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동창회 56] 성차별은 반(反)예수, 반(反)성서, 반인륜(反人倫)의 추악한 죄악이다!

by 최성철 posted Mar 02, 2020 Views 167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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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일은 세계 여성의 이다. 1908 3 8 미국 뉴욕에서 1 5 여성노동자들이 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많은 여성노동자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된 사건을 항의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자고 시위했다. 이날을 기념하자는 제안이 1911년부터 매년 이날을 여성의 날로 정하게 되었다. 이후 유엔이1975년을 여성의 정하고, 1977년부터는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적으로 기념했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남녀평등 민주주의 실천 가장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2차 대전 중에 일본 제국의 식민지에서 일본 군인들의 위안부 인간 이하의 성적학대를 받았던 여성들의 고통과 절망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게 일어나고 있다. 여성의 이란 결국 여성의 노동조건 개선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여성의 전반적인 모든 문제, 특히 낙태문제 남녀평등 임금고용기회 가장 초점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장벽은 여전히 심각한데, 부끄럽게도 OECD(선진국들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 29 나라 가운데 최하위이다.

 

또한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미투 운동(#MeMoo Movement, 나도 당했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 쉬쉬하면서 수면 밑으로 잠겼던 것이 여성들의 미투운동으로 남성의 성폭력 의식 자체를 비판하는 사회개혁으로 번져가고 있다. 다시 말해 여성억압이나 폭력은 가정과 사회와 종교에서 철저하게 근절되어야 하며, 혁명적인 의식으로 성차별 완벽하게 추방해야 한다. 남녀평등 문제는 2 민주화 운동이며, 남녀평등 민주화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 성차별주의가 가장 만연한 기관 중의 하나가 기독교 교회.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에 대한 무지함편견은 교회의 신성한 전통이었다. 성차별은 하느님이 명령한 것이었고, 아무도 논쟁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 성서문자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성차별은 정당화되었다. 성차별은 교회 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매우 파괴적이다. 또한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형성된 성차별에 대한 고정관념은 종교 기관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심지어 기독교인 가정에서도 당연시되었으며, 여성의 편을 드는 것은 비종교적인 세속 사회의 짓거리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정신에 따르면 성차별은 종교적으로 죄악이고, 사회적으로 생존의 두려움 이기심 병적 증상이다. 불행하게도 소위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는 교회성차별을 달콤한 경건의 미사여구 안에 숨기고, 가정과 사회를 분열시키는 부정적이고 이중적인 비극을 초래했다. 아직도 가부장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성서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하며, 성차별의 근원적인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 성차별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못하고, 뻔뻔스럽게 여성들의 존엄성을 폄하하는 양심불량의 교회는 우리의 사회에서 대단히 위험한 존재이며, 밝은 미래의 장애물이다. 21세기에 여성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여성자유권리를 박탈하는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믿음체계에 대한 회의허무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성차별하느님의 뜻으로 왜곡하는 교회 신학에 대한 회의적인 허무와 더불어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신학에 대한 인도주의적 희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온갖 차별을 믿음으로 합리화하는 신학과 교회를 해체하고, 우주적인 예수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어야 한다. 교회 기독교가 온갖 차별에 대한 회의주의를 정죄하고, 자신의 이분법적 신학을 정당화하는 근본적인 원흉은 플라톤이원론이다.

 

플라톤질료형상은 존재의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선언할만큼 무척이나 이원론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은 교회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분법적 성차별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들은 상호의존관계를 맺고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는 한 몸이라는 21세기의 우주진화 세계관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고대 삼층 세계관이원론적 사고 즉 신성한 것과 속된 것, 거룩한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거룩한 하느님과 죄 많은 인간, 내부인과 이방인, 은총과 징벌, 구원과 저주, 천국과 지옥, 그리고 특히 남성 여성의 차별적 대조를 믿음으로 합리화한다. 플라톤주의에 악영향을 받은 교회는 육체, 욕망, 성을 매우 죄악시하며, 특히 여성의 육체와 욕망과 성을 더욱 죄악시한다.  

 

오늘날 예수의 우주적인 정신을 거부하고, 우월적인 차별주의배타주의를 합리화하는 교회 기독교는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부족적인 세계관이분법적인 가치관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회 기독교는 태초에 세계가 일련의 차별분별의 행위들에 의해 창조된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성서의 창세기에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동물과 식물, 남자 여자에 대한 기록을 차별의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를 먼저 창조하고, 여자는 남자의 일부분으로 창조되었다는 기록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성서근본주의자들에게 남자는 우선적이고 여자는 부차적이라는 성차별의 규범이 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서가 기록될 당시에 이미 플라톤이원론적 사상에 매우 심각하게 영향을 받은 고대 사회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차별 분리의 개념에 기초했다.

 

삼층 세계관 전통적인 사회는 우주를 구성하는 개체들은 대칭적인 두 가지 즉 우선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대조된다는 차별과 분리에 사로잡혀있다. 이것은 또한 전통적 가치를 창조하여 이것에 기초하는 불평등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남성여성성적인 관계도 원래의 불평등하고 대칭적인 둘이 서로 반대를 이루는 구조로서, 모든 문화세계관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다. 다시 말해, 경계선을 긋고, 우선순위차별성이나, 좌와 우 사이의 가치차별성을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경계의 이쪽 편에 있는 것과 저쪽 편에 있는 것 사이의 차별성을 드러내었다. 이처럼 세계는 불평등한 대칭적 둘이 서로 반대를 이루는 구조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창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항상 패배자, 2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순서매기기와 편애가 없이는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혼돈(chaos)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평등이 강요되었으며, 불평등이 없으면 현실이란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한 불평등한 차별을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하느님의 뜻으로 합리화한다.

 

오늘날 주류 사회의 교육과 철학과 예술과 종교와 과학의 기초가 되는 138억 년우주 역사에 따르면 큰 전체로서의 우주와 우주를 구성하는 작은 전체들개체들은 모두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다. 우주가 등장할 때 우선순위상하계층경계선은 없었으며, 지금도 없다. 다만 우주세계는 어느 한 개체도 무시되거나 제거될 수 없는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다. 공개적 계시(Public Revelation)에 대해 주류 과학계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사회에서 삼층 세계관적 고대 사회의 세계관 가치관의 기초가 되었던 성차별주의는 폐기처분해야하는 낡고 추악한 흉물이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사회는 성차별을 하지 않는 인간 심리가 절실히 필요하며, 성차별 없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플라톤이원론은 서양 철학의 주요 전통과 특히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는 교회 기독교신학적 주요 전통차별주의에 확고하게 바쳐졌다. 따라서 오늘 기독교인들은 매우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계상에 헌신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주진화 세계관을 일상생활화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플라톤으로부터 멀어졌으며, 플라톤이 주입해놓은 거대한 이원론적 반대구조를 초월하거나, 폐지 혹은 해체했다. 따라서 현대철학과 함께 세속 문화는 매우 성공적으로 차별에 철저히 반대하는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해왔다. 교회 기독교는 차별에 대해 의심하고 솔직하게 회의를 느끼는 것을 매우 나쁜 것으로 간주했다. 오직 교회 가부장적인 권위 교리 순종하는 믿음만이 우리를 거기서 구원할 수 있으며, 오직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만이 의심회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 그러나 신학의 핵심을 이분법적인 차별행위에 의해 생겨난 매우 차별화된 신성한 우주론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일이다.

 

예수정신은 불평등한 차별과 이분법적 분리와 폭력적인 탄압을 반대하고, 평등과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여성들을 부정적이고 불결한 존재로 취급하는 성전종교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제국주의 사회에서 성차별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예수가 당시의 철저한 가부장적 문화 이원론적 전통에서 여성들을 제자로 삼은 것은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차별과 분리는 구원의 길이 아니며, 종교적 행복도 아니며, 회칠한 무덤처럼 거짓과 은폐와 가식이라고 규탄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던 새로운 세계의 비전 즉 모든 차별들이 사라진 하느님 나라를 긴급하게 건설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가부장적인 교회 기독교를 해체하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 정신을 살아내야 한다.

                                   

예수는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과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종교체제와 믿음체계 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가르쳤고, 자신이 몸소 실천하고 살았다. 철저한 ()차별예수의 정신 핵심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정신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교회는 더 이상 그 자체보다 더 높고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채색된 베일에 은폐되어 있다. 교회는 더 이상 참된 교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분법적 차별과 분리를 믿음으로 합리화하는 교회는  그 자체가 스스로 참된 교회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이 삶의 모든 영역의 기초가 되고 있는 과학시대에 온갖 차별들 분리를 추방하는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예수의 정신에 따라서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분투하고 있는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인도주의적 윤리관을 신앙의 핵심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은 성차별을 철저히 반대하고, 여성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 예수는 여성의 자율적인 선택과 권리를 종교의 전통 보다 더 소중하다고 가르치고 자신이 몸소 살아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솔직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차별()예수, ()성서, 반인륜(反人倫)의 추악한 죄악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