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의 아카시아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는 오월의 어느날
문득 신동엽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에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55년전의 종로통 길가에서 불현듯 노래하였을 이 시, 2022년 오월 끝자락에 시간을 초월해 여기 와 있습니다.
1. 정의의 하느님
소외되고 목소리 없는 이들을 압박하는 현실인
차수성(次數性)의 세계에서
2022년 현재, 오월의 마지막주
부활후 7번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70주년을 맞아
낙엽처럼 쌓여 있는 시간의 갈피를 넘기며
우리안의 들보를 들춰볼 기회를 갖고자 했으나,
코로나 상황에 떠밀려 그리 하지 못하다가
겨우 지난날의 의미와 미래의 선교방향에 대하여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원수성(原數性) 의 세계를 엿보고 있는 중입니다.
2. 온유의 하느님
오월의 마지막주 피끓은 심정으로 저희 기도를 주님께 바칩니다
- 이웃에 대한 정서적인 지지와 적절한 사회정의로의 개입을 허락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편에 서게 하는 지혜를 주소서.
-- 가난한 이들을 가까이 하고 삶의 검소함이 기쁨을 주게하시고 타인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내게 하옵소서.
--- 친구 가족 교회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튼튼한 사회적 지지망을 더욱 구축하게 하소서
서로 칭찬하며 자주 웃게 하소서,
자선과 친절, 온유가 신앙인의 미덕이며
주께서 주시는 이땅에서의 축복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3. 오월 그리고 노무현
그러나 이땅에서
“오월”과 “광주”를 발음할 때마다
아득한 풍경이 머릿속에 지나갑니다.
지난 5월23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13주기였습니다.
또한
2000년,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11년 만에
2018년 4월27일에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린 날이
이번주 5월24일 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제가 오프라인 행사로는
3년 만에 열린 이 행사에서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를 주제로
일반 시민들의 강물같은 흐름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국민을 설파한 것처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향린이 된다면,
위기에 처한 현 상황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노무현 님의 육성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
이웃의 고통과 부정부패 사회적 불의를
내 문제가 아니라고 모른체 하면 내 삶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4. 다시 오월, 2022년 윤석열
신동엽이 노래한 본래 풍요와 부의 원수성적 공간은 우리가 지향하는 IDEA 세계이지만
궁핍과 해체 위기에 직면한 공간으로 그려지는 소년공의 시선
무력에 의한 지배 대신 자본에 의한 지배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밑에서 민중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번 한미 회담에서 한일을 경쟁시켜 모든 것을 다 챙겼다죠
윤대통령은 바이든과 경제분야를 안보의 하위부분으로 속절없이 주권을 내다 팔고 있습니다.
몇 년전까지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을 자본유출과 더불어 국내 일자리 없어진다고 하였던
조선일보는 찬양일색의 대미협상 성과만 윤비어천가 이야기하고만 있습니다.
5.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주님.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는
비장한 이 현실
가슴에 무엇인가를 비장하게 결의하며
전선에 나서는 심경
조직이 대형화되면서 사회적 강자가 되어 가고 있는
이 현실에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핍박당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왔던
지난 시간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봅니다.
어떤 사람은 더 하고 싶어도 못했고, 어떤 사람은 다 채우고 안했지만,
이제는 더 하지도 못하고 다 채우지도 못하고 우리들과 헤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예수의 몸된 교회의 "신성함"을 외치며,
새로운 유형의 " 새로운 단결"을 외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향린의 정체성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기독교장로회가 탄생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아도 ,
예수가 부활한 정신을 오롯이 되뇌어봐도 이런 불가사의한 일은 기독교인의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권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구성하는 악마의 습성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이제 침묵 속에서 각자의 처소에서 주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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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저희의 하는 말과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