 예향의 감사찬양이 이어집니다. 특별히 육자배기 떠는 농현이 특징적인 진도아리랑 곡을 연주해 줄 것입니다. 이어서 응답찬송으로 떠는 농음이 있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래 “고운 넋들 품어주소서"를 함께 부를 것입니다. 예향의 연주를 들으시면서, 민중의 한을 풀고 달래주었던 떠는 농음을 감상해 보시고, 응답찬송을 부르시면서 떠는 농음으로 세월호의 한을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 목표는 구원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가 구원을 받는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하나님의 생명 정의 평화로 다스려지는 저 하늘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우리는 희망합니다. 소망 가운데 우리는 온 생명이 구원을 얻는 카이로스의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선교에 최선을 하고하자 합니다.
구원은 죄의 극복으로 가능합니다. 죄의 길에서 회개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란 본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설정하셨던 그 세계, 그 나라를 지탱하던 정의를 무너뜨려서, 그래서 피조세계에서 평화가 파괴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분신과 같은 온 생명이 억압당하여 울부짖는 상태가 된 것. 하나님을 배반한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죄의 세상에서 동조하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죄책고백은 회개를 결단하는 것인데, 이것은 죄로 물든 이 세상을 다시 돌이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같이 죄를 극복하여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은 피조물이 풍요롭게 살도록,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이는 악한 권세보다 힘이 약하여 억압당하는 처지를 인정해버리는 굴종에 대한, 그리고 약육강식의 질서에 대한 거절입니다. 네 줄기로 갈라져 온 땅을 적시는 강들의 수원지인 에덴동산은 온 생명이 마땅히 생명 정의 평화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각시키는 상징입니다.
생명 정의 평화,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진 이 실낙원의 세상에서 그리스도교는 절망하지 않고 신앙의 힘으로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복낙원의 길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하나님나라를 희망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시편 기자는 절망에 굴하지 않고 죄에서 씻겨져 깨끗하고 견고한 심령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슬초 정결예식을 통하여, 세상의 죄로 찢겨진 심령이 치유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정의에 반역하는 자들을 돌이키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례예식을 통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결단으로써 우리가 구원받은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에 죄로부터 해방하는 길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자고 합니다. 죽는 것은 죄악의 질서에서 해방하는 것이고, 살자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삶,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설정, 우슬초 정결의례, 그리고 세례예식을 언급하면서, 우리 인간 존재가 죄로부터의 해방될 수 있다는 성서의 이러한 가르침은 참으로 대담한 선언입니다. 인간 실존의 극명한 현실인 악의 질서를 거절하는 도전장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혁하는 구원의 선포가 우리 그리스도교에 전수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민중신학은 서구신학에서 말하는 죄론을 뒤집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인임을 강조하고 죄를 사해주는 교회의 권위를 높이는 그런 죄론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민중신학의 성찰에 따르면 구조악이 죄의 정체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한이 맺히게 하는 사악한 구조 그 자체가 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조악의 시스템에서 탈! 벗어나서,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죄를 극복하는 일이며 구원의 구체적인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민중신학은 구조악에 신음하는 민중의 한을 풀어내는 “한의 사제"가 되자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민중신학의 지침은 우리 향린 공동체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소외되고 배제당한 이웃들과 연대하면서 사회구조의 악한 질서와 투쟁하는 것, 그래서 보다 나은 사회가 되는 일에 일조하는 우리가 되기를, 그런 선교활동이 되기를, 우리는 기도해 왔습니다. 연대하고 일조하는 일이기에 어디에 내세울 일은 아닙니다만, 부족하나마 민중들과 연대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작으나마 손을 보탠 보람이 있어,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5.
앞서 저는 우리음악의 고유하고 독특한 본질인 시김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시김새는 소리꾼이 농음을 자기식대로, 자기만의 예술적 감수성을 부단히 연마하면서 얻어지는 경지입니다. 자신만의 소리길을 창조하고 그 시김새가 결국 자기자신이 될 때까지, 그 소리꾼만의 아름다운 연주가 될 때까지 노력할 때 얻을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 향린의 시김새, 음악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차원에서 향린의 시김새는 무엇일까요? 향린을 향린답게 만드는 것, 우리 향린이 부단히 곰삭혀 우리 공동체에 완전히 체현될 때까지 연마해 나가야 할 우리의 신앙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기를 위하여, 이 세상의 구조악을 담대히 거절하고, 생명 정의 평화의 권리를 빼앗긴 민중들과 연대하는 것. 그리스도의 향기로 이웃을 위로하는 “한의 사제"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 이것이 우리 향린의 시김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악찬송가를 부르면서 우리음악의 시김새를, 민중들과 연대하며 신앙의 시김새를 부단히 연마해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침묵하겠습니다.
......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향린의 시김새를 늘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며 우리의 시김새를 연마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의 농음을 서로 나누고 여러분의 시김새로 민중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이 모든 일에 주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공동축도)
축복의 기도를 함께 나눕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