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교회동창회] 연재 칼럼을 소개했다. 새해부터 새로운 이름 [예수*21세기]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필자는 캐나다의 멕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지질학 박사과정을 밝고 있을 때 같은 대학에서 전공을 종교학부의 신학사 과정으로 바꾸었으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에 대한 신학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여러 해 동안에 필자는 과학세계의 체험을 기초로 한 신학과 종교를 돌아보았다. 새해에는 필자가 대학에서 배운 진보적인 신학연구 방식에 따라 인식하게 된 역사적 예수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새해에 필자의 나이가 75세가 된다. 자연의 법칙으로 나의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정신)은 항상 젊어 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윤리관을 정립하면서 앞으로 진보하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생(생명)은 이 세계에서 일회적이라는 우주의 법칙을 잊지 않고 순간순간 매일매일 나의 삶에 솔직하고 진실한 자세로 살려고 한다. 이것이 필자의 역사적 예수 탐구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나의 철학과 사상은 역사적 예수의 정신으로부터 깨닫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성서와 생명과 인간과 하느님과 세계에 대해서 솔직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인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고 책임이다. 오늘날 주류 신학계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를, 성서는 초자연적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적 보도가 아니며 그렇다고 교리적 믿음을 강화하는 교리책이 아니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 이야기는 1세기에 98%의 민중들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사람 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참담한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상황에서 탄생한 체제전복의 항거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읽을 때 그 이야기들이 기록되었던 당시 초기 기독교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예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초대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꼬박꼬박 십일조 바치면, 잘 먹고 잘 사는 부자가 되고, 더욱이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올라가 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맹신하는 내세적 신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참된 인간이 되어 사람 답게 사는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에서 터득한 진리이다. 그들의 목표는 예수의 정신을 따라서 온전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며,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차별하고 탄압하는 종교적-정치적 체제를 전복하고 이 땅 위에 평등하고 공정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깨달음과 비전이 성서로 기록되었다.
새해에도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생기가 넘치는 칼럼을 소개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모든 독자들께서 항상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