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골목 구석의 한 길섶에는 풀내음이 솟구치고
풋풋한 장미꽃의 향기가 풀폴 나는 계절,
유월이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18개월이상 코로나 팬데믹이 유행하는 시기,
교우들 예방접종 잘 마치고 하반기부터라도 함께 만나는 시간을 고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선물하신 하느님!
마치 자연은 우리에게 환경훼손을 경고하면서
인간이 소에게 코뚜레를 꿰듯이, 도리어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세 마스크라는 코뚜레를 꿰는 형국입니다.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신체적질병이라기 보다 사람과 공동체의 상황을 통제하고 , 감정을 억누르게 하고, 분노와 두려움 우울의 감정을 촉발하는 트리거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린 교회 은행 나무는 꿋꿋하게 68년부터 명동 한복판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34년전 6.10 항쟁의기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난 오월은 5.18 민주화항쟁 41주년이 되는 달이었습니다.
유월이 되면서 우리 가슴속에 도도히 흐르는 민중의 역사적 기념일을 상기해 봅니다.
벌써 6 3 항쟁이 일어난지 57년이 지났고,
6 10 항쟁의 87년 기억이 올해따라 더욱 새롭습니다. 민중의 함성이 점점 사그러들어가는 요즈음.
34년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통해
성령이 임하셨던 그. 유월을 다시 맞아
명동을 떠나는 2021년 6월에 우리를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역사의 한복판에 계신 청년예수여!!
나로부터 진정하게 제자리에 서 있을때 차별금지법 제정도, 국가보안법 철폐도, 중대산업재해법의 개정도 의미가있습니다.
2021년 6월 현재 대한민국 소성리 땅에는 정부가 없었던 지난 주 였습니다.
국민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맞서는 것은 최소한의 기본권적 저항이며 당연한 생존권적 투쟁이었을 뿐입니다.
소성리의 문제는 더 이상 소성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묵묵히 땀 흘리며 본연의 임무를 다 하는 국민은 존재하지만 그들을 위한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냉전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미국의 용병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의 말이 생각나는 성령강림절 둘째주입니다.
그 어떤 '생각'에 동의할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나도 사건에 대한 상념을 정리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교우들 한명 한명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각자 각자가 무의식에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기를 오늘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집단무의식이 두렵습니다.
한 집단의 무의식은 잠재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인류학적인 증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이것을 깨닫고 ,
무의식을
뛰어넘어
오롯이 사람 사는 세상을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이 살아 갈수 가 있지만,
결국 상호의존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결국 집단무의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까봐 두렵습니다.
초월 (Transcendent)의 기능은 신비롭거나 형이상학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에서 다른 태도로 넘어서는 것을 말하는데 의식과 무의식의 내용이 서로 화해가 잘 될 때 일어납니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보상, 보완의 관계에 있지만,
우리는 내적 혹은 외적 갈등에서
의식이 무의식의 내용을 통합하려 애쓸 뿐,
주님을 의지하는 바램만 있을뿐
문제를 이해하고도 이전의 태도를 넘어서
초월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한 발을 내디딜 용기가 없거나,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
전적으로 영적인 게으름 때문입니다.
우리 탓이요.
제탓이요,
무의식의 흐름을 의식으로 제어하려는 교만이요
시기와 다툼만 있는 저희를
시험에(또는 유혹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또는 악한 자에게서,
즉 사탄으로부터) 구하시옵소서.”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서 저희 각 사람이 “
나는 죄인중에 괴수입니다.”라는 정직한 고백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향기로운 이웃이 되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성령이 임재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