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
2019년 9월 13일(금) 제19호
‘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은 묵자에 나오는 말로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비추어 보라는 말입니다.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자기경계인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우편번호 : 02704)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727번길 84, 희남신도회장 김종일
E-mail : jaju58@hanmail.net, 전화 : 010-9972-1110
1. 생활 나눔
2019년 희남신도회장으로 선출된 김종일입니다.
희남 회원님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19번째 서신을 보냅니다.
9월 8일 희남 월례회가 예배 후 김희헌 목사님 방에서 열렸습니다. 김기수 총무님을 비롯 9명이 참석했고 신동일 집사님의 개회기도 후 정영훈 부회장님이 월례회를 인도하였습니다.
태풍피해를 당한 교우들(김종일, 채운석) 근황과 서형식 집사님 독일방문 일정이 공유되었습니다. 향린 수양관 태풍피해 없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다 같이 공감을 했습니다.
협의사항으로 식당 마무리봉사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임원진이 초안을 마련하여 희남 텔방에 올리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습니다. 청남의 의견도 반영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공지사항으로는 ‘목운위에서 교회의 제 규정 시행세칙 검토하고 있음’, ‘교회의 수입 감소로 인한 대책 마련을 위해 9월 22일 예산조정회의 개최 예정’, ‘김용희님이 계신 강남역 철탑이 많이 흔들렸음, 바람을 피해 도시락 올려드렸고, 태풍 때 119가 비상대기(정의당에서 요구하였다 함) 했음’을 공유했습니다.
10월 희남 월례회는 10월 13일 예배직후 김희헌 목사님 방에서 열립니다.
2. 성경 한 구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일 4:19-21)
차례를 지내려고 천안에서 동생이 농장으로 왔습니다. 저에겐 각별한 동생입니다. 그는 마음씨가 착하고 우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창원에 있는 효성중공업 직업훈련소에 들어가 용접을 배웠습니다. 저는 동생들과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으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이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차례 지내고 동생과 세미원과 두 물머리를 산책하면서 많은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직업훈련소에서 부당한 대우를 했던 선배와의 주먹다짐으로 제가 내려가 수습했던 일, 공군방위로 근무 중 휴가귀대 때 선물을 사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갈구던 선임하사의 면상을 후려친 일 때문에 동생부대 중대장과 여러 차례 통화했던 일,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할 때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조력했던 일, 동생이 결혼 후 첫아이를 날 때 병원수술비가 없어 주택부금을 해지하여 대신 병원비를 내줬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항상 형을 믿고 응원을 보내주었던 동생, 형을 따라 노동조합운동과 평통사 활동을 했던 동생이 어느덧 백발이 되어 지금도 변함없이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동생이 저와 늘 함께 해주어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형제의 우애가 돈독해지도록 진심으로 동생을 사랑해야겠습니다.
3. 세상만사
지난 9월 2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계적 유물론’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나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계적 유물론이라고 하면, 보통 마르크스가 주창한 ‘변증법적 유물론’에 미치지 못하는 ‘속류 유물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론도 잘못 이해하면 기계적 유물론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습니다. 가령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 명제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처지가 그 개인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 말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여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며 의식은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마르크스의 말을 곡해하는 것이 됩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우선함을 주장하면서도 의식과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마르크스 자신의 삶이 ‘의식과 존재의 변증법’을 증언합니다. 마르크스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 출신으로 베를린대학을 나온 철학 박사였지만, 평생 사회혁명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살았습니다.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 시절에도 하녀를 두고 살 정도로 부르주아의 삶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예를 보면, ‘강남 좌파’라는 말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엔 존재와 의식의 괴리로 인한 ‘위선’이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 위선은 개인 내면의 초자아를 자극해 도덕적 의식의 발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의식의 발동이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국 장관이 내면의 도덕적 요청에 응답해 ‘개혁’에 매진한다면, 박탈감을 느낀 많은 사람들에게 늦게나마 빚을 갚는 일이 될 것입니다.(한겨레신문, ‘유레카’ 조국, 기계적 유물론 인용)
4. 오늘 이야기
한가위 차례를 지내고 동생과 세미원과 두 물머리에 산책을 갔습니다. 세미원을 거쳐 두 물머리 초입에 당도하자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묻는 설치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체중은 8kg이나 줄었고, 뱃살도 많이 빠졌습니다. 쭈그리고 앉아서 밭일을 하고,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서이지 않을까 추측했습니다. 저도 설치물을 통과해 건강을 체크해보았습니다. ‘난 표준’으로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몸의 변화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변화는 어느 정도일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좌정을 하고 지난 3개월을 성찰해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농장일을 해서인지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겼구나 싶습니다. 좋은 자연환경이 사람의 품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향린 교우 여러분!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란 말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樂’은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서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