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
2019년 10월 11일(금) 제21호
‘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은 묵자에 나오는 말로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비추어 보라는 말입니다.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자기경계인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우편번호 : 02704)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727번길 84, 희남신도회장 김종일
E-mail : jaju58@hanmail.net, 전화 : 010-9972-1110
1. 생활 나눔
2019년 희남신도회장으로 선출된 김종일입니다.
희남 회원님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21번째 서신을 보냅니다.
10월 13일(일) 향린교회에서 심원 안병무 선생 23주기 추모강연이 “지중해 세계의 민중 메시아 탐구-안병무의 역사적 예수”란 주제로 열렸습니다. 영국 버밍햄대학, 성서해석학 명예교수이신 R.S. Sugirtharajah님이 강연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민중에게서 메시아를 발견한 안병무 선생의 신학적 관점과 신앙적 고백이 세계인에게도 큰 울림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향의 추모공연이 울림을 더했습니다.
386세대와 청년세대의 ‘고통’에 대한 세미나가 10월16일(수), 저녁7시30분, 2층 어린이부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텍스트로(이 시대의 고통을 보는 사유, 포토 저널리즘, 현 시국 현안 등에 대한 세대 간 토론의 장) 열립니다. 철공소와 새청 인문공화국이 공동 주최합니다. 우리 시대의 절박한 화두임이 틀림없습니다.
2019 향린청년학술제가 “향린과 청년, 한국사회의 존재좌표를 짚다”란 주제로 열립니다. 10월20일(일), 오후1시30분, 1층 향우실, 기조발제-신정환, 주제발제-김가흔, 장동원, 김하나, 김재원, 토론-홍원기, 구본환, 김대송, 하상우, 진행-정상희, 청년신도회와 희년청년회가 공동 주관합니다. 참석과 기도로 응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10월 희남 월례회는 10월 20일로 연기합니다.
11월 희남 월례회는 11월 10일 예배직후 김희헌 목사님 방에서 열립니다.
2. 성경 한 구절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신다.”(벧전 3:10-12)
10월 12일 군산에서 개최한 ‘효순미선 추모공원 기금 마련 콘서트와 김판태 동지 1주기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늦은 밤 귀경하는 길에 눈을 감고 상념에 빠졌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참 기구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세욱 열사를 처음 만난 곳은 효순미선 촛불집회가 열리는 의정부 미 야전사령부 정문 앞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시던 그 분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하셨습니다. 이후 평택 대추리 투쟁과 한미FTA반대 투쟁을 전개하시다가 분신을 하신 분입니다. 철도 해고노동자인 김석주는 저의 절친한 동지입니다. 그는 20년에 걸친 해고기간에 온갖 투쟁에 참여하다가 암을 얻어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하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항상 저를 걱정하며 응원해준 동지입니다. 김판태 동지는 저와 함께 효순미선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우여곡절 끝에 경찰이 확보했던 시신사진 등 사건초기 자료를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유족과 우리 국민을 우롱한 주한미군과 미국을 향한 범국민적인 자주의 촛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마석 모란공원에 허세욱, 김석주, 김판태 세 분의 묘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을 떠 올릴 때마다 숙연해집니다. 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간직했던 분들입니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면서 주변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했던 분들입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처지와 조건을 고려하여 존중하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에 맞서 결기와 단호함을 견지하며 선을 행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분들입니다. 그들은 제가 투쟁 현장에서 만났던 평화의 사도들이었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들을 잊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삶이 저의 삶에 들어와 투사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하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제 자신을 성찰할 때 종종 떠오르는 말입니다. 양파껍질 벗기듯 자신을 성찰하다보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확신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예수의 마음이 내 속에 온전히 뿌리박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 세상만사
지난 9월 23일(현지 시간) 문정인 청와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미 인터넷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미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은 사실상 남북관계를 희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융통성 없는 대북제재 일변도 정책을 고수하면서, 한미관계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문 특보는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제재완화는 절대 없다는 미국의 입장은 한국의 노력에 정말로 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한에 매우 실망했으며, 남한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최근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사실상 문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며 거칠게 비난한 배경이 됐다고 문 특보는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을 통해 철도연결, 관광특구개설, 군사 분야 합의 등을 약속했습니다. 남북 협력사업을 통해 반세기를 넘은 오랜 적대감을 걷어내고 신뢰를 쌓아가는 한편,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관계를 이끌어가는 선순환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노딜’로 끝났고, 비핵화 협상이 정체에 빠지면서 모든 남북관계도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서는 결국 북·미간 비핵화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미국은 물론, 북에도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문 특보는 조언했습니다. 문 특보는 “한국은 북에 몇 가지를 요구해야 한다”면서 “먼저 풍계리 핵실험장에 국제사찰단의 방문을 허용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선제적으로 해체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미국에는 “2016년 이후 부과된 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요청하고 어렵다면 최소한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으로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진리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4. 옛 이야기
제 딸의 이름은 김슬기입니다. 이름처럼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 대견합니다. 사위와 인상과 덩치도 비슷해서 오누이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저도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합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 저와 함께 통일운동을 해온 동지여서 더욱 신뢰합니다. 부디 건강하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착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딸도 이해해주리라 믿고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슬기는 1982년 안산 반월공단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연년생 동생의 자식입니다. 한샘키친 하청 용접공이었던 동생이 일마치고 돌아와 창고를 개조한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동료노동자 2명과 함께 사망했습니다. 그 때 제 동생의 나이 22살이었습니다. 동생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동생에게 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아이가 슬기입니다. 저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슬기를 월 1-2회 정도 찾아가 만나곤 했습니다. 낯을 가리던 슬기가 제가 가면 엉금엉금 기어 제 무릎에 앉았던 기억이 아직도 짠한 기억으로 생생합니다. 제가 결혼 후 부천에서 살았던 1987년 슬기는 7살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출생신고도 못한 슬기를 제 호적에 딸로 입적시켰습니다. 주민센터 여직원을 찾아가 출생신고를 하면서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결혼 당시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딸이 태어났으나 출생신고를 못했다. 이제야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뒤늦게 출생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직원은 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과태료를 면제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출생신고에 한자를 병기했습니다. 옥편을 뒤져 한자를 찾았고, 김슬기(金膝起)라고 병기했습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한자가 어렵다며 누슨 뜻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무릎 ‘슬’자 일어날 ‘기’자인데, 불의에 무릎을 꿇지 말라는 뜻”이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슬기가 1980년생이니 저하고는 22살 차이입니다. 어느덧 딸이 40줄에 들어섭니다. 언제나 저를 격려하고 세심하게 배려했던 딸이 늘 고맙습니다.
아빠와 장인으로서 딸과 사위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향기로운 이웃’으로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단 며칠을 살다가 삶을 마친다 해도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