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문’ 행사 관련 담임목사 인터뷰 내용
지난 5월 16일 교회창립 68주년 <굿문>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해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행사 순서 가운데 하나인 ‘다큐멘터리’(인터뷰 영상) 제작을 위해 힘쓰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터뷰 영상제작 전에 저는 다섯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이 묵직하다 보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영상편집과정에서 잘린 부분이 생겨서 여기에 그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광야 생활과 교회신축, 그리고 광화문 시대의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부분은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1. 목사님 부임 이후에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가 거리에서 외칠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향린이 메시아적 교회로서 한국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이나 외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향한 향린의 외침의 방향이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큰 질문이다. 먼저 과거를 돌아보고 싶다. 향린이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한 계기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이다. 93년, 40주년을 맞으며 발표한 <신앙고백 선언 및 교회갱신 제안>에 원숙한 모습이 담겨있다고 본다. 그 이전에는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교회가 많았다. (60년대의 도시산업선교, 70년대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목회자와 교회, 80년대 약 120여 개 민중교회의 노동선교)
- 향린이 색깔이 분명해졌을 때,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덮쳤다. 대부분의 교회가 번영신학을 택했지만, 향린은 민중신학 전통을 살려갔다. 그것이 도심지 진보적 교회로서 특징과 장점을 갖추게 했고, 보수정권 시절에는 신도들의 교회 유입을 도왔다.
- 질문에서 ‘메시아적 교회’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향린의 정신적 토대인 ‘민중신학’과 큰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민중의 고난에 함께하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 그것은 우리 교회의 숙명이다.
- ‘민중신학’에 기초한 향린의 사회선교는 우리 공동체를 특징짓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한계 경험도 있었다. 그 한계 경험을 두 가지만 말하자면, ① 거리에서의 투쟁이 전체 구성원의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과정과 분리되어 이탈하는 현상이 생겼고, ② 진보적 사회선교의 항목이 제한적이어서, 교우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묶어내지 못했다. (색깔로 표현하면 향린은 빨간색만 부각된 교회)
- 이런 한계 경험은 앞으로 방향설정에서 두 가지 제안이 되겠다. ① 신앙+공동체의 특징을 강화하고,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적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를 펼쳐야.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내적인 수행’의 측면이 강화돼야 한다. ② 향린의 민중신학 전통이 적색(노동과 정의)만이 아니라, 녹색(생태와 생명), 보라색(다양성과 평화)을 담아야 하고, 이것이 그저 활동의 다변화가 아니라, 조화로운 연대와 동맹을 이루는 실험이 되면 좋겠다.
- 정치와 종교는 구체적인 삶에서 겹친다. 하지만, 우선 사항은 다르다. 정치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실천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지만, 종교에서 행위와 실천은 존재의 열매이다. 교회의 목표는 ‘행위의 양산’이 아니라, ‘존재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공동체의 자기반성적 활동 위에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적녹보 연대와 동맹’을 펼쳐가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 향린의 방향이라고 본다.
2. 이제 올해 6월이면 명동에서의 향린의 긴 역사가 마감되고 광야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매우 힘든 시기가 될 텐데요. 담임 목회자로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실지 각오 한 말씀 들려주세요.
- 각오라면, 교우들과 함께 이 전환과 새 역사 준비의 시기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
- 이 시기의 어려움/과제는 두 가지이다. ① 건축을 잘 진행하는 것 (교우들의 요구와 시대적 요청을 수렴하는 과정), ② 예배당이라는 물리적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신앙적/정서적 구심점을 유지하는 것.
- 첫 번째는 건축위원회에서 잘 진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두 번째는 목회실의 노력과 교우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① 건축과정이 실무적/재정적 활동이 아니라, 신앙적/영적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건축진행 상황에 따라 기도 제목도 함께 나누고, 마음의 교회도 건축한다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신앙훈련을 제공) ② 내수동에 마련된 교회 사무실에서 사랑방 소모임(기도와 공부모임)을 진행, ③ 수동적인 방어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실험적인 자세로 예배공간이 없는 상황을 보낼 수도 있다. (교우들의 지혜가 필요)
3. 광화문에서 새롭게 시작할 향린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2019년 8월 제직회에서 제 생각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교회의 큰 화두는 ‘진보적 도심지 교회로서의 진리실험’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물질적 여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 과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서, ① 진보적 신앙/신학의 생수가 흘러나올 수 있는 샘을 어떻게 팔까, ② 변혁적 사회선교의 근거지(내수동, 보급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같다.
- 이를 위해, 미래선교연구위원회가 가동되어서 지혜를 모아가고 있는데, 수고에 감사드린다. 올해 시범사업을 거치면서 본사업 계획이 구체화 될 것으로 기대하며, 또 그 결과가 축적되어 2023년 70주년에는 새로운 <선언>으로 집약되면 좋겠다.
-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물리적 규모에서나 정신적 방향에서나 여타의 (중형) 교회와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독자적인 아성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진보적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위의 과제와 연관지어 보면, ① 진보적 기독교 사상이 교류되는 네트워크를 구성/지원하는 방안, ② 진보적 사회선교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품에서 유리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데, 앞으로 향린은 남북을 포괄하는 ‘한반도 선교’를 펼치는 근거지를 마련하는 일에 관심해야 한다.
- 아직 그 구체적인 모습이 어떨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그 최종형태를 미리 구상해보고, 그것을 단계적으로 준비해가는 것도 좋겠다. 2023년에 맞을 70주년을 향해, 위의 두 선교 과제를 수행할 우리의 토대는 무엇이 될 지를 미리 그려보는 것은 어떤가? 예를 들어, ① 우리 교회 안팎에서 펼쳐지는 신학적 논의를 체계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작은 방송국을 설립/운영하는 것, ② 한반도 평화/통일선교를 추동하는 <홍근수 재단>(가칭)을 설립하여, 시민사회 및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과 연계를 이루어갈 수도 있을 것.
4. 지금까지 겪어오신 향린의 모습 중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어느 공동체나 갖는 인간의 보편적인 한계/실패를 우리도 갖고 있다. 그것이 정치에서 분파주의라면, 종교적으로는 독선과 교만이다. 우리 교회에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교우들에게 향린에 대한 긍지가 큰데, 그것이 역기능을 할 때가 있다. ‘향린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충돌할 때이다. 그것이 공동체의 밑동을 치는 데까지 갈 때가 있었다.
- 우리는 모두 ‘인식과 판단’의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협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의사소통의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5. 향린교회의 4대 담임목사로서 자부심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지요?
- 한마디로, 신앙공동체를 일구어오신 교우들의 인간적 품격이다. 이 공동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이다. 고통스러운 면도 있지만, 우리 교회의 논쟁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이다. 향린의 장점은 신앙공동체를 세우고 길러온 사람들의 품격있는 인간의 규모다.
- 내부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느꼈을 때도, 마지막 버티게 해준 것은 이 교회를 구성한 신앙인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이 앞으로 교회가 펼쳐갈 믿음의 꿈을 뒷받침하는 힘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