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주일 평신도 강단교류 (합 1:2~4, 마 2:13-15)
2020.12.13. 대림절 셋째 주일, 인권주일
[이집트로 피신하여라(마 2:13~15) / 문경란 님(새길교회)]
안녕하세요. 향린교회 자매형제님 반갑습니다. 새길교회 자매형제님들 또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많이 보고 싶습니다. 향린과 새길이 강단교류의 일환으로 드리는 오늘 예배에서 말씀증거를 하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향린교회는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으며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일에 앞장서 온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새길교회 자매형제들에게는, 코로나로 인해 예배드릴 곳이 마땅치 않게 된 새길에,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뜻 공간을 빌려주신, 품이 넉넉한 교회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말씀증거에 앞서 김희헌 목사님을 비롯한 향린교회 전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탄절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에는 가톨릭 성당이 있는데요, 해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성당 마당 한쪽에는 아기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모습이 재현됩니다. 별들이 반짝이고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아기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동방박사 세 분의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 너무 성스럽고 신비로우며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절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재현한 모습에 자꾸 딴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마구간입니다. 로마황제가 이스라엘 식민지 백성에게 호적신고를 하도록 하자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 또한 할 수없이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급기야 그 곳에서 마리아가 아기를 낳게 됐지만 방을 구하지 못해 마구간에서 간신히 출산을 하게됩니다. 강보에 쌓인 아기는 말밥통인 말구유에 눕혀지고요. 누구나 잘 아는 얘기지요.
저는 한국에서 마구간을 본 적이 없어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마구간의 구석구석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한 곳이라 해도 깊이 말똥 냄새가 깊이 배여 있고요. 더러 오물이 묻어있는 바닥과 말여물이 쌓여있는 마구간은 아무리 봐도 성당이나 교회에서 재현해놓은 성탄절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이 달랐습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매우 춥고 배고팠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젖이나 제대로 나왔을까요? 산후조리는커녕 따뜻하고 청결한 곳에 누워보지도 못했을 마리아를 생각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적절한 표현이 잘 안 떠오릅니다. 산모와 아기를 돌봐야하는 요셉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안쓰럽고 아팠을까요?
그런데 아기예수 가족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헤롯왕은 어린 아기 예수를 죽이려합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이 매우 당황합니다. “뭐라고? 내가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고?”
불안하고 초조해진 헤롯왕은 박사들에게 아기를 경배한 뒤 자기에게 아기가 태어난 곳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 박사는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 경배한 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갑니다. 꿈에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천사는 이번에는 요셉의 꿈에 나타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대로입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고 합니다. 요셉가족은 밤사이에 길고 험난한 피난길에 오릅니다. 헤롯은 박사들이 자기에게 아기가 태어난 곳을 알려주지 않고 돌아간 것을 알고는 진노한 뒤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를 모조리 죽입니다. 잔인한 대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순진무구한 아기들의 피가 솟구치고 울부짖는 부모들의 통곡을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를 대신해 죽은 어린이들의 순교를 기념합니다. 5세기경부터 12월 28일을 ‘무죄한 성인들’이라는 어린이순교축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말씀증거를 준비하면서 이 어린이 순교자를 노래하는 ‘코벤트리 캐롤’을 웨스트민스트 합창단의 노래로 들어보았습니다. 희생당한 아기들이 편히 잠들기를 애통한 마음으로 기원하는 자장가였는데 그 애절한 곡과 가사가 제 가슴 속 깊은 곳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2017년 봄에 <우리 곁의 난민>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을 인터뷰해 난민이 되게 된 사연과, 한국 땅에서 겪는 궁핍과 배제, 차별과 혐오, 그리고 목소리 없는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 권리를 가질 권리조차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난민들의 삶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난민들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 곁에 난민이 있는 줄도 모르는 이 땅의 이웃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지 약 10년 만에 한 작업입니다.
난민은 전쟁이나 정치적 박해, 인종, 국적, 종교, 천재지변 등과 같은 이유로 자기가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삶의 터전이 뿌리 뽑힌 사람들이지요.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나라에서 박해를 받는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길이 없어 다른 나라에 보호를 요청해 받아들여진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을 만나면서 저는 이집트로 피신하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떠올렸습니다. 아기 예수는 난민예수였고 마리아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우리 곁으로 피난 온 이 땅의 난민여성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이집트로 향한 아기예수 일가는 생명과 안전을 갈구하는 절박한 난민가족이었습니다.
2017년 성탄절에 이태리 북부 볼로냐 근처의 카스테나소라는 소도시의 광장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은 채 고무보트에 앉아있는 성탄절 장식물이 세워졌습니다. 이 고무 보트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널 때 사용하는 배를 상징한 것입니다. 또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교회에는 아기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이 격리된 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갇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조각상이 전시됐습니다. 두 곳 모두 난민예수가족의 모습을 통해 난민에 인색한 자국 정부와 시민들을 비판한 것이지요.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식으로 난민을 받기 시작한 게 1994년부터 인데요. 올 5월까지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약 7만 명에 이릅니다. 이 중 약 3만 명을 심사한 결과,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1053명에 불과합니다. 난민인정률로 따지면 고작 3.5%입니다. 전세계 난민인정률이 40%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특히 지난 2018년 제주도에 5백여 명의 예멘인이 전쟁을 피해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그 때 70만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난민신청허가를 폐지하라고 청와대에 청원을 했습니다. 이 같은 기류에는 무슬림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일부 기독교인들이 일조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난민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면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이집트로 향하는 아기 예수 일가의 피란길을 떠올려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아기 예수가족이 피신해 있었다는 이집트의 성 세르기우스 교회(구 카이로지역)까지는 직선거리로 35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사막인데다 직선으로 난 길이 아니지요. 걸어서 또는 낙타를 타고 가도 훨씬 멀었을 것입니다. 갓난아기를 안고 산후조리도 못한 산모가 움직여야 했으니 그 고생이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떠난 것도 아니고 호적신고를 하러 타지에 왔다가 또 다시 피란을 가게 됐으니 돈도, 먹을 것도, 옷도 제대로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아기 예수 일가족이 4년 내내 당나귀를 타고 이집트의 30여 곳 이상을 다녔는데 그 고된 여정이 2000Km 쯤 된다고 합니다. 그 여정을 지도로 그려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짐작컨대 이방인 가족을 쉽사리 받아주지 않으니 쫓기고 쫓긴 끝에 겨우 성 세르기우스 교회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듯합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의 삶 또한 대체로 고달프고 불안하고 불안정합니다. 고국에서 받은 박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 그리고 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무기력과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은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는데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국인으로부터 당하는 인종차별도 매우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한국인과의 교류나 소통은 거의 없었습니다. 언어 문제도 크지만 집 구조 자체가 아예 다른 출입문을 이용하도록 해서 한국사람 들과 마주칠 기회자체가 없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단절과 배제의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을 못가고 발을 동동 구르다 난민지원 단체나 활동가의 도움으로 겨우 독지가를 찾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례는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난민들의 일상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초창기 공적마스크를 약국에서 살 때 난민은 마스크 하나 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에 온지 6개월 미만은 보험가입 자체가 안 되고 그 이후라 해도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더욱이 농어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나 난민의 경우는 판매처를 알기도 어렵고 갈 시간도 없어 마스크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정도, 지역 보건소와 마스크 판매처, 개학연기, 돌봄대책 등 일상을 살아내는데 필수불가결한 사항을 알기도 어렵습니다.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고, 안부를 묻거나 돌봐줄 이웃 하나 제대로 없는 이국땅에서 정보도 없고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불안감은 공포로 나아가고 여기에 차별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상처가 커지고 불안감은 병이 됩니다.
코로나 사태 초창기에는 중국 국적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가 심각했습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인천에서 한국인 남성 두 명이 길가는 중동지역 출신 이주민 부부에게 “야, 코로나”라고 소리를 지르고 조롱하며, 항의하는 피해자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봉변을 당한 피해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수치심, 공포를 상상해보면 저 또한 두렵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한국 교회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느라 분주한 듯합니다. 일부 교회가 대면예배를 강행하면서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목회와 예배, 신앙의 길을 모색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단순히 전염병의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사적 대전환의 분기점이 된다고 진단하는 글을 제법 봤습니다. 탐욕과 각자도생의 삶을 내려놓고 공생하는 삶, 자연과의 공존과 느린 일상을 정착시키는 삶, 공공성의 회복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여러 신학자들의 글을 보았습니다. 공감하면서도 제 마음 한편에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 솔솔 피어났습니다.
뉴노멀의 삶을 함께 논의하고 함께 살아갈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입니다. 대면예배를 함께 보던 ‘우리’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고 디지털콘택트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자고 했을 때 과연 그 연결 네트워크 안에 포함된 이들은 누구일까요? 공존하자고 하는 그 대상 안에 포함된 사람은 그야말로 ‘우리끼리’만은 아닐까요? 이집트 땅의 아기예수 가족과 같은 난민이나 이주자 가족은 ‘우리’ 안에 포함된 존재들일까요? 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평소에도 힘들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우리도 힘든데 난민까지 어떻게 돌보냐”며, 난민과 ‘우리’를 구분하고, 난민을 한국사회에서 배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더 커져 더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오늘은 인권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인권주일입니다. 인간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인권입니다. 인권이 보장되면 인간은 자립적인 존재로 최소한의 존엄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권리가 없는 사람은 이리 저리 떠밀리고 타인의 너그러움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출신 국가로부터도, 난민 신청을 거부한 나라로부터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난민 불인정자는 무력하고 굴욕적이며 종속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은 스스로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이자 동시에 모든 타자가 평등하게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타자를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데서 권리의 불평등과 비인간적 삶이 비롯됩니다.
난민들에게 관대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난민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동정하면서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됩니다. 도움을 주고 자비를 베풀지언정 난민들을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며, 결코 ‘우리’와는 다른 존재, ‘우리’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존재로 선을 그어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동등하게 존엄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여기고, 약자와 소수자가 존엄한 존재로 살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서, 그 사회 전체 구성원의 인권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나의 인권은 타인의 인권이고, 타인의 인권은 곧 나의 인권입니다. 인권의 선언은 동시에 의무의 선언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던 주님의 목소리는 난민의 존엄성과 인권을 누가 보장해 줄 것이냐고 묻는 주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없고 고통스런,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가장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아픔을 겪은 난민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난민은 어린 예수와 다를 바 없습니다. 때문에 난민을 환대하고 난민과 연대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도 그렇거니와,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도 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난민과, 그리고 난민과 같은 작은 자들이 공존과 공생의 삶 중심에 위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난민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한국 기독교 신앙의 푯대가 되길 소망합니다.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어느 누구도 난민이 되고 싶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고 보면 난민은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한 때는 난민이었습니다.
난민을 불쌍한 존재로 간주하지 말고,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여기고,
공감과 연대의 정신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의 난민을 불온한 눈으로 보지 않고 환대로 맞아들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2천 년 전 난민으로 살았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회구조악과 한국인권의 흑역사(합 1:2~4) / 이영일 교우]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제3회 UN 총회에서 채택된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2차세계대전 전야 전세계에 만연됐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의 취지를 구체화한 것으로, 1948년 12월 10일 제3회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 구조악 : 민족사의 주요 근현대사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배경과 동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시대 모순에 따른 시대 정신의 발현으로 식민지와 민족 해방, 분단과 통일, 독재와 민주화가 그것입니다. 세계사적 맥락으로 접근하면 식민지와 제국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 냉전체제 해체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일방적인 질서 재편 등의 사회 구조적 모순과 변혁이 상충 배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지난 125년 동안의 민족사적 배경과 동기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모순을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구조악의 개념으로 도입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내면화 된 내재악 뿐 아니라 거대한 사회구조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전쟁과 평화, 부와 빈곤 등의 문제를 교회도 자신의 문제로 할 것과, 타종교·종파·사상에 배타적이지 않을 것 등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 영향을 끼쳐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는 한 개인이 아무리 신실하고 성실한 삶을 추구하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거대한 사회모순과 구조적 악에 의해 개인의 운명이 규정될 수 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국가폭력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고 재현되어 왔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 항일의병 – 3.1혁명 – 6.10만세운동 – 광주학생운동 – 대구10월항쟁 – 제주4.3항쟁 – 여순항쟁 – 4.19혁명 – 부마항쟁 – 5.18광주민중항쟁 - 6월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 촛불항쟁 등의 민간인집단학살과 민주화운동과정에서의 의문사 그리고 최근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의 강경 진압사례는 국가폭력이 강도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100만명 민간인학살, 베트남 양민학살 등도 있었습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이 땅의 백성들은 이미 전제군주 체제와 부조리한 신분제도에 의한 억압과 차별에 끊임없이 짓눌리고 고통 당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과 평등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민중은 조선왕조의 뒤를 이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한 침략과 수탈과 차별에 대한 저항에 동참하며 국가 권력의 불의와 폭력에 불복종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정의롭고 고귀한 가치임을 학습해 나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국가폭력은 한국사회 인권문제의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형태의 반인권적인 사례가 언급되고 있지만, 국가가 국민 주체에게 저지른 국가폭력, 그리고 정치권력에 의해 조장된 대량학살이이야 말로 20세기와 21세기의 문명을 야만으로 떨어뜨린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 고귀한 인권이 이렇듯 파리 목숨 취급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천부적인 인권의 궁극은 인간의 삶과 죽음입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막는 일이야말로 노동인권, 여성인권, 소수자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첫 걸음이고, 이 첫 걸음을 회피하는 모든 인권 운동이나 인권 담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 인권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국가 도덕성과 사회 건강성의 회복을 위해, 역사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 다변화 된 인권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지기 위해서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한 인간의 내면 속 혼돈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종교적인 서정으로 풀어냈다는‘가시나무’ 노래 가사입니다.
선지자 하박국(1:2~4)의 통곡의 기도입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 사회악 : 한국 현대사의 정치공안 조작사건
인도의 사상가인 마하트마 간디의 7가지 사회악
원칙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 법치를 무시한 제멋대로의 권모술수 정치
노동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 땀과 노력없이 재산획득, 부동산차익, 금융산업
양심없는 향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 쾌락유흥지, 고가사치품, 도박마약 등
품성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 양심가치판단 없는 지식인, 교육, 언론
도의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 … 유해식품, 모조품, 무기판매상, 매점매석
인간성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 대량살상무기 제작, 유전자조작, 낙태수술
희생없는 종교(Religion without Sacrifice) … 봉사없는 물량성장, 교조주의, 종교갈등 전쟁
오늘은 마하트마 간디의 7가지 사회악 중에 원칙없는 정치, 품성없는 지식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원칙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란 법치를 무시한 제멋대로의 권모술수 정치를 말하며, 품성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이란 양심가치판단 없는 지식인, 교육, 언론을 말합니다. 또한 이중에서도 윤석열의 검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한국 현대사의 정치공안 조작사건을 개략적으로 논하면서 사회악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민주화운동사는 불행하게도 정치공안사건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60여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고귀한 자기 생명까지 내던진 수 많은 민주 열사들이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그들 선진들이 목숨을 담보로 쟁취하여 남겨준 민주화라는 유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 본다면,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의 중대한 인권침해’에서의 인간의 회복을 외치는 끈질긴 투쟁이 있어온 것입니다. 이때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인권유린과 인권침해가 뒤 따랐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한국의 역사를 빗대어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의 라틴계’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상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저항운동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계사에 자랑할 만한 민주화를 쟁취했습니다. 최근 동아시아 각국의 민주화운동을 보면서 새삼 민주화가 얼마나 험난한 고난의 여정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와 인권, 인권의 기본토대는 민주화입니다. 민주화없이 인권은 없으며 인권은 이제 시대의 인권를 넘어 세대의 인권으로 그 영역을 다변화하여 가고 있습니다. 세대로 확대된 인권은 우리를 잠시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과도기일 것입니다. 이른바 보편적 인권이 자리잡는 과정입니다. 실제에 있어 어린이, 청소년, 여성, 소수자, 다문화, 난민, 탈북민, 장애인, 노인 등 복지의 모든 부분이 사실상 인권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정치공안조작사건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렇듯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군사정권과의 싸움에서 고문 투옥되고 때로는 사형이나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30여년 간의 혹독한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난 30여년 간 800여명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희생자는 1960년 4·19와 1980년 광주항쟁에서 사망한 자를 비롯해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사형 암살 고문당한 자, 그리고 분신 투신 등으로 저항하다 사망한 자 등 입니다.
이 많은 인사들이 전쟁도 아닌 평시 상황에서 잘못된 정치, 폭력적인 권력으로 인해 희생된 것입니다. 문명사회의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살인 폭력 기구로서의 군대와 경찰조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 사찰기관의 조직적인 관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희생을 무릅쓴 투쟁의 결과로 마침내 군사정권을 축출하고 민간인 정부를 성립시켰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은 정치공안사건과 맞물려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한 정치공안사건은 정치, 사법, 언론, 노동, 학원, 간첩 6개 분야의 거의 전 사회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바, 이는 한국 현대사가 곧 중앙정보부를 비롯해 안전기획부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악의 제도적인 사회악을 검찰이 담당해 왔던 것입니다. 1948년 8월 검찰청법 제정에 따라 검찰청 안에 공안검사가 생긴 이래, 공안검사는 국가의 안위나 공공의 안녕보다는 정권 수호의 앞잡이 역할을 해 왔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권력의 시녀요, 주구였던 검찰이 언제 국민의 편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까?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법조계의 갈등과 충돌의 문제와 사건의 본질은 검찰개혁인 것입니다. 검찰이란? 범죄를 수사하고 증거를 모으고 조사하여 사정을 밝히는 기관입니다. 쉽게 말하여 죄를 만드는 기관인 것입니다. 이들은 남북분단문제, 코로나19, 세계기후재앙 이러한 정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검찰관료들을 위한 조직 이기주의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불교 등의 종교계와 영호남, 충청의 시민사회, 학계 문화예술계 등이 ‘검찰개혁은 역사의 준엄한 명령이다.’면서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들불이 횃불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법조계 갈등과 충돌의 문제와 사건의 본질은 검찰개혁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악과 사회악에 대해 김종수 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교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사건들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가 구조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구조가 잘못되었다고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교우들이 교회의 현실참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또 ‘굳이 교회가 현실참여 또는 현실정치참여를 해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교회는 단연코 현실참여를 해야 합니다. 구조적인 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필요 없고 교회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권력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을 때 단호하게 말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 삶의 질, 생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후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신앙은 현재 사회문제와 구조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지 살피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해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봉사한다는 교회의 사명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신앙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분명하게 발언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체계적 공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가짜뉴스 등 매체의 홍수 속에 상황 판단이 혼란스러워질 때에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히려 사건의 본질,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물음과 이에 따른 시대과제와 시대정신이 무엇인가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즉자적 민중(객관적으로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는 이들 - 의식화되지 못한 민중)일 것인가, 대자적 민중(자기 잠재력과 저력을 객관화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 -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민중)일 것인가, 즉자적 기독인일 것인가, 대자적 기독인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교리의 지침을 통해 믿음의 선진, 선지자들처럼 인간해방을 위해 시대정신과 시대과제에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평신도교회를 지향하는 향린교회와 새길교회는 다 같이 만인제사장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새길교회와 향린교회는 평신도교회를 지향하는 성격을 같이하는 성격공동체 교회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따른다는 것이요 따른다는 것은 행함과 실천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 교우가 깨어 일어나 대자적 민중, 대자적 기독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새번역 이사야서 2장1~5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