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중·북·러, 또 하나의 근대화
등록 :2019-05-07 17:51수정 :2019-05-08 14:06
중국의 자유주의 지식인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9년 전이다. 감옥에 있는 활동가가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자못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감옥에 간 이유는 소위 ‘08헌장’을 기초했기 때문이다. 그가 상을 수상하자 노르웨이 신문들이 이 헌장을 ‘중국 민주화의 선언문’이라고 하여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그토록 중요한 문서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원본을 유심히 봤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헌장’은 단순히 다당제 도입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재산 보호’라는 항목을 따로 해서 ‘개방적 시장경제제도’의 확립과 토지 사유화까지 요구했다. 토지가 사유화되면 토지를 잃고 유랑민이 될 농민들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그 헌장에는 없었다. 헌장을 읽고 나서 류샤오보의 기고문과 인터뷰 자료 등을 이것저것 읽기 시작했는데, “영국 식민통치 덕분에 성립된” 홍콩의 ‘근대성’을 극찬하면서 “중국을 홍콩같이 문명적인 곳으로 만들자면 300년간의 식민지배가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들을 접하고 다시 한번 엄청나게 경악했다.
그러고 나서 내 블로그에 그에 관한 글을 써봤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라 하더라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지만, 이런 유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만에 하나 중국에서 집권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일당독재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 글을 쓴 뒤에 수많은 국내 진보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왜 독재세력을 비호하고 민주화 인사를 비난하느냐는 요지의 비판이었다.
이런 비판을 낳은 논리구조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이 논리는 한국의 역사를 ‘정상’으로 상정하는 한편, 한국과 역사적 궤도가 다른 북방의 ‘후진국’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이 논리에서는 ‘우리처럼’ 다당제 대의제를 이루는 것은 역사의 정도(正道)다. 반면 이처럼 되지 못한 중국이나 북한, 러시아 같은 나라는 ‘아직도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는 후진국’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아울러 중국의 공산당 내지 북한의 노동당 통치, 아니면 푸틴의 관료 통치는 ‘우리들의 60~80년대’, 즉 한국의 군부독재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민주주의를 달성한 우리의 성공’과 ‘아직도 우리 군사독재 같은 억압을 받고 있는 저들의 미성숙’을 대조시키는 유아독존의 자만의식으로 직결된다.
자만은 늘 위험하다. 그리고 과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미래 예측까지도 그르칠 위험성이 있다. 북한이 ‘붕괴된다’든가, 중국이나 러시아가 언젠가 ‘우리처럼 민주화’될 수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가설들은 잘못하면 틀린 정책적 판단으로 이어진다. 사실 북방 국가들이 ‘우리처럼’ 될 일은 없다. 그들은 우리와 질적으로 다른 근대화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을 뿐이다.
한국과 중·북·러 사이의 근원적 차이는 ‘혁명’이라는 근대의 태생적 사건에서 비롯된다. 1987년 이후의 절차적 민주화는 해방 직후 혁명, 즉 친일세력 청산과 엘리트 교체의 실패에 대한 뒤늦은 역사적 ‘보상’이었다. 따라서 한계는 분명했다. 미국의 군사보호령으로서의 한국의 지정학적 지위나 일제 내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부를 축적한 재벌의 사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한국에서 주류가 될 수 없다. 대미 종속관계나 재벌의 부가 위협에 처하는 순간 헌정이 중단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강경우파가 집권하든 중도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하든 경제 정책이 재벌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실제적 지배자들이 제한적 민주화를 허용한 하나의 조건이었다.
혁명이 실패한 한국에서 재벌은 국가 위에 군림한다. 반대로 혁명을 겪은 북방 국가들 같은 경우에는 국가가 기업들을 지배하는 판이다. 사실 혁명을 계기로 해서 만들어진 국가는 애당초에 기업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북방 국가들을 낳은 원천적 사건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애초 목표는 세계혁명과 국가의 사멸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바로 수정돼야 했다. 알고 보니 러시아보다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향유했던 구미권의 노동세력은 혁명과 국가의 사멸보다 참정권과 복지 국가라는 체제와의 타협을 원했던 것이다.
애초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해지자 그다음 목표는 구미권의 투자·기술에 대한 종속을 피할 수 있는 자주적인 근대화였다. 그런 근대화 없이는 혁명 국가들은 단명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자주적 근대화는 고도의 내부 자원 총동원을 요구했으며, 시장을 대체하는 국가동원체제의 수립을 가져왔다. 내부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와 미·일·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던 북한은 이 길을 60년 가까이 걸었다. 하지만 인구가 과밀해 농촌에서 수취하여 공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잉여가 적은데다가 이미 1972년에 미국과 화친을 맺은 중국의 경우 내부 자원 동원에 의한 근대화 전략은 3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전략으로는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을 추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무렵 중국 지도부는 방향을 수정했던 것이다. 중국이 1980년대 이후에 먼저 발명했고, 러시아가 2000년대 초부터, 그리고 북한이 최근에 수용한 새로운 전략은 바로 국가관료 자본주의다.
이 전략은 구미권의 자본·기술 도입에 의한, 한국과 같은 고속 개발을 일단 허용한다. 한데 재벌이 국가를 통제하는 한국과 달리 북방 국가들의 경우 국가가 기업을 통제한다. 상당수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대기업들은 아예 국유로 남아 있다. 국민총생산에서의 국유기업의 몫은 러시아에서는 약 40%, 중국에서는 약 30% 정도다. 그러나 사기업이라 하더라도 국가의 지휘·감독을 사실상 받는다. 국가는 당(중국·북한)이나 공무원 조직(러시아)을 통해서 소외계층에게 일정 정도의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첨단 부문에의 집중적인 전략 투자를 통해 구미권과의 기술 격차를 극복해 국가 주권을 사수한다. 구미권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주성 획득은 불가능해도 적어도 주권만큼은 사수하는 것이 이와 같은 체제의 궁극적 존재 명분이다.
북방형 국가관료자본주의라 해도, 밑으로부터의 생존권 투쟁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파업투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바로 중국이다. 그러나 예컨대 러시아 같으면 가장 지지받는 야당은 더 높은 수준의 국가적 경제 관리와 좀 더 치열한 반미 외교를 외치는 연방 공산당이다. ‘자주’ ‘주권’ 같은 화두로 살아온 사회들에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까지 지지한 류샤오보식의 논리는 과연 사회적 헤게모니를 얻을 수 있을까? 북방 사회의 민중은 저항을 한다 해도 방향은 일부 매판 지식인의 친미 자유주의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민족주의적 명분을 갖고 있는, 이미 공고화된 국가관료 자본주의 모델이 ‘붕괴’를 맞거나 그 체질이 크게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언젠가 ‘우리’처럼 될 것이라는 자만에 찬 착각은 우리부터 버렸으면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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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2957.html?_fr=mt5#csidxb3ceef60ce802a7a108e6fd956f77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