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신냉전’ 정말 불가피한가?
[번역] 후앙지잉 저자 / 강정구 번역
기자명 후앙지잉 저자 / 강정구 번역 입력 2023.09.15 11:57 수정 2023.09.15 18:13 댓글 0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56
원제: 中美间的“新冷战”真不可避免吗ㅋ(환구시보 게재)
저자: 후앙지잉 (黄靖 / 상해외국어대학 특별초빙 교수)
출처: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ERqV06rpbt (2023-09/08)
역자 :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최근, 중·미 ‘신냉전’이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성을 가진 두 편의 글이 있다.
하나는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케빈 로버츠 회장이 올해 3월 펴낸 <중국과의 신냉전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가>라는 책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저명한 전략학자 찰스 쿠프간이 올해 6월 <The Atlantic>에 발표한 "우리가 기억하는 냉전에 비해 더 어렵고 막중할 수 있는 신냉전“이라는 글이다.
중·미 사이의 ‘신냉전’은 정말 이 두 사람이 인식하고 있듯이 그렇게 ‘불가피’한 것인가?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不以为然).
냉전은 전(全)방위적인 영합게임(제로 섬) 식 대결이다
이른바 ‘냉전’은 지난 세기 5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미국과 소련사이 열전(熱戰) 없이 진행된 전면적인 대결이다. 이 냉전의 발생과 발전은 특정한(特定) 국제환경과 매우 선명한 특징을 가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반(反)제국주의와 반(反)식민주의 민족독립해방 운동이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었다. 이들 운동은 종종 각 나라 공산당과 민족주의 좌익이 이끌었다.
이러한 국제환경 아래, 세계 격식과 구조(格局)는 신속하게 분열하여 미국과 소련을 각각 정점으로 하는 양대 대결 진영으로 나눠졌다. ‘냉전’이란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미·소 냉전은 이쪽이 살고 저쪽이 죽거나 또는 이쪽이 죽고 저쪽이 사는(此消彼长) 전면적인 제로섬 게임(零和博弈)이었다.
첫째, 쌍방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용호상박(龍虎相搏, 针锋相对)이었다. 한 쪽은 자본주의라는 ‘자유’의 길로 걸으려 했고, 다른 쪽은 공산주의라는 ‘민주’의 길로 걸으려 했다. 서로 기치가 선명했고 또한 흑백이 분명했다(泾渭分明).
둘째, 쌍방은 군사안보적으로 공개적인 대결을 벌였다. 미·소 각자는 북대서양조약동맹(나토)과 바르샤바조약동맹을 각기 조직하였다. 이 양대 군사진영은 서로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게 궁극적 목표였다(终极目标).
셋째, 쌍방은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적이었다. 뚜렷이 다른 이데올로기 지배아래, 미·소 진영은 완전히 다른 또한 서로 교역도 전혀 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각기 가졌다.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는 것은, 냉전기간 미국이 소련과 강경 대결의 도움을 받아(借助)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재건축(再造)’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20세기의 50년대에서 60년대 까지다. 이 기간, 신(新)중국이 성립되었고, 미국은 조선전쟁에서 좌절을 겪었고, 아세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민족해방독립운동이 바람과 구름처럼 세차게 일어났고(风起云涌),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소련은 기세가 등등해졌다(咄咄逼人).
1956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조직할 당시 회의에서, 후루시초프 소련 수상은 공개적으로 ‘자본주의를 매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소련은 더 나아가 전략미사일을 카르비아만의 쿠바에 배치했다.
미국 국내에서는 ‘매카시즘(麦卡锡主义)’이 사회를 분열시켰다. 전후 경제는 아이젠하워대통령의 ‘균형예산’ 정책으로 조정해야 할 정도로 내리막 길(滑坡) 이었다. 1958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경제가 쇠퇴의 언저리에까지 떨어졌다(跌入衰退边缘). 이런 내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미국 조야는 보편적으로 초조와 실망으로 휩싸였다.
이러한 형세아래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은 소련을 ‘가장 근본적인 안보위협’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 ‘대규모 핵 보복’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 ‘신 면모’ 전략을 제정했다.
수에즈운하 위기이후,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 소련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을 꺼리지 않겠다고(不惜) 더욱더 명확하게 표명하였다. 이 ‘강경’ 정책을 계기로,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대외적으로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아프리카 식민지화와 중동의 경제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모순을 완화시켰다. 대내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실용보수주의’ 계열의 좌경정책을 추동했다.
이들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적’ 정책은 대자본 우익 보수세력이 산업노동자 등 약한 집단에게 타협하고 이익을 양보하도록 압박했다(迫使). 이 결과 미국사회가 좌로 전향하고 진보로 나아가도록 추동했다.
동시에, 경제는 지속적으로 5%의 연 평균성장률로 쾌속 발전했다. GDP가 1958년의 2.97조 달러에서 1972년의 5.38조 달러로 성장했다.
쾌속의 경제발전과 안정된 사회 환경은, 대량의 중산계급이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 몽’을 실현하게 했다. 동시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전환점으로 하여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쟁취했다.
두 번째로는 20세기 70년대 중·후반기다. 베트남전쟁 실패, 석유위기와 달러위기가 몰고 온 경제쇠퇴, 높이 올라만 가고 내려올 줄 모르는(居高不下) 통화팽창과 실업률, 반전운동이 촉발시킨 좌익 인권운동 등등이 미국사회를 다시 한 번 분열시켰다. 미국은 국제적 사안에 지쳐 못 견딜 지경이었다(疲软不堪).
대조적으로 이때의 소련은 대대적으로 군비를 확충하였다. 그 결과 핵무기와 재래식 군사비는 미국을 초과했다. 이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제적 사안에도 전면적으로 출격하였다.
1968년에서 1979년 기간, 미·소 양국관계는 ‘완화국면(데당트)’으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사실은 소련의 위세는 미국을 압도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은 닉슨 이후 지속되던 소련과의 긴장완화 정책을 내버렸다(摒弃了). 그리고는 소련을 ‘악의 제국(邪恶帝国)’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면서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전개했다.
국내적으로는, 레이건은 감세·사회보장예산감축·최저임금동결·노동조합권력제한·공공사업사유화 등 정책을 통해, 미국을 우익 쪽으로 강력하게 추동해 나갔다. 경제적으로는 거대자본 주도의 ‘공급 측 경제(供给侧经济)’에 전력했고, 소비를 확대하여 미국 경제발전을 추동했다.
미국사회가 ‘좌익쇠퇴 우익진출’의 전형으로 바뀜에 따라, 미국 경제도 제2의 고속 발전기로 진입했다: 레이건 집권 8년 기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3.6%, GDP는 1980년도의 6.76조 달러에서 1990년도에 9.39조 달러로 성장했다.
미국이 위의 양대 시기에 국면 반전을(扭转局面) 신속히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 정치체제가 편향을 바로잡는(纠偏) 강력한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능력을 결정하는 근본원인은 그 의사결정 체제의(决策体制) 효율성과 제도화의 타협기제를 갖추고 있다는데 있다.
이들 타협기제는 강대한 외적을 직면한 시점에서는 특히 민감하고 고도로 효율적이다. 그 결과 대외적으로는 동맹관계를 총체적으로 통합시키고(整合了), 대내적으로는 각 이익집단 간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총체적 조정을(整体调整) 이룩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체계를 충분히 이끌 수 있도록 하여, 이들 동맹과 정치·경제·군사 역량을 하나로 일체 단결시켜(拧成一股绳) ‘소련’을 억제하는데 응집할 수 있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국의 냉전 ‘승리’는 결코 군사적인 승리가 아니다.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은 러시아가 여전히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군사적 대결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냉전은 또한 정치적 승리도 아니다. 공산당 영도의 중국 굴기는 ‘역사종결’ (탈냉전 직후 후쿠야마의 자본주의 영구 승리를 예언했음-역자)의 환각을 쳐부수었기 때문에 ‘워싱턴 방식’은 결코 천하통일이 아니다.
미국의 냉전 ‘승리’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양대 진영의 ‘제로섬(零和)’ 대결에서 미국이, 자신과 동맹들을 정치·군사·경제 역량에서 하나로 굳게 뭉치게 하여(拧成一股绳), 최종 경제적으로 소련의 경직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압박해 무너뜨린 것이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담론(政治叙事)’의 주도적 구축을 통해 국제적 사안에서 주된 발언권을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냉전의 틀로(프레임) 끌어들이려한다
바이든정부 집권이래, 미국은 ‘중국과 냉전을 전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밝혀 왔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오히려 ‘가장 엄정한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는 전력투구하여(不遗余力), 정치적으로는 이웃을 끌어들이고 파당을 지어(拉帮结派) 중국을 겨냥한 ‘공동가치관을 가진 동맹’을 ‘다시 진작시키려(重振)’ 한다. 경제적으로는 ‘탈 위험’을 구실로 삼아 ‘탈 중국화’를 시도한다. 군사적으로는 중국을 제압하는 ‘인·태 포위망’을 구축하려 한다.
분명히, 이런 투의 ‘전면적’ 전략은 냉전 사고방식의 지배 하에서만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중국을 여기서 설정한 냉전전략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서방여론이 떠들어대는(鼓噪) 중·미 ‘신냉전’의 근본원인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당시 미·소 냉전의 상황에서 하듯이, 미국이 정치·군사적으로 오늘날의 중국을 압도하기는 아주 어렵다. 최근, 블링컨과 설리반 모두 중국과 장기적으로 ‘평화공존’을 추구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렇지만 워싱턴의 모든 생각과 행보는 여전히 전력(全力)을 쏟아 그 당시의 소련에 대처했듯이 경제적으로 중국을 억눌러 무너뜨리기를(压垮) 기도하고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바이든정부는 중국과 ‘이기기 경쟁(竞赢)’의 각종 정책 가운데, 최대로 힘을 기울이고, 가장 가혹한 조치를 취하고, 또 밀집 정도를 최고로 높인, 정책은 경제적으로 ‘탈(脫)중국화(去中国化)’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른바 ‘탈 연결고리(脱钩)’, ‘탈 위험’, 첨단기술 영역의 ‘작은 뜰 높은 장벽치기(小院高墙)‘‘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중국경제를 세계경제에서 배제하자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중국경제를 최소한 ’선진‘ 발전국가의 경제 밖에 두어야겠다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경제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이지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당시에 소련을 억제했듯이, 정치·군사·경제 역량을 응집하여 ’전면적으로‘ 중국봉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미리 설정한 올가미에 결코 빠질 수 없다
지금은 옛날과는 다르다(今非昔比). 중국은 개혁개방을 굳건히 견지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견지하고, 경제 세계화라는 큰 역사의 흐름에 순응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경제는 이미 세계경제와 깊은 정도로 융합되었다. 그래서 중국과 미국 및 그 동맹국들은 경제적으로는 일찍이 ’네 가운데 내가 있고, 내 가운데 네가 있는‘ 관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와 격식 아래, 미국과 그 동맹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게임 속에 뒤얽혀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을 ’가장 엄정한 도전자(最严峻的挑战者)‘[혹은 ’시스템(체계)의 적수‘]로 보고 전력을 다해 제압하려 한다. 그래서 이쪽이 죽고 저쪽이 사는(此消彼长) ’영합(제로섬,零和)‘ 대결을 추동한다.
그렇지만 쌍방은 경제적으로(단기간에) 역(逆)전환하기 어려운 상호의존 관계 때문에, 또한 그 내부의 강대한 기득권 이익집단의 단호한 배척 때문에, 중국과의 ’탈 연계(脱钩)‘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공평한 경제교류의 존속‘을 (계속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요구한다. 이는 실제 타협적인 쌍방이 함께 이기는 ’정합(positive sum)’ 게임이다.
바꿔 말하면,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의 뒤틀림(错位), 이것이 미국이 대내적 통합역량(整合力量)과 대외적 동맹규합 파당 짓기를(拉帮结派) 통해 중국을 제압하려는 데 대한 최대의 장애요소다. 이 장애요소가 과거 미국이 소련을 겨냥해 정치·군사·경제 역량을 함께 응집시켰듯이 현재의 중국을 억제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 관건적인 것은, 중국은 절대로 미국의 노래 가락을 받아들일 리가 없고, 또 미국이 설정한 ‘신냉전’ 전략의 올가미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과 선악이 분명한(泾渭分明) 대결을 피하고(避免) 있다. 미국이 제시하는 이데올로기는 ‘보편적 가치(普世价值)’ 라고 호칭되고 있는 것으로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자유민주’ 가치관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공동이익을 중시하고,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을 추동하고, 평화·발전·공평·정의·민주·자유를 포괄하는 전(全)인류운명공동체를 제창하고(倡导) 있다.
중국은 ‘색깔혁명’을 거절하고 있고, 자기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수출하고 있지 않다. 또한 다른 나라에게 우리 중국과 같은 노선을 걸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음,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은 대외개방을 견지하고, 또 협력발전과 상호이익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경제세계화는 어떤 한 정부의 전략 또는 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제가 추동한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세계화 추동의 근본동력은 시장경제가 가지는 자원에 대한 최적 배치, 생산성에 대한 최고의 효율성, 이윤최대화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이다. 단지 중국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견지하기만 하면, 미국이 경제적으로 ‘탈 중국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거짓 명제가 된다. 얼마 전에 중국을 방문한 미국 재무장관 야소는 시장경제 기제 하에서 ‘(미국이) 중국과 탈 연계하는 것은 반드시 재앙적일 것’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냉전 당시에 가장 기본적인 상징적 현상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으로는 용호상박이었고, 군사적으로는 진영대결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완전 ‘탈 연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중·미 사이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중·미 사이의 ‘신냉전 불가피성’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声称) 미국의 노래 가락을 따르라는(带节奏) 것이다. 미국이 설정한 노래 가락을 따라 가면, 중·미는 냉전 상태로 진입하게 되고, 이른바 ‘신냉전’을 형성하게 되어, 미국은 과거의 미·소 냉전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그 동맹체계의 정치·군사·경제 역량을 함께 응집하여 중국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가 반복해서 강조했듯이, “중국은 언제나 세계가 좋으면, 이에 따라 중국도 좋아지고; 중국이 좋으면, 이에 따라 세계도 더욱 좋아지게 된다고 생각해 왔다.” 분명히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중국은 미국의 발걸음 단계에 따라, 미리 미국이 설정한 냉전전략의 틀 속으로 빠져버리지도 않았고, 또 결코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중국은 평화발전·대외개방·협력추구·대결모색 않기 등을 견지할 것이다. 이럴진대, 단지 미국의 손바닥 하나만으로 ‘신냉전’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질 수가 있을까?
黄靖:中美间的“新冷战”真不可避免吗
来源:环球时报 作者:黄靖
-2023-09/08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ERqV06rpbt
近来,中美“新冷战”成为舆论热点。其中具有代表性的有两篇文章:一篇是保守派智库“传统基金会”主席凯文·罗伯茨今年3月发表的《我们应该如何打赢对华新冷战》;另一篇是美国知名战略学者查理斯·库普乾今年 6月在《大西洋》期刊上发表的《一场或将比我们记得的那场(冷战)更为艰巨的新冷战》。
中美之间的“新冷战”真的像两位作者认定的那样“不可避免”吗?笔者对此不以为然。
冷战是一场全方位的零和对抗
所谓“冷战”,是上世纪50年代至90年代初美国和苏联之间进行的一场没有“热战”的全面对抗。它的发生和发展,有着特定的国际环境和十分鲜明的特点。二战结束后,反帝反殖的民族独立解放运动席卷全球,而领导这些运动的往往是各国的共产党或民族主义左翼组织。在这样的国际环境下,世界格局迅速分裂为以美国为首和以苏联为首的两大对抗阵营。“冷战”由此而生。
美苏冷战是一场此消彼长的全方位零和博弈。首先,双方在意识形态上针锋相对。一个要走资本主义“自由”之路,一个要走共产主义“民主”之路,旗帜鲜明,泾渭分明。第二,双方在军事安全上公开对抗。美苏各自组织了北大西洋公约联盟和华沙条约联盟,两大军事阵营互以打败对方为终极目标。第三,双方在经济上相互独立。在截然不同的意识形态指导下,美苏营造了完全不同、互不往来的资本主义市场经济和社会主义计划经济。
值得关注的是,在冷战期间,美国借助与苏联的强势对抗进行了两次大的“再造”。第一次是在20世纪50至60年代。这期间新中国成立,美国受挫于朝鲜战争,亚非拉民族独立解放运动风起云涌,发射了第一颗人造卫星的苏联咄咄逼人。在1956年华沙条约组织大使会议上,赫鲁晓夫公开表示要“埋葬资本主义”。1962年苏联更是将战略导弹部署到加勒比海的古巴。在美国国内,“麦卡锡主义”撕裂了社会,战后经济调整以及艾森豪威尔的“平衡预算”政策使经济滑坡,至1958年已跌入衰退边缘。内外交困使得美国朝野普遍陷于焦虑与沮丧之中。
在此形势下,艾森豪威尔宣布苏联为“最根本的安全威胁”,进而制定了以“大规模(核)报复”为主要内容的“新面貌”战略。苏伊士运河危机后,更是明确表明美国不惜动用武力阻止苏联的扩张。这一“强硬”政策,使艾森豪威尔政府对外缓解了与英法等国在非殖民化、中东以及经济等问题上的矛盾,对内有效地推动一系列“实用保守主义”的左倾政策。这些“实质上的社会主义”政策迫使大资本右翼保守势力向产业工人等弱势群体妥协让利,推动了美国社会向左转型与进步。同时,经济持续以5%的年均增长率快速发展,总产值从1958年的2.97万亿美元增长到1972年的5.38万亿美元。快速的经济发展和稳定的社会环境,使大批中产阶级实现了有房有车的“美国梦”。同时,以1962年“古巴导弹危机”为转折点,美国也在与苏联的对抗中获取了主动权。
第二次是在20世纪70年代中后期。越南战争的失败、石油危机和美元危机导致的经济衰退、居高不下的通胀和失业率、反战运动引发的左翼人权运动等再次撕裂了美国社会。美国在国际事务中也疲软不堪。而此时的苏联则大力扩充军备,不仅核武器和常规军备均超过美国,而且在国际事务中全面出击。1968年到1979年期间,尽管美苏两国关系进入“缓和”,但事实上苏联风头力压美国。
1981年里根总统执政后,摒弃了自尼克松以来与苏联的缓和政策,公开宣称苏联为“邪恶帝国”,开展和苏联的军备竞赛。在国内,里根通过减税、缩减社保福利预算、冻结最低工资、限制工会权力、公共事业私有化等政策,强势推动美国向右转。经济上则着力于大资本主导的“供给侧经济”,以扩大消费来推动美国经济发展。
随着美国社会“右进左退”的转型,美国经济也进入第二个高速发展期:里根主政8年期间,经济年均增长率为3.6%,国民经济总产值从1980年的6.76万亿美元增长到1990年的9.39万亿美元。
美国在以上两个时期能够迅速扭转局面表明,美国政治体制有很强的纠偏能力。决定这个能力的根本原因在于其决策体制有效且其具有制度化的妥协机制。这个妥协机制在面临强大外敌时尤为敏感和高效。其结果是对外整合了与盟友的关系,对内克服了各利益集团间的矛盾,对美国政治、经济以及社会进行整体调整,使美国能够率领联盟体系把政治、经济和军事力量拧成一股绳,凝聚起来“遏制”苏联。
回顾历史,美国“赢得”的冷战并非是军事上的胜利,今天的俄乌冲突表明俄罗斯仍然能够和美国及其盟友进行军事上的对抗;冷战也不是政治胜利,因为共产党领导下的中国的崛起击碎了“历史终结”的幻觉,“华盛顿模式”没有一统天下。美国“赢得”冷战的根本原因,是在两大阵营的“零和”对抗中,把自己和盟友将政治、军事和经济力量拧成一股绳,最终在经济上压垮了苏联僵化的社会主义计划经济,并通过“政治叙事”的构建夺得了国际事务中的话语权。
美国想把中国引入冷战框架
拜登政府执政以来,尽管一再声称美国“不与中国打冷战”,但却视中国为“最严峻”的威胁。为了打压中国,拜登政府不遗余力地在政治上拉帮结派,要“重振”针对中国的“有共同价值观的联盟”,在经济上以“去风险”为名“去中国化”,在军事上打造压制中国的“印太围堵圈”。显然,这套“全方位”的战略是在冷战思维指导下制定的,其目的就是要将中国带入其预设的冷战战略框架中。这也是西方舆论鼓噪中美“新冷战”的根本原因所在。
然而,正如当年美苏冷战中的情形一样,美国也很难在政治和军事上压倒今天的中国。近来布林肯和沙利文都公开表示寻求与中国长期“和平共处”,但华盛顿的整体思路仍是下大力气企图像当年对付苏联一样在经济上压垮中国。正因如此,拜登政府在“竞赢”中国的各项政策中,力度最大、措施最狠、密集度最高的就是企图在经济上“去中国化”。所谓“脱钩”“去风险”,以至在高科技领域搞“小院高墙”,本质上都是想将中国经济排除在世界经济,或者至少是发达国家的经济之外。因为只有这样,才能不但在经济上阻碍中国的发展,而且——也是更为重要的——能够使美国及其盟友像当年遏制苏联那样,将政治、军事和经济力量凝聚起来“全方位”地遏制中国。
中国不会落入美国预设圈套
今非昔比。由于中国坚持改革开放,坚持发展社会主义市场经济,顺应经济全球化的大潮,使得今天的中国经济已经与世界经济深度融合,中国和美国及其盟友在经济上早已是“你中有我、我中有你”。在这个大格局下,美国及其盟友在与中国的“竞争”中纠结于两个完全不同的博弈之中。一方面视中国为“最严峻的挑战者”(或“系统性对手”)而企图全力打压,进而推动一场此消彼长的“零和”对抗。然而,由于双方经济上(一时)难以逆转的相互依赖,又不能——其内部强大的既得利益集团也坚决抵制——与中国“脱钩”,而是要“保持公平的经济交流”(以便能够继续赚钱),这在实质上是一场妥协双赢的“正和”博弈。换言之,安全利益和经济利益的错位,是美国对内整合力量、对外拉帮结派打压中国的最大障碍,这个障碍使得美国难以像针对苏联那样将政治、军事、经济力量凝聚在一起遏制中国。
更为关键的是,中国绝不会被美国带节奏,陷入到其设定的“新冷战”战略圈套中。
首先,中国在意识形态上避免与美国搞泾渭分明的对抗。美国提出号称是“普世价值”——实质上是强加于人的——“自由民主”价值观;而中国则注重共同利益,推动建设人类命运共同体,倡导包括和平、发展、公平、正义、民主、自由在内的全人类共同价值。中国拒绝“颜色革命”,坚持走自己的道路,但不输出意识形态,也不强迫其他国家走和我们一样的道路。
其次,在经济方面,中国坚持对外开放,坚持合作发展,互利共赢。毕竟经济全球化不是任何一个政府的战略或政策决定的,而是市场经济推动的结果。推动经济全球化根本动力,是市场经济对资源的最佳配置、生产的最高效率和利润的最大化的不懈追求。只要中国坚持改革开放、坚持社会主义市场经济,美国要在经济上“去中国化”就是伪命题。不久前访问中国的美国财长耶伦坦言,在市场经济机制下,“(美国)与中国脱钩必将是灾难性的”。
可见,当年冷战中最基本的标志性现象——意识形态和政治上的针锋相对、军事上的阵营对抗、经济上的完全“脱钩”——在今天中위로美之间并不存在。声称中美之间的“新冷战不可避免”是美国在带节奏。如按照美国设定的节奏走,中美进入冷战状态,形成所谓“新冷战”,美国就能够像当年那样,把自身及其盟友体系的政治、军事和经济力量凝聚在一起打压中国。
正如习近平总书记反复强调的那样,“中国始终认为,世界好,中国才能好;中国好,世界才更好。”显而易见,中国没有,也不会跟着美国的步骤而陷入其预设的冷战战略框架中去。中国坚持和平发展和对外开放,寻求合作、不搞对抗。如此,仅凭美国一个巴掌,“新冷战”能拍得响吗?
(作者是上海外国语大学特聘教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