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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 김희헌 | 2021-05-02

by 김희헌 posted May 02, 2021 Views 18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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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05-02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8:26-40, 요일 4:7-21, 15:1-8)

부활절 다섯째 주일, 어린이·청소년 주일 (210502)

 

[진정성의 시대는 지났을까?]

5월은 가정의 달로서 첫째 주일은 어린이·청소년 주일입니다. 성서에서 어린이는 맑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가리켜서 자기를 낮추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18:4), 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그 나라의 주인공으로 묘사합니다. (10:14-15)

어린 자녀를 기르며 매일 씨름하는 분들은 예수님이 총각이라서 아이들을 잘 모르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낭만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하나님 나라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이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 자녀들이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문제로 골똘히 생각하며 지낸다면, 그것이 더 염려할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성서의 말씀은 어린이의 심리적 특징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영적 의미에 관한 묘사일 것입니다. 젊은 영혼은 개인의 이기적 만족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열려 있습니다. 그 마음이 닫혀버리면 역사까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의 위기는 GDP의 감소나 보수 세력의 집권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위기는 꿈을 기르는 사회적 못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역사의 꿈과 행진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면, 그것은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그런 비극은 그들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 앞에 펼쳐진 세계에 대한 실망과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불평등한 세계가 바꿀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땀 흘리는 사람이 돈의 위엄 앞에서 굴욕당하는 일이 반복될 때, 젊은 영혼은 좌절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랑과 진리를 불신하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다면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모범적인 국가로 칭찬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불안과 위기가 극단에 이르러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이 공존합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사회적 박탈감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무언가 뒤죽박죽인 것 같은 우리 사회의 양면적인 모습은 터무니없는 낙관과 함께 바닥을 알 수 없는 비관을 낳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한 사회학자의 글은 우리 사회를 읽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적인 제도의 변화보다 마음의 지형이 변한 것에 착안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가 펼친 주장의 요지는, 한국사회가 1997IMF 외환위기 사태를 기준으로 하여, ‘진정성의 시대를 지나고 생존의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17-20)

진정성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공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사회적인 모순과 억압에 저항하는 것을 삶의 미덕으로 알기 때문에, 남을 억누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남을 제치고 나가는 것은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통해 재편성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그런 마음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토대를 잃었습니다. 사회는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의 정글로 변하게 되었고, 거기서 사람들의 절박한 관심은 진정성이 아니라 생존에 두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생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설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생존의 위기 속에서 살아나온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는 사회적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개인의 성찰은 성공을 위한 재테크와 자기계발이라는 도구적인 영역에서만 진행됩니다.

사회학자는 이렇게 진정성을 잃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진정성의 시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성에는 그림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이란 강력한 도덕적 열망을 갖고 진리를 순수하게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인간 삶의 불가피한 부족을 용납하지 않는 모습을 지닙니다. 타인을 향해서는 진리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나타나며, 자신의 한계상황에서는 자기 파괴나 급격한 타락의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성의 시대는 열사의 시대이자 전향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분명히 그런 시대를 지났습니다. 진정성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시대 부적응자로 취급됩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생존만을 위해서 진정성 없이 살 수는 없는 법이니, 대부분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사회적 삶만이 아니라 종교적 삶 또한 그렇습니다.

진정성의 위기를 겪는 시대를 반영하여 교회도 깊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가중된 교회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 조사를 보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 비율은 3.6%에 불과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국회보다 낮은 한국교회 신뢰도,” 2021426)

교회가 진리와 사랑을 말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관습은 낡았고, 과거의 율법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 힘을 잃었습니다. 교회가 무신론적인 이성의 비판적 칼날에 의해 해체되었다기보다는, 자기 안의 질곡과 편견으로 인해 자멸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신앙공동체는 자신이 가는 길이 무얼 향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종교의 소멸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교란 인간 영혼에 무늬처럼 새겨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새로운 믿음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꿈이 무얼 위해 바쳐지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150년 전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가 지성과 도덕에서 바닥을 칠 때,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자유를 느끼고 있는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유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보라고 말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중에서)

 

[예언과 믿음의 만남 / 사도행전 826~40]

사도행전은 신앙공동체의 실험에서 생겨난 수많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거기에는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동체가 자라고 구성원들이 많아지면서 갈등과 긴장 관계가 생겼습니다. 전에는 없었던 내부살림살이를 담당하고 교회 구성원을 돌봐야 할 지도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공동체를 역동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리더십을 새롭게 짜야 했습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 외에 새로운 일꾼 일곱을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공식적인 역할에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맡고, 교회 운영은 일곱 명의 일꾼이 맡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란 것이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았습니다.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일곱 명의 일꾼은 살림살이만 맡은 것이 아니고, 사도들 못지않게 선교의 사명을 갖고 파송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이야기를, 8장은 빌립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데반의 활동이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빌립은 밖으로 선교영역을 넓혀갑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원수처럼 여기던 북쪽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활동으로 인해 사마리아에 복음의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8:8)

오늘 본문에서 빌립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번에는 예루살렘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시련을 겪고 있는 가자지구로, 당시에는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빌립은 거기서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에티오피아 왕실의 관리를 만납니다. 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오늘 본문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사도행전의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인, 예수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적대자였던 사울의 회심 사건을 다룹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건 앞에서, 예수 운동이 지향하는 성격을 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운동이 단순한 종교적인 열광주의가 아니라, 예언 정신과 만나는 사건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언과 믿음이 만나는 사건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 만남은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그 뜻을 알고자 하는 에디오피아 관리의 갈증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읽은 내용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종의 노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포로기의 고통을 거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8:32-33)

이 내용은 수난당하는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오면서, 민중의 한()과 꿈을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연결하는 대표적인 성서 본문이 되었습니다. 에디오피아 관리는 빌립을 초대하여, 그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빌립은 이 말씀이 써진 이사야의 시대부터 자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말씀이 복음이 된 까닭을 설명합니다. 빌립의 시대에 그것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은 에티오피아의 관리는 빌립에게 즉시 세례를 요청합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자, 그는 이제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진정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진정한 관계로 묶어준 공간은 예수 안에서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것을 더욱 분명한 말씀에 담아 주는 것이 요한복음 15장 본문입니다.

 

[포도나무 예수 안에서 / 요한복음 151~8]

오늘 요한복음 본문은 예수님의 고별설교’(14~17) 가운데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눈 다음, 긴 말씀과 기도를 남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포도나무, 제자들은 그 나무에 붙은 가지로 비유합니다. 이 비유는 서로 연결된 관계를 상징합니다. 그런 점에서, 4절은 기독교적 실존을 말해주는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예수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이 말씀은, 자기 절대화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과의 관계들 통해 사랑과 생존과 만족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한정된 조건 속에서 살아가면서 보람과 좌절을 느낍니다. 서로에게 지지와 보호와 사랑을 기대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기대 속에서 관계가 무거워지고,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위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장 선한 마음에도 소유욕과 질투와 오해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영혼의 실패는 반복됩니다. 피할 수 없는 실존의 한계입니다.

이런 경험을 거듭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자기가 경험하는 현실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재의 자기는 전체 생명 여행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성공에 대한 자만도, 실패로 인한 낙심도 인생의 한 지점을 지나는 과정에서 겪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경험과 자기 존재에 대한 절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격랑 속에서 실존의 위기와 관계의 위기를 겪을 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예수 안에 머무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안에 머물면서 상처 난 사랑과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종교적 삶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가르침은 요한일서의 본문에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 요한일서 47~21]

요한일서의 중심주제는 사랑입니다. 그것에 관한 가장 명료한 표현은 본문 8절과 16절에서 두 번 반복되는 세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Θες γάπη στίν)

사랑이란 인간의 마음에 담긴 가장 보편적인 열망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4:12)

우리는 사랑 안에서 풍요로운 삶의 의미를 경험하고, 모든 삶의 가능성을 꿈꾸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 존재의 근거요, 모든 이해의 뿌리요, 모든 도덕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에 실패합니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하는 불운을 겪고, 사랑이 위선의 논리가 되는 경계선에서 삶을 회의하기도 합니다. 그런 고통과 실패는 우리에게 인생의 과제를 던져줍니다.

우리의 몸부림은 대체로 사랑의 실패로 인해 파괴된 삶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삶에 쌓인 고통과 체념, 불행과 한계에는 모두 사랑의 실패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삶, 예수를 잃어버린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힘차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4:7)

이 말씀은 우리를 진정한 삶으로 이끄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요, 예수 안에 머물러 사는 삶입니다. 예수 안에 머무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에 참여하는 것이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그의 섬김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그곳이 삶의 기쁨과 회복이 일어나는 생명의 못자리입니다.

생명의 잎사귀가 더욱 푸르른 5월을 시작합니다. 예수 안에 머물면서 모든 삶의 관계에서 사랑과 평화를 키워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그리스도 안에 머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로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도록 그리스도 안에 머무십시오.

생명의 푸르름을 더해가는 5월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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