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의 이전에 즈음한 인사와 다짐
향린교회는 오는 2021년 6월 말, 현 위치(서울 중구 명동13길 27-5)를 떠나 광화문 인근(내수동 110-5)으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떠나기에 앞서 ‘명동의 향린교회’를 기억하는 모든 분께 인사와 안내를 드립니다.
향린교회는 1953년 5월 서울 중구 남산동에서 창립한 뒤 1959년 중구 남창동(현재 남대문시장 영역)으로 이전했으며, 1968년 명동의 현 위치에 예배당을 짓고 53년 동안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교회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교우들이 고심 끝에 이전과 교회신축을 결정함으로써, 이제 광화문 지역에 새 터전을 마련하고 옮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향린교회 당회는 이전의 경위와 향후 일정, 새 터전에서의 계획과 다짐 등을 여기 기록으로 남겨서, 그동안 향린의 여정에 함께 해 오셨거나 향린을 기억하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1. 향린교회 이전의 경위
이른바 전두환 정부 시절이던 1983년 서울시의 명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이 결정되었고, 그 당시 지정된 5개 지구 가운데 4개의 재개발사업이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향린교회가 포함된 마지막 제2지구 재개발사업이 지난 2020년 9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의결되어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앞서 향린교회에도 2012년부터 재개발사업 희망자들의 부지매입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교회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존치 또는 이전 문제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우들 가운데 처음에는 역사적 흔적이 배어 있는 현 위치를 고수하려는 존치론이 우세했으나, 서울시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정비구역 지정을 취소하지 않는 한 현 위치 또는 제2지구 안에 있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현재의 교회 건물이 노후화되어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된 것과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교우들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을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점도 매각 및 이전 결정을 하는 데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향린교회는 명동 제2지구의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KCHAMC에 교회부지를 매각하기에 이르렀고, 2021년 6월 말로 현 위치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2. 향후 계획 및 일정
향린교회는 ‘진보적 도심지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광화문 지역인 종로구 내수동에 새로운 부지를 매입하고, 현재 건축 설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축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2년 말쯤 새 교회 건물에 입주할 예정입니다. 내수동에 지어질 교회 건물은 향린교회의 네 번째 터전으로서, 교회창립 70주년에 즈음하여 이른바 ‘광화문 시대’를 열어가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향린교회는 현재의 명동 건물에서 퇴거한 뒤 2021년 7월부터 향후 내수동의 신축교회 건물에 입주하기까지 1년 이상 ‘광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기간 교회 사무실은 신축부지 인근에 마련되고, 임시 예배처소로는 기존의 명동 교회 건물에서 가까운 서울YWCA 강당을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기간은 비록 힘든 시기일 수밖에 없지만, 모세가 인도한 광야의 사람들처럼 어려움 속에서 더욱 단련된 공동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한편, 향린교회의 명동 부지를 인수한 KCHAMC는 앞으로 현 위치에 들어서게 될 신축 건물에 향린교회의 역사적 역할 등을 보여주는 ‘기억공간’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이는 향린교회가 1987년 5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결성식이 열린 곳으로서 그해 6월항쟁의 불을 지피는 등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이바지해 온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향린교회 측의 요청일 뿐 아니라 서울시가 사업시행을 인가한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3. 새 터전에서의 다짐
향린교회는 광화문 지역에 교회신축을 진행하면서, 물리적인 건물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공동체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한반도의 평화’와 ‘생태적 전환’ 등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응답할지 깊이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향린 교우들은 이와 같은 모색과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광화문 지역 신축교회 건물을 새로운 사회선교의 근거지로 삼으려 합니다.
향린교회가 이전을 고심하는 과정에서 교회 안팎에서 많은 분이 ‘사회선교의 거점 하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광화문 시대에는 사회선교의 지향을 같이하는 시민사회 및 신앙공동체와 접촉면적을 더욱 늘리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직접 초대하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바라기는, 이제까지 향린교회와 동행해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향린다움’을 잃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기대와 격려를 보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어깨 겯고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비춰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 5. 16.
창립 68주년 기념주일에
향린교회 당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