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희가 오늘 이렇게 낯선 곳 서울YWCA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 동안 비록 낡고 소박한 곳일망정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명동의 터전에서 50여 년, 감사하는 마음으로 손때 묻혀가며 살다가 이제 아주 낯선 곳으로 나왔습니다. 저희는 이 시기를 ‘광야시대’라고, 그곳에서의 삶을 ‘광야생활’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내수동에 새 예배당을 지어 들어가기까지 1년 반 동안 찬바람 부는 들판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춥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 유리걸식 할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 같이 저희도 이끌어주옵소서. 이 낯선 장소, 힘든 시기가 그저 낯설고 힘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느끼는 장소가 되고, 저희의 전존재를 통해 확인하는 시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께서는 저희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날리는 갈대더냐? 옷 잘 입은 사람이냐?” 하나님, 저희가 이 광야 시기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나야 하겠습니까? 저희도 예수와 신앙의 선배들이 보인 모범을 따르고 싶습니다.
모세는 이 광야의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서 불꽃이 이는 가운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희도 이 광야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에 저희가 그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고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을 만나 온갖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저희도 이 시기에 무수히 많은 시험을 거치리라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렇기도 합니다. 오 하나님, 제발 저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시험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같이 저희도 ‘말씀’으로 그 시험을 돌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가 광야 생활을 맞아 그 동안 쌓아두었던 짐들 가운데 남루한 것들, 손이 안 가는 것들, 그리고 발걸음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참 많이도 버렸습니다. 몸을 가볍게 해야 발걸음도 가볍고 당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세상 속으로 가는 길을 떠나며 지팡이 외에는 두 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말씀에는 턱 없이 모자랍니다. 저희가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 광야 생활 중에 ‘비움의 영성’을 경험하고 실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희가 이렇게 그 동안 쌓아 온 향린의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이겨내며, 또 하루하루가 의미 있도록 살아내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의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저희를 비움으로써 죄 중에 방황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잘 부르는 찬송처럼, 그렇게 비우고 노력해도 광야 생활의 마지막에 마침내 가나안 복지의 귀한 성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신앙의 여정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 생활의 이 긴 구비구비 가운데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또 그 여정이 어디쯤에서 마무리될지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곳과 그 때는 오직 주님께서만 아십니다. 저희 각자가 그 때에, 그 곳에서 감사할 수 있도록 저희 스스로를 다그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때에 저희가 “수고했다”고 위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저희의 입을 닫고 마음을 비웁니다. 주님, 저희 마음에 오셔서 지금과 같은 교회 이전 상황뿐만 아니라 저희 신앙의 긴 여정 중에 광야의 소리로, 빈들의 영성으로 저희 영혼을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침묵)
이제 향린 교우들이 새로운 길에 첫 걸음을 떼어 놓는 가운데 그 길에서 비록 여러 번 넘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