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회와 서로 목회
향린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담임목사님이 설교 중 소모임-당시 담임목사님이 주도한 교회 조직-에 적극 참여할 것을 당부하였고, ‘순종’-어떤 맥락에서 이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에 없다.-을 말하였다. 그러자 ‘순종’이라는 말에 불편을 느낀 이들의 강한 항의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왔고, 담임목사님의 해명이 오갔다. ‘담임목사’님이 ‘담임목회’를 일정부분 해하는 ‘서로목회(평신도목회)’조직(소모임) 참여를 독려했더니 ‘담임목회’를 못마땅해 하던 이들이 담임목사님이 순종을 요구했다며 항의를 한 것이다. 반면 그동안 우리 교회의 ‘담임목회’를 지지지하며 새로 오신 ‘담임목사’님이 ‘담임목회’에 방해되는 소모임 조직을 만든다며 못마땅해 하던 이들은 ‘담임목사’님의 목회-순종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는 당시 상황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우리 향린교회에서 목회란 무엇이며 목회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인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교회는 목회적 관계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이르는 말
교회는 목회적 관계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회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목회(평신도 목회)를 강조하고 있다. 둘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테니 어느 하나가 더 좋다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교회가 처한 문제가 있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받아들이기 싫을 때는 서로목회(평신도 교회 전통)으로 비판하다가 정작 교인들이 서로 짐을 져야 할 상황이 되면 담임목회 제도에 기대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에선 분업화된 담임목회제도가 주는 부담의 가벼움을 최대한 누리며 교회생활을 하고자 한다. 이는 마치 한 개인이 학교 교육정책에 대해 진보적 요구를 하다가 정작 자신의 자녀교육에는 보수적 자세를 취하는 것과 같은 자기분열적인 모습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이런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목회’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신은 그 목회에 어떻게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우리 교회가 선 자리는
최근에 당회 회의록에 대해 문제제기와 아쉬움을 말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향린교회의 주요 목회기구의 목회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지난해까지 첨예한 갈등을 겪었고 그 일과 관련하여 당회가 교인에게 공개 사과를 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다. 당시 당회의 자기 반성을 기반으로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어떤 개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최근 예향 관련 사안의 진행과 당회의 처분-회의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과 알음알음 파악한 내용의 해석-을 보면 개혁을 위한 노력이 ‘목회’라는 지점에서는 별로 성과가 없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마침 반성문을 낸 게 당회여서 그렇고 목회운영위원회와 여타의 조직도 비슷.)
그래도 저는 목회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교회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 목회를 고민하는 향린교인들을 곳곳에서 만나고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서로를 서로가 세우는 목회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교인전용게시판에도 동시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