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기도

목회기도 | 김창희 | 2018-02-25

by 관리자 posted Jul 05, 2018 Views 30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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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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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오늘은 저희가 사순절 둘째 주일이자 삼일절 기념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 중에서도 삼일절은 기미년의 삼일운동 그 날로부터 100년에서 꼭 한 해가 빠지는 99주년이 되었습니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그 날은 아조선(我朝鮮)이, 즉 우리 조선이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가 아니라 수천 년 이어온 엄연한 독립국이로되, 그 독립된 나라의 주인은 그 동안 왕좌에 있던 임금이 아니라 바로 내가, 백성인 내가 내 운명의 주인, 즉 자주민(自主民)이라고 선언한 진정한 혁명의 날이었습니다.

 

하느님, 저희는 오늘 근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가운데 이 민족의 아픈 역사 속에 개입한 당신의 뜻을 헤아리며 감사드립니다. 가장 아픈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케 하시듯이, 하느님께서는 이 민족이 가장 어두운 식민지의 암흑 속에서 오히려 민중이 스스로 빛이 되고 주인 되는 새 하늘 새 땅의 비전을 발견케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대륙의 끝,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이 땅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해 진정한 시민혁명의 기운이 뻗어나게 하시고, 그 기운이 오히려 중국대륙의 5·4운동과 신해혁명의 원류가 되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가장 약한 자를 들어 귀히 쓰시는 하느님의 뜻을 찬양합니다.

 

하느님, 저희는 오늘 이런 감사함 속에서도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0년 전 기미년에는 기독교가 삼일운동의 주역으로서 민족을 이끌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회가 그 지역 만세운동의 진원지가 되었건만, 이제 교회는 그런 혁명의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100년 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스스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했건만, 이제 우리는 주인으로 살고 있지 못합니다. 교회 스스로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맘몬의 종이 되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렸습니다. 100년 전에는 만세 시위에 나서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만세 대열에 나서곤 했지만, 이제 교회는 그런 용기와 결단도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이 분단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의 음험한 의지를 용인하고, 거기에 편승하려 할 뿐입니다. 그런 교회의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

 

이 나라의 교회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민혁명의 대의를 더럽힌 죄를 용서하옵소서. 그 죄를 무엇으로 씻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 이제 내년이면 100번째 삼일절을 맞습니다. 과거에 저희 향린공동체는 도기순 장로를 통해 그 선친의 삼일운동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안타깝게도 그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몸은 저희가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살아서 우리의 공동체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 인도하심 중에 삼일운동의 100년, 민주공화국의 한 세기를 되새기며 저희 향린공동체가 ‘혁명의 영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갖게 하옵소서.

 

하느님, 저희가 삼일운동의 후예답게 이 민족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리게 하시고, 그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느님, 저희가 삼일운동의 후예답게 이 사회의 가는 길에 주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기로 결단하게 하시고, 그 결단의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느님, 저희가 삼일운동의 후예답게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마련된 남북화해의 기운을 잘 살려나가서 곧 도둑처럼 찾아올 남과 북의 통일 과정에서도 일꾼이 되게 하시고, 그 통일의 일꾼이 되는 도상에서 우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느님, 저희가 삼일운동의 후예답게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고 자유인으로, 그리고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그런 해방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느님, 이제는 저희의 입을 닫고 당신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100년 전 이 민족에게 자유와 희망의 복음으로 오셨던 주님께서 이제는 무슨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우리의 빈 마음에 오시옵소서.

 

(…)

 

100년 전 삼일운동 때에나 오늘이나 똑같이 살아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 혁명의 길로 나서라고 촉구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