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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자기 몸을 내어주는 이 | 김희헌 | 2019-12-25

by 김희헌 posted Dec 25, 2019 Views 30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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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12-25

자기 몸을 내주는 이 (9:2-7, 2:11-14, 2:1-14)

2019.12.25. 성탄절

 

성탄절 아침 우리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은총이 고난과 시련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먼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기독교가 전해온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죽고 난 후 50년 쯤 흐른 뒤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실보도라기보다는 메시아의 강림이 주는 신학적 의미를 담은 설화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의 경배와 헤롯의 유아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누가복음은 말구유에서의 탄생과 목자들의 경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은 누가 진정한 평화의 왕인가 하는 물음을 가진 반면, 누가복음은 메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하는 물음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별의 안내를 따라온 동방박사는 헤롯왕의 질투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합니다. 헤롯은 어린 아이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달랩니다. 그러나 예수는 화를 피하고 자라나서 하늘이 점지한 평화의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누가복음은 예수 탄생의 자리를 낮은 곳으로 잡고, 이 땅에 오는 메시아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을 찾은 마리아는 해산의 장소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마구간에서 몸을 풉니다. 천사로부터 예수의 탄생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밤에도 들에서 양을 쳐야했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가 누운 구유와 그의 탄생소식을 알게 된 사람이 목자들이었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메시아 탄생 설화에 얽힌 민중성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자리가 어디인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이라는 지명과도 얽혀있습니다. ‘생명의 빵’(6:35)이신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 빵을 나누어줄 수 있는 베들레헴으로 오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말이 빵집’(Βηθλεέμ, House of bread)이라는 뜻입니다. 그를 누인 곳도 짐승의 밥그릇인 구유입니다. 기발한 발상의 이 이야기는 메시아에 관한 모든 상상력을 압도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천사는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그리스도가 나타난 표징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12), 그 표징(σημεον)구유에 누인 아이입니다. 이는 하늘에서 온 생명 양식은 이 땅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구원을 베푼다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디도서는 이러한 성탄의 메시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2:14)

구원을 베푸는 그리스도가 이렇게 자기 몸을 내어주는 분이라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 또한 자기 몸을 내주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바쳐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꿈입니다.

오늘 제1성서 본문 이사야서 9장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자적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메시아에 대한 경험에 대해서 본문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9:2)

어둠 속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구원과 평화에 관한 경험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시며, 침략자의 군화와 피 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 불에 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4-5) 정체된 한반도의 평화도 이렇게 어서 속히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영웅의 등장에서 찾지 않고 아이의 탄생에서 발견합니다. 영웅의 행위는 상대방에게 멍에를 만드는 압제의 행위를 동반합니다. 하나님은 대신에 아이와 같은 존재를 통하여 공평과 정의로써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믿기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자는 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려는 주님의 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본문은 성탄의 의미를 자기 몸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에서 찾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내어주는 분이라는 사상은 성경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셨습니다.” (2:14) 우리는 이렇게 자기 몸을 먼저 내어주고, 자기 몸으로 담을 허무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봅니다.

오늘날에도 평화를 위해서 자기 몸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작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은 평화를 지어갑니다. 지난 2011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영도조선소의 한 크레인에 올라가 1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최근 항암치료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부터 살고 있는 부산에서 대구를 향해 병든 몸으로 도보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남대의료원에서 반 년째 고공농성중인 해고노동자를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아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지금도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올 성탄절에는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강남역 철탑 위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와 같은 분들에게 예수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경향신문, “김진숙씨, 희망버스 온기 갚으러 100km 희망순례,” 2019.12.24.) 저는 그것이 성서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몸을 내어주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길도 거기에서 찾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몇 달 간 갈등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옛 껍질을 벗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런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한계와 가능성을 같이 경험해왔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을 먼저 내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지어야 할 집을 다시 짓기를 바랍니다성탄의 기쁜 소식이 우리들의 아픔을 씻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땅 곳곳에서 자기 몸을 내어주고 있는 고난 받는 민중들에게도 하늘의 보살핌이 있기를 빕니다. 침묵합시다.

 

[파송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자기 몸을 내어주어 평화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오늘도 자기 몸을 내어주는 작은 그리스도들이 있기에 우리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삶에 평화를 심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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