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그 곳에 | 조은화 | 2019-11-17

by 조은화 posted Nov 22, 2019 Views 23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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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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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이사야 65:17-25; 데살로니가후서 3:6-13; 누가복음 21:5-19)

 

6년 간의 시무를 마치는 때에, 귀한 하늘뜻펴기의 자리에 있게 해주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 문장을 시작하는 지금, 6년 전 향린의 강단에서 처음 섰을 때처럼, 떨리고 무거운 심정입니다. 그리고 강단이 주는 힘을 알기에 마지막까지의 떨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앉아계신 교우들의 눈빛을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시간 온라인 영상으로 함께 예배드리고 계신 분들의 기운까지 더한다면 여기는 더욱 소중한 자리임은 분명하겠습니다.

 

오늘의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는 데 있어 첫 줄을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보냈습니다. 한 달 전부터 본 성서말씀을 뚫어져라 보면서도, 한 문장조차 시작을 못했으니까요. 무엇보다 계속되는 우여곡절 속에 저의 마음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깨어남]

 

제가 10대 때 좋아하던 그룹이 있었습니다, 트레이 3인조 국민그룹으로 소방차에 견줄만한 그룹이 있었으니, 1992년 혜성처럼 나타난 신세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입니다. 당시 히트곡으로 난 알아요!’ 외에 환상 속에 그대가 있습니다. 지난 날 예향 수련회에서 주옥같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을 들으며 춤을 추던 때가 기억나는데요. 저 뒤 예향에 앉아 계신 분들 중에 저의 좌와 우로 양현석과 이주노가 되어주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환상속의 그대이 곡은 최근에 다시 듣다가 가사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았는데요 가사의 내용을 나눕니다.

 

- 환상속의 그대

결코 시간이 멈추어 줄 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될거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이 가사를 마음에 담으며 누가복음서 본문을 봅니다.

 

[환상 속 성전]

 

누가복음서 본문은 역사의 종말에 대해 말합니다. 헤롯 왕이 확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다교와 로마군에게 충격을 일으킬만한 말이었습니다. 누가복음서를 읽는 독자층은 예루살렘이 오래전에 파괴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파괴에 대한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비록 처절한 싸움에서 파괴된 성전이나 후대에 초대교회에서 힘든 가운데 보는 성전파괴는, 잘 될거라는 거, 좋다고만 하는 바로 그 성전을 두고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멋지고 대단하고 좋아 보인다고?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충격적 이야기로, 당시 사람들에 대하여 환상 깨기 작업에 착수합니다.

 

 

우리는 보통 돈이 정말 대단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권력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면서도 내심 내가 그렇게 되고자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이것만 있으면 정말 다 잘 될거다. 좋은 대학과 알아주는 직장을 가면 행복할거다. 돈을 많이 벌면 떵떵거리며 살거라는 환상 속 잣대로 우리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예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운데 왜 무너진다고 했을까요? 우리는 성전의 특징으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은 수식의 말을 통해 무엇인가 수수께기 같은 힌트를 얻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두 번째는 바벨론 포로로 돌아온 스룹바벨 때 세워진 스룹바벨 성전이고요, 세 번째는 누가가 보는 헤롯 대왕(20-19)에 의한 성전건축에 힘입어 완성된 성전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은 단단한 흰돌, 아름다운 돌들로 꾸며졌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봉헌물은 요세푸스에 언급된 것을 참고로 한다면, 이방인들로부터 빼앗은 전리품들과 헤롯이 아랍인들로부터 탈취한 것 등을 비롯한 그가 봉헌했던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성전파괴 사건은 누가복음서가 보기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바라본 새 하늘 새 땅]

 

오늘 이사야가 고백하는 새 하늘 새 땅은 누가와 같이 바라본다면 우리가 환상을 품고 생각하는 저 하늘에 있는 천국은 아닐 것입니다. 나의 세상과 너무 먼 괴리 있는 부자의 삶, 높은 명성을 가진 삶도 아니겠지요. 무엇보다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시대는 아직도 침략과 수탈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때였고, 바로 이때 모두가 희망하는 간절함이 담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한다는 희망의 말 앞에는 보다 힘든 현실의 어려움이 가득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발 딛인 그 자리의 아픔 속에서 희망이 시작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는 분명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사야가 꿈꾸는 새 하늘 새 땅은 식민지로 사는 어려움 속에서, 노예와 같은 억압의 속에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굶어주지 않고, 집을 짓고 쫓겨나지 않고, 자가 기른 나무 열매를 빼앗기지 않는 세상이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인간답게 사는 것, 인정받지 못함으로 사람답게 살지 못해 힘겨워 하는 중에도, 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는 것이 간절한 희망이었습니다.

 

어쩌면 요 몇 주간 향린의 일상이 많이 힘들었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시점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교회의 변동과 갈등을 맞이하며 날것 그대로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직면했던 시대가 어둡고 힘들었던 상황이었음을 볼 때 우리는 부정의와 위기의 한가운데서 교회공동체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데살로니가 공동체]

 

오늘 주어진 데살로니가후서 본문은 공동체가 뜻을 향해 나아가기에는 사회의 억압구조를 피할 수 는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은 공동체 내에 불평등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회의 계급 구조가 데살로니가 공동체 내에 반영되어 나타난 불평등한 노동환경으로 고민했음을 봅니다. 즉 불평등 구조 속에서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군림하면서 일하지 않고 거저먹으려 할 때 공동체의 균형은 깨지고, 힘든 이들이 짐을 질 수 밖에 없었음을 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봅니다. ‘평등하게 다 함께 일하자라고 몇 번을 외치며 공동체가 함께 하는 수고 속에 서로를 위한 노동환경을 이루고자 하는 애씀을 봅니다. 어찌 못할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든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말이지요.

 

[우리 존재의 힘]

 

절대기도의 비밀이라는 책의 내용을 잠시 봅니다.

우리 안에는 아름다운 야성의 힘이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시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신비주의 종교 수피교의 루미는 마력과 같은 이 힘을 커다란 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이 노에 싣고 나와 함께 간다면, 우주를 창조한 힘이 당신의 근육 속에 깃들 것이다. 그 힘은 우리의 팔다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성한 영역에서 나온다이 힘을 노로 삼아 인생의 풍랑을 헤쳐나 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고대인들은 그 무언가를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불렀습니다.

 

박유진 님 외에 몇 분이 참여하여 작성하여 올해 삼일절 수운회관 앞에서 낭독된 새로운 100년 선언문의 일부를 함께 나눕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하늘이 임한 밝은 땅이며, 우리 모두 하늘의 이치대로 태어나 하늘을 품고 있는 생명임을 분명히 하노라. 모든 사람 및 뭇 생명이 평등하고, 존귀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자손만대(子孫萬代)에 모든 생명이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리라. 때가 왔다. 다시 못 올 때가 왔다. 고난과 투쟁의 시대는 가고, 바른 뜻과 바른 사람이 서는 바로 그 때가 왔다. 지난 100년 한민족의 수난은, 다가오는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새롭게 쓰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넘어서야할 관문이었다. 지금 이곳에 개벽을 꽃 피우기 위해 수천만의 생령(生靈)이 기꺼이 거름이 되었다. 가시밭길을 이겨내면서 힘을 길렀고, 다양한 사조를 융합하는 용광로를 통과하여 드디어 동서양의 모든 문명을 회통(回通)하는 삶의 양식이 태동하고 있다. 새 세상의 문을 열기 위해 우리는 모두 <나를 다시 개벽>할 것이다. 습관된 나가 지배하는 삶을, 하늘이 이끄는 참된 나의 삶으로 바꿀 것이다. 나의 개벽은 세상을 밝게 할 새 주인으로 깨어남이다. 우리 모두는 나로부터의 개벽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시 크고, 높고, 뚜렷하게 하여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명()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향린을 비롯한 신앙의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제가 깨닫고 행동하는 바의 방향을 어디로 정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앞서 이사야가 고백하는 새 하늘 새 땅은 분명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를 향하여 우리를 더 현실적인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이겠습니다. 억압의 현장을 가고 힘든 이웃을 만나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기도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즉 우리의 눈빛과 정신이 마음이 오고가는 그 자리에서 아픔과 힘듦 속에서 우리가 더욱 주님의 말씀이 펼쳐지기를 말이지요.

 

어느 한 교우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저에게도 많은 여운을 줍니다.

성서가 때로는 오류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성서일수 있으나, 성서가 일획일점 오류가 전혀 없다고 할 때는 그 성서는 믿을 수 없다. 오류가 없다고 하면 성서를 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늘 완벽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갈등하고 나아가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어려운 시기마다 새 하늘 새 땅의 희망으로 그 다음을 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신학대학원 졸업하면서 마친 논문은 예배 갱신과 춤의 역할에 관한 연구입니다. 가끔씩 논문 맨 앞장의 인사말을 펼쳐볼 때가 있습니다. 저의 인사말은 무엇보다 제가 살고 싶은 의미를 담은 시 한편으로 마음을 대신하여 올려놨습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어려울 때마다 이 시의 내용을 되새기며 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피는 작업을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늘 하늘뜻펴기를 마치며 함께 나누고자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실 향린에서 함께 한 6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볼 때 재밌고 보람찬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 하나는 저의 한계를 넘어간 경험이 하나는 기타를 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기타 스승인 임다운 교우가 음악의 벽을 넘도록 함께 해주셨습니다. 실력은 아직 미흡하지만 오늘 함께 노래를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부를 노래는 이소라 님이 부른 ‘Track3’입니다. 애초에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계속 생각난 노래입니다. 단순한 가사 내용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했을 때 바로 이 노랫말이 최선의 나눌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함석헌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을 나눕니다. “역사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승자 패자가 없는데 이르자는 것이 싸움의 이유요 목적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야곱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올라가는 생명의 운동이 있을 뿐이다.”

 

향린공동체 교우분들이 어떤 길을 가시든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늘 그 자리에 사랑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회의 구조악으로 빚어진 아픔의 장소에서 기도드릴 때, 공동체를 살려보고자 하는 생각의 차이로 갈등이 빚어질 때, 예상치 못한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 할 때, 그 모든 곳에 깊은 사랑이 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교우 여러분! 한국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계속 계속 언제나 그 자리에서 힘을 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창립청신을 기억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내는 작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보냄의 말]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가 꿈꾸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가야 함을 기억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가 고민하며 깨닫는 곳,

아픔과 기쁨이 있는 그 자리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어 주겠다는 것이고,

기운 낼 수 있도록 희망이 되어주는 것임을 기억합니다.

지금 여기의 순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시간의 처음과 끝을 붙잡은 사람임을 기억합니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