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선생님을 추도합니다.
2024년 3월 19일
강정구
선생님, 제가 오늘 이 추도사를 올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감기 증세로 편찮으시다가 3주 전 남대문 촛불모임 현장에서 선생님을 뵈올 때도
여전히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시던 선생님이셨죠.
선생님께 따스한 말 한마디도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 황망히 떠나보내오니
지난 날 선생님과 함께 한 일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태생적으로 현장 실천 운동가였고 선천적으로 세상을 좋게 바꾸려는
새판짜기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의 만남도 사회운동 현장이었고 집회장이었습니다.
동시에 선생님은 미시적인 삶의 현장에서 쓰레기 분리나 아파트 경비원 인권문제에 이르기까지
새판짜기에, 곧 인간의 얼굴을 가진 세상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활동가였습니다.
한번은 우리 장년남신도회에서 광릉수목원에 나들이 갔을 때였습니다.
소나무 줄기 위에 가느다란 칡넝쿨이 소나무 성장을 방해한다고 해서
그 넝쿨이 뻗어나가는 방향을 돌려놓기도 하셨고 당신은 산에 갈 때 종종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생태계에까지 뻗쳤습니다.
또 지하철역에서 관광객들이 출구를 잘 못 알고 해맬 때 그들을 도와주시느라 교회도 늦을 뻔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명동에 다닐 때 길을 헤매는 관광객에 먼저 다가가 길을 안내하신다고도 하셨습니다.
제 개인적 인연도 바로 이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참여연대와 사립대학 정상화 활동이나 촛불집회 현장에서 뵈옵게 되었죠.
특히 제가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을 받을 때 몇 번이나 법정에 오셔 격려하시고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에게는 향린교회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향린교회로 오셨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향린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사회선교부에 몸을 푸셨습니다.
선생님의 태생적 본질이 역시 향린에서도 그대로 발동하셨습니다.
새길교회 다니실 때 군사정권의 억압에 항거하고 고난 받았던
유가협, 민가협, 문익환 목사님 등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일을 일선에서 수행하셨습니다.
이런 탈렌트를 살리셔서 향린교회에서도 선생님만의 영역을
일구어 나가실 텐데 너무나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살아생전에 참으로 많은 곳에서 많은 일들을 소리 나지 않게 해 오셨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름답고 사람 사는 세상답게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선생님,
반가운 소식 전하겠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구도에서 닥아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질서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서방 제국주의 지배 350여년이 끝장나고 있습니다.
350여년 군림해왔던 빈부격차가 천양지차인 자본주의도
이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 처한 한반도도 머지않아 새 기운을 받아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이 구도 속에 제2, 제3의 이상철 선생이 계속 나타나
선생님이 소망하시는 세상에 한층 더 다가갈 것입니다.
선생님, 그곳에서 기쁨으로 지켜 봐 주시면서
영면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