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작은 국가’의 종말을 넘어
등록 :2021-05-12 15:27수정 :2021-05-12 19:59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4885.html?_fr=mt5#csidxe464cc47e0ba44fa9682904813c7f9d
<한겨레> [왜냐면] 강정구ㅣ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바이든 집권 100일을 맞아 부유세가 범세계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집권과 동시에 코로나 긴급구제를 위해 1조9천억달러를 투입했고, 낙후된 사회기반시설과 일자리를 위해 2조2500억달러, 교육과 가족계획 등으로 1조8천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자본이득세 최고세율을 20%에서 39.6%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로, 소득 상위 1% 대상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높인다고 한다.
이러한 국가 주도 부유세 강화, 사회기반시설 구축, 가족·교육·복지제도의 확충 등에 프랑스, 독일, 영국, 아르헨티나 등 대부분의 국가가 일정 부분 참여할 것으로 전망돼 세계적 추세가 될 것 같다. 이러한 증세와 큰 국가 추세(학술용어로는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자율성 확대’)는 지난 40년간의 전세계 경제기조인 신자유주의와 전적으로 배치된다.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는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출발해, 사회주의체제 붕괴, 워싱턴 합의, 세계화 등으로 전세계로 보편화·공고화되었다. 예찬론자들은 이를 ‘역사의 종말’이라고 환희하기도 했다.
감세, 작은 정부, 시장화, 민(사)영화, 금융화, 개방화, 세계화, 무역·외환 자유화, 탈규제, 세계적 가치사슬 등의 정책과 전략으로 질주했다. 여기에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돛을 달아줬다. 이 결과 빈부격차의 극단화, 국가 재정·역량·기능의 축소로 이어졌고, 건강의료·환경·기후변화에 대처할 공공재의 역부족으로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자본주의 자체 또한 금융자본의 비대화, 경제의 금융화로 실물경제 위축과 생산력 퇴조, 산업공동화로 이어졌다.
경제의 금융화로 인한 2008년 금융위기에도 미국은 증세나 혁신을 꾀하지 못하고 땜질 처방에 그쳤다. 그러나 3천만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 60만명에 가까운 사망으로 세계 최악의 참상이란 화급한 구조적 조건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와 배치되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의 기약 없는 창궐은 기존 세상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면서 서구 ‘선진국’ 유래의 가치관, 표준 등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있다. 왜 선진, 민주, 인권, 자유 등의 ‘준범’이고, 세계보건안전지수(미·영 2019년 개발) 1, 2위였던 미국과 영국이 그 모양이고, 51위 중국이 가장 성공적이고, 9위 한국이 선방하는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은 전면 또는 지역 봉쇄를 몇 차례나 반복했지만 효과는 변변치 못했다. 처음에는 중국의 지역봉쇄나 한국의 거리두기에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면서 자기들의 개인자유 절대주의를 진정한 민주라며 조롱까지 했다. 같은 봉쇄인데 중국은 아주 성공적이었는데 서구는 왜 기대 수준 이하인가? 또 왜 한국의 거리두기는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나?
한국은 서구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구조이지만 공동체성이 훨씬 높다. 중국의 경우 공동체성도 높거니와 국가의 자율성, 통치력, 재정 여력이 탁월하다. 우한이나 허베이성을 봉쇄할 때 주민들의 생명권과 생존권(경제사회문화권인 유엔인권규약A)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주었다. 그래서 자영업자나 경제적 취약집단이 불법·편법으로 영업할 필요가 없는 삶의 조건이 구비된 것이다.
무릇 숱한 역사에서 전염병, 자연재해 등이 세상을 바꾸는 촉매제로 작동해왔다.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희생시켜 신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근대 세상으로 대전환을 촉진시킨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 창궐을 역사의 전환으로 보면서 BC와 AC(Before & After Coronavirus)로 나누고는 세상을 재규정하기도 한다. 이제 신자유주의와 ‘작은 국가’의 종말을 넘어서 기존 가치관, 사회경제체제, 세계질서, 규범, 도덕관 등에 대한 새판 짜기를 진지하게 모색할 때이고 이는 불가피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