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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 | 김희헌 | 2020-12-25

by 김희헌 posted Dec 25, 2020 Views 23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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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12-25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 (52:7-10, 1:1-4, 1:1-14)

2020.12.25. 성탄절

 

[성탄, 예언의 꿈에서 비롯된 개벽 선언]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아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이 노래는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고통과 슬픔을 견디면서 꿋꿋하게 나아가는 마음을 절제된 표현으로 그려낸 이 노래는 원래 전태일 추모노래극(불꽃)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처음 불린 장소는 당시 도시산업선교운동에 앞장선  영등포에 있는 성문밖교회였습니다.

저도 이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나중에 성서의 예언서를 연구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첫 번째 예언서인 이사야서는 모두 66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책인데요, 읽다 보면 계속 반복되는 문구를 만나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바이욤 하후’(בַּיּ֣וֹם הַה֔וּא), 한글성서는 그날이 오면이라고 번역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기원전 8세기 말 위기의 시대를 살던 예언자 이사야가 사용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이 표현과 함께 정의와 평화를 향한 거대한 상상력을 펼칩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317절까지 모두 마흔한 번 반복되던 이 말이 갑자기 끊어집니다. 그때는 나라를 잃고,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겪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렇게 20장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던 그 표현이 되살아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526절에서입니다.

이렇게 다시 예언자적 상상력을 펼친 사람은 2이사야라는 별명을 가진 무명 예언자입니다. 그는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는 도저히 꿀 수 없는 꿈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그의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모두 기다리던 소식을 안고 달음질치며 산등성이를 넘어오던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7절은 그가 전하는 소식을 두 개의 명사로 표현합니다. ‘샬롬(שָׁל֛וֹם)예슈아(יְשׁוּעָ֑ה)입니다. ‘평화가 온다, 구원이 온다!’ 이렇게 외치며 달려오는 그 사람을 향해,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도 화답하며 외칩니다. “황폐한 곳들아,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고 속량하셨다.” (9)

이사야의 이 외침은 절망 깊던 그 시대에 어떻게 들렸을까요? 기약 없는 허망한 꿈이었을까요? 기독교 교회는 이 본문을 성탄절에 주로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성탄은 과연 어떤 사람들에게 평화와 구원의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의 축제가 된 성탄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기독교가 가진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오늘 예수가 오신다면 어디로 오실까? 최근 뉴스를 통해 알려진 가슴 시린 장소가 있습니다. 스물다섯에 한국에 와서 오 년간 농업노동자로 일하면서 병을 얻고 추운 겨울밤 불 꺼진 비닐하우스에서 죽음을 맞은 캄보디아 여성 청년이 누운 포천의 어느 들판, 죽음의 의미도 모르는 발달 장애를 가진 삼십 대 방배동 최씨가 어머니 시신을 이불과 테이프로 감아놓고 외로운 팻말 하나 의지하여 도움을 구했던 쓸쓸한 이수역 12번 출구, 이곳들은 우리가 인간으로 사는데 필요한 것이 자신의 울타리보다 더 넓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성탄절 본문입니다. 이 본문이 얼마나 파격적인 말씀인지 알기 위해서는 1절과 14절을 이어서 읽어야 합니다. 1절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요한은 이렇게 자신의 복음서를 당시에 풍미한 로고스 철학에 빗대어 시작하지만, 14절에서 그것을 뒤엎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말합니다.

당시의 철학은 말씀로고스’(Λόγος)육신싸르크스’(σρξ)와 구분하고, ‘말씀은 고결하지만 육신은 천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육신의 감옥을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정반대의 선언을 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스스로 비천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요, 메시아가 태어나는 자리는 싸르크스라고 하는 낮고 천한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의 민중사상이요, ‘개벽 선언입니다. (안병무, 역사와 해석, 281).

요한복음의 성육신 사상에 담긴 이 혁명적인 이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성서의 임마누엘사상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여기서 물어야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이런 개벽 선언을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개벽 선언을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싸르크스가 된 예수, 그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가며, 그의 말씀을 자신의 육신에 녹여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예수는 아픔의 세계를 보듬고 인간의 지평을 확대하는 사람들에게 올 것입니다. 갈등의 세계에 평화를 심는 사람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적()에게 두지 않고 원수까지 품는 사람들, 사랑에 이끌려 자신을 낮은 곳으로 밀고 가는 사람들, 바로 그들을 통해서 오늘의 그리스도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절 우리의 묵상입니다. 최근 태어난 시 한 편 나누며 하늘뜻펴기를 갈음할까 합니다. 요한복음의 성육신 사상을 담은 우리가 예수다라는 시입니다.

 

[(), “우리가 예수다,” 정영훈]

우리가 예수다.

예수만 예수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다.

 

마구간 아기 예수

십자가 매달린 청년 예수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 대부분

바닥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2천여 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

기적이 아니라도

포도주, 막걸리

몇 병이든

모자라지 않게 내올 수 있고

 

5천 명 오병이어보다

5백만 5천만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쯤 넘칠 수 있지 않은가.

 

치유하는 예수의 연민

인간 사랑이

수많은 병, 환자,

귀신 들린 신경증 정신병

치료하는 의술로

기적 되지 않았던가.

 

우리가 예수다

예수라야 한다.

 

세상에 창궐한 코비드19

세계만민이 이겨내야 하고

추위 속 굶주리는 이

따뜻이 먹여야 하리.

 

이 땅의 하느님나라,

사랑과 정의 인간 사회 해치는

부정과 불의, 불공정

검권, 판권, 밤의 대통령...

물리쳐야 하리.

 

수십 년 억울한 죽음들

되살려야 하고

평생의 부당한 피해

보상받아야 하리.

 

청와대 앞, 국회 앞,

공장 등지에서

 

아직도

일하다 죽는 이 없도록

사주 기업주 엄벌법,

엄동설한 중

제정 시행 투쟁하는

어머니, 아버지, 젊은이가

바로 예수다.

 

멀쩡한 사람 죽게 하는 세력,

폭력과 모욕, 사법살인 등 모든 죄.

착취와 차별과 불평등

분단과 적대와 분란

그 악의 편에 선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것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시대 예수다.

빛나지 않아도

소금처럼 녹아내려도

그렇게 역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활이다.

 

예수는 어둠 속의 큰 별

우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별

우리가 예수다.

우리 모두가 예수라야 한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지친 이 땅에 전할 평화의 소식을 위해 산을 넘어 달려가는 발이 됩시다. 구원의 길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맛보고, 아기 예수의 평화를 찬양합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셨습니다. 사랑이 이기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기쁨과 보람을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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