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쟁과 항미원조전쟁, 무엇이 다른가?
[번역] 리둔츄 저자 / 강정구 번역
기자명 리둔츄 저자 / 강정구 번역 입력 2020.11.16 12:00 댓글 0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372
원제: 70年洗礼——抗美援朝战略遗产熠熠生辉
(70년을 이어온 항미원조 전략유산은 밝게 빛난다 / 환구시보 게재)
저자: 리둔츄 (李敦球 / 곡부사범대학 국가 및 지역 연구센터 주임, 교수, 환구시보 특약 평론원)
출처: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0fcZAlYiOl (2020-11-12 16:31)
역자 :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1950년 10월19일, 신(新)중국이 태어나자말자, (신중국 창건을 위해—역자) 셀 수도 없이 미뤄져 왔던 일들을 다시 일으키려는 시점에서(百废待兴), 나라의 영토안전과 주권이 침범을 당하지 않도록 수호하기 위해, 또한 제국주의 침략을 반격하는 이웃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의연히(毅然 단연코) 조선반도로 출병하였다.
이로써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17개국 연합군과 2년9개월간의 격렬한 힘겨루기를 반복하면서(反复较量)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다. 비록 70년이 지났건만 오히려 항미원조전쟁의 보배같이 귀한 유산과 역사적 의의 및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밟게 빛나고 있다(熠熠生辉).
1. 항미원조전쟁은 사부의 가르침이고 정의의 행동이다
항미원조전쟁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항미원조전쟁과 조선전쟁 사이의 다른 점을(区别)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중요한 구별 점은 다음 네 가지 방면에 있다:
하나는 전쟁 폭발시점이 다르다. 조선전쟁은 1950년 6월25일 반도의 북과 남 쌍방지간에 폭발했다. 그렇지만,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이 공개적으로 경고를 발한 후 같은 해 10월25일 개전된 것이다;
둘째는 전쟁이 터진 지점이 다르다. 조선전쟁은 “38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항미원조전쟁은 중국과 조선의 변경지역인 압록강 부근에서 시작되었다. 이점에서 서로의 차이는 깊고도 멀다(相差甚远);
셋째는 전쟁의 성격이 다르다. 조선반도는 역사적으로 본래 하나의 국가이고, 단일민족이다. 그래서 조선전쟁은 본질적으로 바로 북남 쌍방지간에 폭발한 내전이다. 그렇지만 전쟁발발 이틀 후인 6월27일, 미국은 직접 출병해 이 내전에 개입했다. 더 나아가(还) 동시에 출병하여 중국영토인 대만을 침략했다. 이로써 미국은 전쟁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곧, 내전을 변질시켜 국지적 국제전쟁으로 바꿔버렸다(由一场内战演变成一场局部的国际战争);
넷째는 전쟁의 전략목적과 결과가(结局) 다르다. 조선반도 내전의 목적은 북남통일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다시 “38선”에서 정전이 되고, 무승부가 되고(打成平局), 목적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항미원조전쟁의 목적은 바로 “집을 지키고 나라를 보위하는(保家卫国)” 것이었다. 결국 세계 제일의 강대국을 압록강 호반에서 500킬로미터 멀리 격퇴시켰고, 수백 킬로미터의 안전 완충지역과 전략종심을 획득하였다. 이 결과 중국 동북 내지 화북 지역의 전략안전을 수호하였고, 평화국면을 안정화했고, 출병의 전략목적을 실현하였다.
조선전쟁이 폭발한 이틀 만에 미국은 즉각 대(對) 대만정책을 조정하고,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6월27일 해군7함대에 즉각 명령을 내려 대만해협을 침략했다. 아울러 정식으로 이른바 대만의 “미래 지위 확정은, 필수적으로 태평양의 안전회복, 대일 강화조약의 서명, 혹은 연합국 경유를 고려해야한다는” 안(案)을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당시에 미군은 이미 전쟁을 중국 동북으로 넓혔다. 그러기에, 항미원조전쟁은 이웃을 구제하고 동시에 자기를 구제하는 필연적인 대응 전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와 도의를 함께 갖춘 전쟁이었다.
2。항미원조전쟁은 신중국의 대국적 지위를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부터 이후의 100년 동안, 세계열강은 중국에 얼룩덜룩 핏자국을 몰고 왔다(带来了斑斑血迹). 중국 근대사는 중화민족 치욕의 역사 중 일부이다. 이제 건국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신(新)중국은, 감히 조선에 출병하여, 세계최강의 적을 국경 밖에서 막아내었다. 이로써 일거에 민족의 굴욕을 씻어냈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는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서방자본주의 진영을 지극히 뒤흔들어 버렸다(极大地震撼了). 아울러 중국은 책임을 지는 세계 강대국의 형상을 수립하기 시작했고, 국제 지위와 명망이(威望) 전례 없이 높아졌다(空前提高).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는 훗날(日后) 신중국의 유엔가입 등을 포함하여 대국외교와 국제관계 모두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이로부터 신중국은 참신한 면모를 갖고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등단하였다(傲然登上).
항미원조전쟁에서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신중국의 생존과 발전의 지연전략 환경을 직접 개선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전략안정 경계를 압록강 호반에서 “38선”에까지 남쪽으로 밀어내었고, 중국의 후속 개혁개발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안정적익이고 또 전략종심을 가진 환경공간을 열었다는 점이다.
사실은, 항미원조전쟁은 미국의 교만과 횡포에 매서운(狠狠地) 교훈을 주었다. 이뿐 아니라 또 기타 강대국이 가진 모종의 환상과 계획을 변경시켰다. 그래서 이후 수십 년 동아시아 지연정치와 국제관계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1953년 1월, 조선전쟁 정전협정 서명 직전 전날 저녁에, 소련이 만주에서 하얼빈을 거쳐 최종 대련 항구에 이르는 러시아 극동의 관건적 이익 노선을 관통하는 중장거리철로의(원래 중동철로) 중국 이양에 동의했다. 이 철로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 등등을 가진다. 이렇듯이 항미원조전쟁이 우리에게 가져온 지연 환경의 이익과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중국의 “기백”과 미국의 “강철”, 그 70년 동안을 대비해 본다
70년 전 중국과 미국의 상호 격차는 엄청났다(相差悬殊). 1950년 중국의 GDP는 단지 426억 위안이었고, 미화로 약 155억$였다. 그렇지만 미국의 동기간 GDP는 3,001억$에 달했다.
일찍이 조선전쟁에 참전했고 또 이 전쟁에 대해 깊이 연구했던 베웬 알렉산더는 “가장 사람을 낙담시키는 것은 붉은 중국군대가 별로 쓰지도 못하고 가련할 정도인 무기와(用少得可怜的武器) 사람을 웃기게 하는 원시적 보급체계로, 놀랍게도 대량의 현대기술과 선진공업 및 첨단무기의 세계 제1 강대국인 미국을 억제했다는 점이다.”
그처럼 아주 어려운 조건 속에서, 우리들은 어째서 세계 최강의 나라에 승리할 수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항미원조정신의 강대한 역량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 주석은 완벽한 논술을(精辟的论述)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적은 ”강철은 많지만 기백은 적고(钢多气少)“, 우리는 ”기백은 많지만 강철은 적다(气多钢少).“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의 기백을 높이 앙양해야 한다.
마오쩌둥은 또 지적하기를: ”우리들 중국인민은 전쟁이 관습이 될 정도로 전쟁에 익숙해졌지만(국공내전 때문에—역자), 우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전쟁이 필요해서 반드시 전쟁을 하겠다면, 전쟁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就只好让你打).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또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당신은 원자탄으로, 우리는 수류탄으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적의 약점을 꽉 다잡아서(抓住你的弱点), 적을 따라서 치고, 최후로 패배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 이념과 지도사상은 지혜와 역량으로 충만하다. 이는 필승의 신심을 뚜렷이 보여주기도 하였고, 또한 강대한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과학적 또 현실적 기초 위에서 건립하기도 한 것이었다.
70년 뒤의 오늘,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체제가 되었다. 또한 이미 세계무대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중화민족은 (마오쩌둥 영도의-역자) 나라세우기서부터(从站起来) (덩샤오핑 영도의-역자) 나라 부유하게 만들기를 거쳐(富起来) (시진핑영도의-역자) 나라 강대하게 만들기 까지(到强起来) 위대한 비약을 맞았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기본 역량을 대비하면, 적은 여전히 “강철은 많고 기백은 적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백은 여전히 많고 강철 또한 적지 않다.” “강철” 방면에서 보자면, 비록 미국의 군사역량, 과학기술 역량과 경제 총량은 여전히 세계 제1위에 머무르고 있다(居世界第一位).
그렇지만 미국의 종합국력은 오히려 하강추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측의 “강철”은 여전히 미국 측에 비해 적다. 그렇지만, 쌍방의 격차는 이미 대대적으로 축소되었고, 중국의 종합국력은 상승추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여기에 대해서 여러 차례 논술한 바가 있다. 2018년 1월3일 그는 육군 모 사단 역사관을 참관했다. 이 사단은 항미원조전쟁 기간 송골봉(松骨峰) 격전을 치렀다. 그는 감개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전투는 아주 격렬했고, 당시 우리 군의 전투태세는 아주 완강했다. 우리 군은 옛날부터 기력이 넘쳐왔고, 과거에는 강철이 적고 기백이 많았지만 지금은 강철도 많아졌다. 이제 기백은 더욱 많아져야 하고, 골격도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2019년 7월9일, 시진핑 총서기는 당 중앙과 국가기관의 당 건설업무회의에서 지적하기를, “전진의 길에 놓인 각종 위험과 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쟁정신이 없으면 안 된다. 항미원조 당시에, 마오 주석은 시(詩)적인 말을 사용해 승리의 길을 총결했다: 곧, ”적은 강철은 강하지만 기백은 적고(敌人是钢多气少) 우리는 강철은 적지만 기백은 많다(我们是钢少气多).”
2020년 10월23일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70주년 기념대회의 강화발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조선전쟁에서 지원군 장병들은 강대하고 흉악한 전쟁 상대를 맞아, 비록 열악하고 잔혹한 전장 환경에 처했지만, 목숨을 걸고(抛头颅), 뜨거운 피를 쏟으면서(洒热血), ‘적은 강철과 많은 기백’ 으로 ‘많은 강철과 적은 기백인 적을’ 전력을 다해 극복하고(以‘钢少气多’力克‘钢多气少’), 하늘이 놀라고 귀신이 곡할 정도의 (惊天地、泣鬼神) 웅장한 역사 시(詩)를 아로새겼다(谱写了).”
정확히 우리는 현재 강철은 많다. 그렇지만 기백은 더 많아야 하고, 뼈대는 더욱 강해야만 한다. 이래야만 비로소 각종 도전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항미원조정신의 시공을 초월한 전달과 계승
항미원조전쟁을 통해서 연단한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은, 즉 조국과 인민의 이익을 모든 것보다 우위에 두면서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분투하는(奋不顾身) 애국주의 정신, 영롱(용감)하고 완강하면서도 목숨을 돌보지 않는(英勇顽强、舍生忘死的) 혁명영웅주의정신, 간난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不畏艰难困苦) 시종 고양된 사기를 보지한(保持) 혁명낙관주의정신, 조국과 인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강개해서 봉헌하는(慷慨奉献) 혁명충성정신, 인류평화와 정의로운 일을 위해 분투하는 국제주의 정신을 말한다.
항미원조정신에 고무되어, 당시 중국은 국내 경제건설을 매우 추동하였다. 그 결과 항미원조 3년 기간, 신(新)중국 공업생산 총량은 73.8%성장을 이룩했고, 연평균 성장은 20% 이상이었다. 사회총생산 성장은 82.2%였고, 국가재정수입은 1.8배 이상 성장했다. 현대 전쟁역사상 기적을 창조했던 것이다. 항미원조정신은 내용이 없이 공동화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不是空洞和抽象的) 구체적 행동이고, 현실의 생산력으로 충분히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时光荏苒),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은 줄곧 중국인민이 곤란을 이기고, 앞으로 전진 하는 역량의 원천이 되었다. 올해이래, 돌연히 불어 닥친 신코로나 역병만연에 직면해서(面对突如其来), 시진핑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중앙의 강고한 영도아래, 전국인민이 모두 한 마음이 되고, 한 뜻으로 성을 쌓아(万众一心、众志成城), 역병 방역의 중대한 전략적 성과를 취득했다. 곧, 생명지상, 거국적 한마음 되기(举国同心), 목숨 걸고 분투하기(舍生忘死), 과학존중, 운명공동의(命运与共的) 위대한 방역정신 등을 주조해, 새로운 시대에 생동감 있게 항미원조정신을 새겼다(诠释). 이는 항미원조정신에 대한 시공간을 초월한 일종의 전달과 계승인 것이다.
5. 항미원조 전략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진귀해져
항미원조전쟁 시기, 조선반도에서건 또는 대만해협에서건 상관없이, 미국의 눈에는, 극동은 결코 주된 전쟁 장소는 아니었다. 그 중요 군사력과 전략역량의 지속적 투입은 모두 유럽전선을 가장 먼저 고려해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미국은 제일의 가상 적을 이미 소련에서부터 중국 쪽으로 옮겼다. 미국은 지금 “인도태평양전략”을 실시하고, 인도태평양판 나토 만들기를 기도하고 있고, 중국의 발전공간을 포위하고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70년에 걸쳐 중미관계의 근본적 성격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어떠한 국가와도 냉전이든 열전이든 벌일 의도가 없다(无意).” 항미원조전쟁을 기념하고 연구하는 것은 연속적 대항을 펼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발전의 사유와 멀리 보는 시각으로 역사를 세밀히 살피고, 현실을 관찰하고, 미래를 사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 경험을 더욱 잘 섭취하고, 이러는 중에 현실과 먼 미래의 교훈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만약 미국이 냉전사유를 완고하게 견지하고, 집요하게 이른바 “신냉전”을 도발하면, 우리들은 부득불 이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중국인민은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사건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不惹事也不怕事). 전쟁에는 전쟁으로 이를 끝내고(以战止战), 무력에는 무력을 통해서 이를 끝내고(以武止戈), 승리를 통해 평화를 얻고, 존중을 얻는다.
항미원조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 측과 대화로서 담판을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또한 실력에 의존한 힘겨루기를 중시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상대를 담판의 책상에 돌아오도록 강제할 수가 있는 것이다.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항미원조전쟁의 보배같이 귀한 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진귀해 진다(日久弥珍). 항미원조전쟁은 중화민족이 역사부흥으로 나아가는데 전략적으로 또 심리 및 정신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10월19일 시진핑 총서기는 “위대한 승리를 마음깊이 새기며 평화와 정의를 수호한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 주제 전람회” 참관 중에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항미원조전쟁을 통해 단련되고 형성된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은, 매우 진귀한(弥足珍贵) 정신적 재부이고, 반드시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을 격려해 일체의 간난과 험조를(艰难险阻) 극복하고, 일체의 강대한 적에 승전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두개의 1백년” 분투목표의 역사적 합류점에 서 있다. 우리는 선열의 유지를 계승하고,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을 고양하고, 초심을 잃지 말고(不忘初心), 사명을 깊이 마음에 새겨서(牢记使命),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 꿈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할 것이다(不懈奋斗).
70年洗礼——抗美援朝战略遗产熠熠生辉
来源:环球网 作者:李敦球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0fcZAlYiOl
2020-11-12 16:31
1950年10月19日,新中国初生伊始,百废待兴,为捍卫国家的领土安全和主权不受侵犯,为支援邻国抗击帝国主义侵略,毅然出兵朝鲜半岛,与以美国为首的17国联军进行了两年零九个月激烈的反复较量,赢得了抗美援朝战争的伟大胜利。尽管经历了70年时间的洗礼,但抗美援朝战争的宝贵遗产、历史意义与战略价值却仍然熠熠生辉。
一、抗美援朝战争是以正义之师行正义之举
为了深刻地理解抗美援朝战争,很有必要厘清抗美援朝战争与朝鲜战争之间的区别,主要的不同点有以下四个方面:一是战争爆发的时间不同。朝鲜战争是1950年6月25日在半岛北南双方之间爆发,而抗美援朝战争是在中国公开发出警告后同年10月25日打响的;二是战争开打的地点不同。朝鲜战争是从“三八线”打起,而抗美援朝战争是从中朝边境鸭绿江附近开打,相差甚远;三是战争的性质不同。朝鲜半岛历史上原本就是一个国家,单一民族,朝鲜战争本质上就是在北南双方之间爆发的内战。但两天后即6月27日美国直接出兵干预这场内战,同时还出兵侵略中国领土台湾,美国使战争性质发生了变化,由一场内战演变成一场局部的国际战争;四是战争的战略目的与结局不同。朝鲜半岛内战的目的就是实现北南统一,因最后又在“三八线”停战,打成平局,目的没有实现。抗美援朝战争的目的就是“保家卫国”,将世界头号强国从鸭绿江畔击退500公里,获得了数百公里的安全缓冲区和战略纵深,捍卫了中国东北乃至华北的战略安全,奠定了和平局面,实现了出兵的战略目的。
朝鲜战争爆发的第二天美国立即调整对台政策,美国总统杜鲁门6月27日即命令海军第七舰队侵入台湾海峡,并正式提出所谓的台湾“未来地位的确定,必须等待太平洋安全的恢复、对日和约的签订或经由联合国的考虑。”当时美军已将战火烧到中国东北,抗美援朝战争是救邻与自救的必然应对之战,是正义与道义兼具的战争。
二、抗美援朝战争彰显了新中国的大国地位
自1840年鸦片战争以来的百余年间,世界列强给中国带来了斑斑血迹,近代史是一部中华民族的耻辱史。刚成立一年的新中国就敢于出兵朝鲜,将世界最强大的敌人挡在了国门之外,一举洗刷了民族的屈辱,开创了历史的新篇章。抗美援朝战争的胜利极大地震撼了以美国为首的西方资本主义阵营,树立起负责任的世界大国的形象,国际地位和威望空前提高。抗美援朝战争的胜利对包括日后新中国加入联合国等在内的大国外交和国际关系都产生了深远的影响,从此新中国以崭新的面貌傲然登上世界舞台。
抗美援朝战争或许更重要的是直接改善了新中国生存与发展的地缘战略环境,将中国的战略安全边界从鸭绿江畔向南推到了“三八线”上,为中国后来的改革开发与社会主义建设开辟了一个稳定的、有战略纵深的环境空间。其实,抗美援朝战争不仅狠狠地教训了美国的骄横,还改变了其它大国的某些幻想和计划,对后来数十年东亚地缘政治和国际关系也产生了深远的影响。例如,1953年1月,也就是在朝鲜战争即将签订停战协定的前夕,苏联同意将从满洲里经哈尔滨最终至大连港的这条贯穿俄国远东关键利益线的中长铁路(原中东铁路)移交给中国,这条铁路具有非常重要的战略价值,等等。抗美援朝战争为我们带来的地缘环境的红利,影响至今。
三、中美“钢”和“气”70年对比
70年前中美实力相差悬殊,1950年中国GDP只有426亿元人民币,当时约合155亿美元,而美国同期GDP却达3001亿美元。曾参加过朝鲜战争并对这场战争有深入研究的贝文·亚历山大说:“最令人感到沮丧的是,红色中国的军队用少得可怜的武器和令人发笑的原始补给系统,居然遏制住了拥有大量现代技术、先进工业和尖端武器的世界头号强国——美国。”在那样艰苦的条件下,我们为什么还能战胜世界头号强国,这主要是抗美援朝精神的强大力量在起作用。对此,毛泽东主席有精辟的论述:敌“钢多气少”,我“气多钢少”,要战胜敌人,就要扬我之长。毛泽东还指出:“我们中国人民是打惯了仗的,我们的愿望是不要打仗,但你一定要打,就只好让你打。你打你的,我打我的,你打原子弹,我打手榴弹,抓住你的弱点,跟着你打,最后打败你。”这样的战争理念和指导思想充满了智慧和力量,既显示了必胜的信心,又把战胜强大的敌人建立在科学的、现实的基础上。
70年后的今天,中国已成为世界第二大经济体,已走进世界舞台的中央,中华民族迎来了从站起来、富起来到强起来的伟大飞跃。目前中美基本力量对比是,敌仍然“钢多气少”,我“气多钢也不少”。在“钢”方面,虽然美国的军事力量、科技力量和经济总量仍然居世界第一位,但美国的综合国力却呈现为下降的趋势。我方的“钢”仍然少于美方,双方的差距已经大大缩小,中国的综合国力呈现为上升的趋势。
习近平总书记对此有过多次的论述,2018年1月3日,习近平总书记参观了陆军某师的师史馆,该师在抗美援朝战争期间曾激战松骨峰,感慨地说,“这一仗打得很激烈,官兵战斗作风很顽强。我军历来是打精气神的,过去钢少气多,现在钢多了,气要更多,骨头要更硬。”2019年7月9日,习近平总书记在中央和国家机关党的建设工作会议上指出,“要战胜前进道路上的各种风险挑战,没有斗争精神不行。当年抗美援朝,毛主席用诗意的语言总结胜利之道:敌人是钢多气少,我们是钢少气多。”2020年10月23日,习近平总书记在纪念中国人民志愿军抗美援朝出国作战70周年大会上发表讲话时指出,“在朝鲜战场上,志愿军将士面对强大而凶狠的作战对手,身处恶劣而残酷的战场环境,抛头颅、洒热血,以‘钢少气多’力克‘钢多气少’,谱写了惊天地、泣鬼神的雄壮史诗。”的确,我们现在钢多了,气要更多,骨头要更硬,才能更好地应对各种挑战。
四、抗美援朝精神跨越时空的传承
抗美援朝战争锻造了伟大的抗美援朝精神,即祖国和人民利益高于一切、为了祖国和民族的尊严而奋不顾身的爱国主义精神,英勇顽强、舍生忘死的革命英雄主义精神,不畏艰难困苦、始终保持高昂士气的革命乐观主义精神,为完成祖国和人民赋予的使命、慷慨奉献自己一切的革命忠诚精神,为了人类和平与正义事业而奋斗的国际主义精神。受抗美援朝精神的鼓舞,极大地推动了当时国内的经济建设,抗美援朝3年期间,新中国工农业生产总值增长73.8%,年均增长20%以上,社会总产值增长82.2%,国家财政收入增长1.8倍以上。创造了现代战争史上的奇迹。抗美援朝精神不是空洞和抽象的,而是具体的行动,能够转换成现实的生产力。
时光荏苒,伟大的抗美援朝精神一直是中国人民战胜困难、勇往直前的力量源泉。今年以来,面对突如其来的新冠肺炎疫情,在以习近平同志为核心的党中央坚强领导下,全国人民万众一心、众志成城,取得了疫情防控的重大战略成果,铸就了生命至上、举国同心、舍生忘死、尊重科学、命运与共的伟大抗疫精神,在新时代生动地诠释了抗美援朝精神,是对抗美援朝精神跨越时空的一种传承。
五、抗美援朝战略遗产日久弥珍
抗美援朝战争时期,无论是在朝鲜半岛还是在台湾海峡,在美国眼中,远东并非主战场,其主要军力和战略力量投注均以欧洲战线为首要考量。但时至今日,美国将头号假想敌已从苏联转移到了中国身上,美国正在实施“印太战略”,企图组成印太版北约,围堵和压制中国的发展空间。所以,需要认真考察70年前后中美关系根本性质的变化。中国“无意跟任何国家打冷战热战”。纪念和研究抗美援朝战争,不是为了延续对抗,而是要以发展的思维、长远的眼光来审视历史、观察现实、思考未来,更好地汲取历史经验,从中获得现实和长远的教益。如果美国顽固坚持冷战思维,执意挑起所谓的“新冷战”,我们就不得不迎战。中国人民不惹事也不怕事,以战止战、以武止戈,用胜利赢得和平、赢得尊重。像抗美援朝战争一样,既要与美方对话谈判,也要重视依靠实力较量,才有可能逼迫对手回到谈判桌上来。
70年星移斗转,抗美援朝战争的宝贵遗产日久弥珍。抗美援朝战争是中华民族走向历史复兴在战略上、心理上和精神上的重要支点。10月19日,习近平总书记在参观“铭记伟大胜利 捍卫和平正义——纪念中国人民志愿军抗美援朝出国作战70周年主题展览”时指出,“抗美援朝战争锻造形成的伟大抗美援朝精神,是弥足珍贵的精神财富,必将激励中国人民和中华民族克服一切艰难险阻、战胜一切强大敌人。”我们正站在“两个一百年”奋斗目标的历史交汇点上,我们要继承先烈遗志,弘扬伟大的抗美援朝精神,不忘初心、牢记使命,为实现中华民族伟大复兴的中国梦不懈奋斗。
(作者李敦球是曲阜师范大学国别与区域研究中心主任、教授,环球网特约评论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