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느 장로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교회 나오신지 얼마 안돼서) 5년 전 사정을 모르시겠지만”이라는 말씀을 반복하시길래 잠깐 말씀을 끊고 여쭈었습니다. “제가 향린에 언제부터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명확한 답이 안나오기에 제꺽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 올해로 23년째입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화들짝 놀라시며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 장로님이 미안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가 미안한 일이죠. 송구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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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는 노래 가사가 이렇게 시작하던가요.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젊은 날의 제게 교회는 그랬습니다. 주말이 되면 의무적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교회는 오는데 교회에서 뭘 맡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친교를 나누는’ 일조차 관심이 적었습니다. 외람된 얘기지만 그건 기성 교회와 기독교에 심하게 데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향린교회라는 뭔가 쌈박하게 다른 교회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성이 줄어드는데는 장구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노력을 한다고는 했는데 천성이 게으른 탓이라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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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향린교회에서 유령으로 겉돌아도 향린교회는 제 교회였습니다. 예수를 단순히 “믿슙니다” 주문으로 섬기지 않고 그 행적을 ‘따르는’ 것을 주로 삼는 교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교회, 포이동 구룡마을에서 평택 대추리까지, 촛불 넘실대는 광화문 앞에서, 또 때와 장소를 거듭하여 눈에 보였던 주황색 교회 깃발은 마음 속의 작은 자부심이고 커다란 감사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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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유령의 눈에도 향린의 또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수련회에서 자기 소개할 때였죠. 돌아가면서 인사하는데 항상 시작이 같았습니다. “저는 향린에 나온지 몇 년 됐습니다” 많이 부끄럽더라고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저는 5년” “저는 3년” 그러는데 “13년 됐는데요.” 이러니까 눈들이 커지면서 “오래 돼셨네요” 탄성을 지르시는데 13년 동안 너 뭐했냐 하는 것 같아 몸둘바를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그 뒤론 짜증이 좀 나더군요. 아니 왜 우리 교회는 소개를 연차로 하지. 짬밥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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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짬밥(?)의 실물을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기업에서 파업 투쟁이 벌어졌고 담임목사님이 그 기업을 설교에서 작심하고 비판했는데 그 기업의 고위층 간부가 교회에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 일로 좀 시끌시끌 말들이 많이 나오고 목사님에 대한 불만과 옹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갑자기 “향린교회에서 교육을 담당했다.”는 한 분이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등장하셔설랑 “어디서 굴러온 돌들이 박힌 돌들을 빼려 드느냐.”고 일갈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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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향린교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꼭지가 돌았던 것 같습니다. 대놓고 당신 누구냐. 나 굴러왔으니 어디 박힌 돌 낯짝 한 번 보자. 실명 대고 나와라. (필명이었으니까요)고 으르렁댔습니다. 장로건 은퇴장로건 어디 목사건 나와 봐라. 어디서 향린 같은 곳에서 박힌 돌 타령이냐. 뭐 군바리냐? 짬밥 따지게? 오냐 얼마나 깊이 박혔나 보자 내 그 뿌리를 망신스러워서 스스로 빼게 해 줄게 하고 별렀죠. 첫 번째 분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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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그 일은 마무리됐습니다. 누군가 귀띔을 해 주더군요. “아무개 집사 아버님이고 예전에 향린 계셨던 분이니까....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세요.” 누군지 알고 싶었던 건데 알게 됐기도 하고 더 이상 시끄럽게 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운은 꽤 길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분위기가 있구나. 박힌 돌들이 있고 굴러온 돌들을 대하는 방식이 있구나. 얼마 전 게시판에서 한 장로님이 쓴 글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향린공동체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살펴 보고순수한 의도를 인정해주고 신뢰해줘야 합니다.“ 맙소사. 향린공동체 밖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살아온 과정은 그럼 누가 평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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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일상도 팍팍한데 교회에서 신경선 세우고 싶지 않았고 직업상 밤샘하고 지방 쏘다니는 일이 지천이라 교회에서 뭘 맡기도 어려웠고, 솔직히 그럴 마음도 적었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교회 나오고 사라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상처받을 일도 없었죠. 뭐 박힌 돌이 뭐라고 하든 나는 구르면 그만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상처받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저같은 유령이 아니라,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대 이름은 바람이 아니라, 신실한 마음으로 향린을 섬기고 싶어했고 향린답게 예수를 믿고 싶어했던 분들이 교회 안의 벽 아닌 벽 때문에 내상을 입었더군요.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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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청여에서 <청년예수의 깃발, 그 가치를 위해 함께 일하는 귀한 교우들께 드리는 호소문>을 붙였을 때 일입니다. 지금 교회를 태풍의 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00 장로님 문제에 대한 의견이었는데 그 대자보를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향린교회 수준이 있지 대자보 붙이는 걸 뭐라고 하려고. 그랬더니 꽤 큰 소란이 일어나더군요. 그때 한 집사님이 지금도 생각나면 한숨이 나오는 멘트를 내뱉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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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이게 무슨 짓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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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교회 온지 23년에 두 번째로 격노하고 말았습니다. 짓이라니 짓이라니. 저는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값을 해야 나이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굳이 나이값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나이 대접은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우들이 자신들의 뜻을 천명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앞에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비아냥거리는 모습에 잠깐 ‘뚜껑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 절은 뉘 절이며 그 중들은 누구란 말이냐. 거기에 감히 교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짓’이라고 깔아뭉개다니. 그래서 그날 '나이값'을 셈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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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내용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00 장로님 문제. 아내는 제 아이가 어렸을 적 몸이 아팠을 때 이00장로님께 문의했을 때 친절하고 자상하게 답해 주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 역시 그분께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단 교인들의 의사에 따라 선출된 장로로서 목사와의 불화이든, 교회 내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알력이든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교회 나오기를 거부하셨고, 그에 따라 장로 직을 자의에 의해 수행하지 않은 이상, 시무 장로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신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신도 교회를 자처하는 향린교회에서 장로와 평신도 사이에 그리 큰 간격이 있지 않을진대, 과감하게 그 자리를 퇴하시고 평신도로서 서로 오해를 없애고 상처를 다독이며 향린인으로서의 우의를 다지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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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문제가 결국 솔로몬 앞에 아이를 들이밀고 칼로 베든 말든 내 아이인지를 증명하라는 식으로 공동의회에 부쳐졌습니다. 그것도 이00장로님 본인의 희망으로 말입니다. 이 암담한 날을 앞두고 오늘 저는 이 교회에 나온지 세 번째로 분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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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일 집사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의 주인공이십니다. 김명일 집사님은 지난 주일 교회에서 인사를 건네는 교우에게 “그냥 생깝시다.”라고 어이없이 말씀하셨고 이후 사소한 승강이를 벌이셨는데 이를 경찰서에 고발하는 대단한 행동을 하셨더군요. 경찰도 얼척없다고 할 만큼 가벼운 일이었고 피차 감정 섞인 언사를 주고받았고 물리적 타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교회에서 생긴 일을 두고 교우가 교우를 고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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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노합니다. 어떻게 교우가 교우를 범죄에 버금가는 상황도 아닌데, 세속의 법에 호소할 수 있으며 대관절 그 속내는 무엇입니까. 대놓고 ‘너희같은 중들을 이 절에 못두겠다’는 식으로 교회를 깨자는 발상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실 수 있습니까.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니고 인사하는 사람에게 침 뱉듯 모욕을 줘 놓고서 승강이를 벌인 뒤 고발을 하다니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명일 집사님은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말도 안되는 고소고발을 취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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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는 교회이고 우리는 교우입니다. 어쨌건 향린의 깃발 아래 있었고 서로를 교우이자 동지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뜻이 다르면 싸울 수도 있고 험한 말이 오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니까요. 그래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할 수도 있습니다. 뒤에 사과하면 되지요. 하지만 사적인 대화 과정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감정을 발산하는 상대방의 발언을 녹음해설랑 그걸로 이놈이 이런 놈입니다 울랄라 하며 조리돌림을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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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오래 연출한 PD입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리건대 저는 향린교회의 모든 분들, 목사님부터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기타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전화기 한 대와 와이어리스 마이크 한 대면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 화나게 만드는 일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천하의 향린교회에서 그런 녹음이 행해지고 그걸 돌려 들으며 “어머 어머 어떡해 얘 말하는 거 봐,” “와 이거 나쁜 놈이네.” 하면서 같은 교우를 조리돌림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 바, 저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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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가 공동의회까지 이어지고 가부간에 결정이 난다면 저는 결과에 순종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걱정이 됩니다. 별것도 아닌 승강이에 고소 고발을 내던지는 김명일 집사님은 결과에 순종하실 수 있습니까? 사적인 대화를 녹취해서 조리돌림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은 결과에 따르실 수 있을까요? 모두들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선은 넘지 않도록 하십시다. 이 교회는 우리들의 교회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이 교회에서 네 번째로 화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
오후에 산하님 특강이 있다고 해서 잔뜩 부푼 마음으로 왔다가, 초췌한 청여 회원 여러분들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예배도 못드리고 그냥 집에 돌아간 일.
게시판이 시끄러워져서 본의 아니게 키보드 워리어가 되었던 일.
또다시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짬밥을 내세우지는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홍근수 목사님 시무하실 때부터 교회에 출석한 사람입니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