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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두 가지 잣대 | 김희헌 | 2022-02-20

by 김희헌 posted Feb 20, 2022 Views 16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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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2-20

두 가지 잣대 (45:3~11,15, 고전 15:35~38.42~40, 6:27~38)

2022.02.20. 주현절 7

 

20대 대통령선거가 2주 남짓 남았습니다.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의심스럽지만, 그 내용 자체로 본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 같습니다. 촛불 정부를 자처한 현 정권의 무능과 실책이 준 실망도 큽니다. 하지만, 더욱 암담한 것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보수주의 선동이 마치 심판자의 모습을 띠고 활개 치는 현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포문을 열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박정희의 혁명을 제대로 배우겠다거나, ‘이명박 4대강 사업을 지키겠다는 등 퇴행적 편 가르기 전략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기에, 해석의 차이를 단순히 <진실 대 거짓>으로 양분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와 인권, 평등과 평화를 향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총체적인 반격이 완강하게 나타나는 현실은 불길하게 보입니다.

이런 사태를 가장 느긋하게 대할 성서의 내용이 있다면, 아마도 전도서일 것 같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전도서의 지혜자는 모든 것이 다 때가 있어서 죽일 때도 있고 살릴 때도 있으니 무얼 더 보태기 위해 애쓰지 말라고 합니다. 현재 상황을 역사의 한계로 알거나 하나님이 지운 짐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그도,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얘기합니다. (3:11) 깨어있는 양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어떤 기준과 잣대를 적용할 것인지 사회적 감각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국가적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나 공동체의 실험에서도 어떤 감각과 판단으로 상황에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이 사랑할 때인지 미워할 때인지, 전쟁할 때인지 평화를 누릴 때인지 분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현명한 판단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정의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자비의 모습입니다. 이 두 모습의 이면에는 두 개의 잣대가 작동합니다. 하나는 공평의 감각을 재는 잣대요, 다른 하나는 은총의 감각을 늘리는 잣대입니다. 공평의 잣대는 과거의 행위에 대한 오늘의 대응을 엄밀하게 재는 기준이요, 은총의 잣대는 미래를 향해가기 위해서 오늘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한 과거와 미래의 감각이란, 정의와 자비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 잣대를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의 잣대만으로는 정의와 자비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공평의 잣대만으로는 정의의 이름을 가진 약탈자가 되기 쉬우며, 은총의 잣대만으로는 자비를 이루기 전에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두 개의 잣대를 활용하면서 도덕과 정치를 펼치고, 구원과 몰락을 경험합니다. 잘못된 잣대를 대면 환멸의 시간을 겪지만, 올바른 잣대를 적용하면 과거의 무게를 털고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다시 한번 역사의 전진을 이루는 지혜로운 선택이 되도록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요셉의 선택 / 창세기 453~11, 15]

오늘 생각해볼 창세기 45장의 내용은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꿈꾸는 사람이 겪은 고난과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긴 설화집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받은 아버지의 사랑과 요셉의 꿈에 관한 이야기, 형들의 질투로 인해 노예로 팔려간 이야기, 유혹을 물리친 요셉이 도리어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갇힌 이야기, 해몽하는 능력으로 총리가 되어 온 나라를 다스리게 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근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하러 온 형제들을 다시 만난 이야기 등이 재미있게 펼쳐집니다. 오늘 본문은 이 긴 드라마의 절정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장면을 극적으로 꾸미기 위해서 이야기는 앞에서 긴장감을 잔뜩 불어넣습니다. 형제들은 양식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누명을 쓰고 추궁당하게 되었고, 막내 베냐민은 노예가 될지 모를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형제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요셉의 선택을 주목하게 됩니다. 자신을 팔아치운 비정한 형들에게 복수할 것인지, 그들을 용서하고 20년 넘게 지속한 원망의 시대를 끝낼 것인지 숨죽이며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형제들과의 적대적 긴장을 깨뜨리는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그는 복수의 칼로 깎은 공평의 잣대를 내려놓고, 은총의 잣대를 늘려서 용서와 화해를 완성합니다. 그가 형제들에게, “나는 당신의 형제 요셉입니다.” 하고 말할 때, 모든 적대감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이해하려면, 역사비평으로 얻은 성서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이야기는 야곱을 아버지로 둔 열두 형제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적대하다가 결국 제국에 의해서 하나씩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먼 훗날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파멸의 시대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요셉의 이야기는 대단히 큰 교훈을 주었을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힘을 가졌다고, 형제들을 선제타격하고 정치보복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 성서의 구원 드라마는 중단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이 겪은 험난한 삶의 여정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공평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은총의 잣대를 적용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걱정하지도,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려고,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신 것입니다. 저를 여기에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이 고백을 통해서, 이제까지 역사의 무대 뒤에 숨어 있던 하나님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환히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 그것이 구원입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요셉의 선택에 대해서 총리대신 정도 되었으니 베풀 수 있는 아량 아니겠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힘을 가졌다고 사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승자의 아량에 관한 만담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끈질긴 삶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인생의 위기와 곤경을 겪고, 역사의 질곡과 파괴를 보면서도 생명의 꿈을 품고, 그 꿈을 삶으로 풀어간 사람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숙한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원수 사랑의 위기 / 누가복음 627~38]

요셉이 형제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누가복음 6장에 나오는 평지설교의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그 구체적 방법을 7가지로 제시합니다. 1)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2)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3)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4)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5)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며, 6) 네 것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7)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뭐라고 부르죠? ‘호구’(虎口)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예수의 이 원수 사랑의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공평의 잣대를 포기하라는 뜻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10:16)고 가르친 분이 한 입으로 두말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뒤 이어지는 황금률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하여 삶의 윤리를 다시 세우는데, 그 정점이 31절에 나오는 황금률입니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공자님은 이를 거꾸로 말하여,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아라’(己所不欲 勿施於人)하고 가르쳤습니다. (논어, 위령공편)

예수는 이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편향된 모습을 열거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일이요, 좋게 대해 주는 사람들만 좋게 대하는 것이요,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베푸는 삶입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힌 삶이 보여주는 결핍, 즉 은총의 잣대를 펼치지 못한 삶에 관한 질책입니다. 이 질책에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그 돌파구로 예수께서 제시하는 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에 관한 모색입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 가르침은 우리를 위기로 몰고 갑니다. 그 가르침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우리를 더 깊은 고민에 빠뜨립니다. 현실의 실천 윤리로 삼기에는 너무도 큰 도전입니다. 그것은 실행하기 힘든 불가능성의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따를 수 없는 부도덕성의 문제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문은, 원수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자비심이 있으나, 다른 한편에는 정의감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자비심이 옳지만, 정의감이 없을 때는 도덕성이 파탄 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원수 사랑 가르침은 고민의 종착점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위기에 빠뜨립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삶의 전환과 부활 / 고린도전서 1535~38, 42~50]

오늘 고린도전서 15장 본문은 바울의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 (35) 이 질문은 철학적 물음이자,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실존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겹겹이 쌓인 적폐의 무덤에서 생명이 어떻게 살아나고, 무슨 모습으로 되살아나느냐? 어둠짙은 이 역사에 새벽은 동터오는가? 하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죽은 육체의 운명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에 관한 질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지 못해서 이미 죽어버린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되살려내야 할 삶에 관한 가르침 같습니다. 앞에서도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했던 바울은 죽음이 새로운 삶의 조건임을 말합니다. (31)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했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12:24~25)

생명력 있는 밀알처럼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는 삶, 거기에서 부활의 세계가 보입니다. 바울은 그 죽음에서 비롯된 새 삶을 다음과 같이 그려냅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고전 15:42~44) 바울은 이러한 삶을 보여준 이가 하늘에서 난 사람예수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하늘에 속한 그의 모습을 입게 될 것으로 말합니다.

삶에 위기가 오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변하지 않고, 자신의 환경이 자기를 위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럴 때 삶의 힘겨움은 믿음의 위기가 되고, 인생의 좌절과 분노는 신앙의 무기력으로 쌓입니다. 마침내는 자기 삶 너머의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지며 영혼의 불이 꺼집니다.

다른 하나는,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 질곡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진실로 여기며 그 너머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마치 생각의 종착역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시각일 뿐입니다. 참된 삶의 특징은 성숙해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가는 삶에 관한 분별을 동반합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정의와 자비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공동체를 지어가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내어줄 때와 정의를 위해 악에 맞서 싸워야 할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두 길 사이에서 어떤 삶이 옳은지, 합리적 판단이란 미리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체로 공동체에서는 자비의 원리를 적용해야 하고, 사회에서는 정의의 원리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 삶의 실험을 우리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악한 대상은 우리가 그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성장하기 전까지는 계속 악으로 경험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성숙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악마저도 선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John A. Sanford, The Man Who Wrestled with God : Light from the Old Testament on the Psychology of Individuation, 79).

봄의 길목인데, 여전히 겨울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분단시대의 질곡을 딛고 일어서는 역사의 봄을 맞고, 불의와 부패, 차별과 증오를 털어내고 부활의 언덕을 오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빕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암담한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부활합니까?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되살아나는 생명의 원리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 질곡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이 땅의 민중들과 교우들에게,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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