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ㅣ 박희규 ㅣ 2022-06-19

by 김지목 posted Jun 21, 2022 Views 25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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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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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열왕기상 19:1-4, 8-15a, 갈라디아서 3:23-29, 누가복음서 8:26-39.

 

 

 

열왕기하 22장를 살펴보면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비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두루마기를 발견합니다. 요시아왕은 이 두루마기의 말씀을 바탕으로 유다의 종교를 개혁하고 여호와숭배의 터를 닦습니다. 우리의 성경책에 담겨 있는 현재의 신명기는 바로 두루마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후세대의 여러 편집을 거친 문서라고 보면 됩니다.

 

신명기가 담고 있는 말씀의 특이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뚜렷한 여호와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하나의 성전과 하나의 수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중앙정권과 중앙신권 사상이 구축됩니다. 그리고 신명기가 표방하는 율법에 순종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의 운명이 축복과 저주로 갈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역사서들이 바로 이 신명기의 관점에서 쓰여집니다. 학자들은 신명기가 모세오경에 포함되기 전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서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으로 살다가 앗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바빌론에 의해 망한 유다의 백성의 삼분의 일이, 예루살렘의 집권층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살고 있을 이들은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여러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상하서, 열왕기상하를 써내려 나갑니다. 그들의 숙제는우리가 망했는가? 우리의 고통은 어디서 기인하는가라는 신정론적 질문의 해답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답을 신명기에서 찾은 것이지요.  “우리가 망한 것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기로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우리가 깼기 때문이다.”

 

신명기 사관으로 쓰여진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누구 왕의 행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누구누구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였다는 평가는 역사기록자의 신명기 사관적인 평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보면서 이런 평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사료들과 비교해 보면 생각해 부분이 있는 같더군요. 열왕기서에 매우매우 악독한 왕으로 등장하는 아합왕과 그의 아버지 오므리왕에 대한 평가를 보면 다른 역사사료와 크게 차이가 있음을 있습니다. 아합왕의 아버지인 오므리왕은 북이스라엘의 10 부족들의 피튀기는 정치 갈등을 정리하고 제대로 북 이스라엘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든 왕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쿠데타로 인해 쑥대밭이 된 나라를 정비하고 오므리는 사마리아라는 수도를 만들고 안에 성전을 지어 나라를 나라꼴이 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앗시리아 주변 국가들의 사료에는 오므리의 후세대에도 북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있습니다. 아합왕은 그렇게 나라를 정비한 부왕의 대를 이어 지혜롭게 외교 정치를 수행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 나라를 강건하게 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과 정략결혼을 통해 이스라엘의 위상을 높였듯이 아합왕도 북이스라엘에 위협이 있던 경쟁국가인 시돈 공주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하여 주변 국가와의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정립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제가 여성으로 혹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아합왕을 평가하자면, 아합은 그렇게 정략적으로 결혼한 여성인 이세벨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건강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있었던 안정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사관은 아합이 다른 문화권에서 아내의 종교를 북이스라엘의 정식 종교로 제도화하여 하나님의 눈 밖에 악한 왕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한편 신명기 사관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이의 단정적인 평가 속에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고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역사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되돌아보려는 그들의 아픔이 담겨 있어서 이를 단순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해보고 싶은 것은 신명기 사관을 잠시 옆에 밀어 놓고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읽어 보고자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들과 경합을 벌입니다. 몇년간 진행된 가뭄을 폭풍을 주관하는 바알이 끝을 낼 것인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인지를 보기 위해 양팀이 두 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이 경합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스펙터클한 승리를 멋지게 이끌어 엘리야는 그들의 경합을 구경하러 구경꾼들과 함께 경합에 팔백오십명의 바울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을 칼로 처참하게 죽여버립니다. 지역의 강은 우기에는 흐르고 건기에는 바짝 말라버리는 와디의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엘리야는 군중과 함께 바알 선지자들을 말라 있다가 이제 폭풍후에 흐르기 시작할 기손 와디로 끌고 내려가 그곳에서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폭풍이 몰아 칠 때, 칼에 베인 팔백오십명의 피가 이제 사막에흐르기 시작하는 와디 강에 붉게 흐르고, 그들의 시체가 뒹구는 처참한 모습을 여러 영화 장면들을 머리 속에 긁어 모아 상상해 봅니다. 그것을 자행한 인간은 그의 인생의 다음 장을 어떻게 살아나가게 될까요?

 

이 사건이 있은 후 아합왕은 아내인 이세벨 왕비에게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줍니다. 남의 나라로 시집왔지만 남편이 팍팍 밀어줘서 할말 하고 살았던 이세벨 여왕은 대학살에 분노했고, 이런 폭력을 저지른 엘리야를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고 합니다. 말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정신이 바짝 납니다. 그들을 죽일 때는 자신을 정의의 사자라고,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광기를 발휘하여 칼을 휘둘렀지만, 그들이 모두 학살되어 그들의 시체가 와디강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생생히 기억하는 엘리야는 줄행랑을 치기 시작합니다. 시종이 따라오지만, 어느 시점 그는 시종을 남겨 놓고 홀몸으로 광야로 도망쳐 거기에서 죽기를 간구합니다.

 

예전에는 사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적으로 자기 편을 들어주었는데, 이세벨의 위협 따위가 갑자기 두렵지? 갈멜산의 거대한 경험을 하고 사람이 이렇게 조그만해졌지? 생각했던 같습니다. 그런데, 목회상담을 하다 보니 트라우마 앞에 서있는 남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주 잠시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야기 볼까요? 1970년대에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는 것을 보며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라는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죽음에 근접한 경험을 이들의 기억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플래시백, 악몽 등을 수시로 겪으며 극도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겪는 것을 정신적 외상으로 이해했던 심리학은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다각도의 이론들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최근에 PTSD 설명되기 어려운 양심의 괴로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연구의 결과로 우리는 도덕적 외상, moral injury라는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처럼 가해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겪는 트라우마 반응일 때가 많은데요, 민가에 폭탄을 떨어뜨려야 했던 군인들, 최근 팬데믹 기간 동안 병원에 몰려왔던 코로나 환자들 누구를 입원시켜 살려낼 것인지 누구를 입원시키지 않고 죽게 내버려둬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던 간호사들 ,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을 거슬러서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죽음을 봐야 했던 이들이 자주 경험하는 트라우마 반응을 도덕적 외상이라고 부릅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 뚜껑조차 열어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부인하는 중입니다. 이세벨의 보복이 두려워서 도망친다는 것은 아마 자신의 도덕적 외상을 들여다 보지 않기 위한 핑계로 읽힙니다. 나는 정치적인 보복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이지 내가 저지는 일로 인해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도덕적 외상을 겪는 이들은 극히 외롭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동굴 속에서 아래로, 아래로 사선을 타고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너는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며 트라우마의 순간의 산산조각난 기억들이 이들을 사방에서 공격할 , 그들은 홀로 지옥길을 걸어갑니다. 그러기에 엘리야는 광야로 홀로 나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어둠이 자신을 쫓아 오지만, 그게 뭔지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엘리야는 그저 광야로 깊이 더 깊이 도망갑니다. 그렇게 하룻길을 도망가던 그는 주저 앉아 죽기를 기도합니다.

      

죽기를 기도하는 이에게는 세상이 두 갈래로 보입니다. 삶과 죽음으로 갈려서 보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둘로 갈라 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아기가 기기 시작하고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 아기의 엄마는 바빠집니다. 아기가 다가서는 모든 물체와 상황들은 아기가 만져도 되는 것과 만지면 안되는 것, 다가가도 되는 것과 다가가면 안되는 것으로 갈립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엄마의 안돼!”라고 외치는 목소리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됩니다. 엄마가 안돼라고 외치는 순간은 급박한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냄비를 만지지 말라는 안돼는 아기가 화상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한 목소리입니다. 자동차길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를 향해 외치는 안돼는 아기가 교통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소리이고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우리가 삶과 죽음으로 세상을 둘로 갈라보는 절박한 순간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엘리야의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러한 절박함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유일신 사상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였다고 판단하는 신명기 사관을 가진 열왕기자의 서술에서도 이러한 절박함이 읽힙니다. 멸망을 경험한 이들에게 그 멸망을 설명하는 길은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외로운 순간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 하나님은 그에게 앞으로 길이 멀다고 그를 사십일간 광야길을 걷게 하여 시내산에 다다르게 합니다. 신명기 사관이 말하는 사십일간의 광야길은 모세를 떠오르게 하고, 그와 닮은 엘리야의 모습을 보게 하고 싶겠지만, 신명기 사관을 걷어내고 그를 바라보면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해 광야를 헤매고 있는 트라우마의 아픔을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 남자가 보입니다.                                   

 

저벅저벅그가 드디어 시내산에 다다랐을 ,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의 대답은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대한 이 동문서답이 너무나 제가 하던 소리랑 닮아서 저는 이 부분 부터 극도로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엘리야의 호소에 주어를 저 자신으로 바꾸면 이대로 제가 드렸던 기도가 되거든요. 정성들여 준비한 성경공부와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교인들을 야속해 하면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녹초가 되어 드리던 기도랑 왜 이리 닮았던지요? 나는 이제까지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는데, 저들은 왜 이리 정의롭지 못하고, 저들은 왜 이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같고, 나는 왜 이리 홀로 남아 외로울까요? 그리고 왜 나는 이리 죽을 것 같이 힘든 건가요?

 

엘리야의 대답을 듣고 다시 들여다 보고 있자니 또 다른 한 겹의 불편함이 몰려옵니다. 제가 엘리야의 대답의 목적어가 되었던 기억도 몰려왔거든요. 그 기억은 좀 더 자세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20153월에 제가 속한 PCUSA교단은 40년간의 공동체의 분별의 시간을 마감하고 결혼의 정의를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헌신의 서약으로 수정합니다. 저는 1999년에 신학생으로 교단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 당시에 저희 교단은 장로의 안수 조건을 다룬 헌법 문항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즉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디모데전서 3장의 말씀을 근거로 장로의 조건을 한 아내의 남편이거나 한 남편의 아내이거나 경건한 독신이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었는데, 이 조항을 단순히 배우자가 있거나 경건한 독신이어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꾸거나, 아예 이 조항을 제거하는 문제를 놓고 개 교회들과 노회, 대회, 총회가 들썩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재미있는 건 그 당시 교단이 이렇게 열심히 공방전을 치루고 있었지만, 제가 섬기고 있었던 한인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침묵은 20153월에 결혼의 정의가 바뀌면서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 제가 속한 노회에서 상당히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던 교회가 교단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출석교인이 7-800명 되는, 이민목회에서는 대형교회인 이 교회는 교단이 결혼의 정의를 바꿔 성소수자들을 포용한 것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를 임의로 참 선한 교회(가명)’라고 불러보겠습니다. PCUSA 교단이 헌법에서 주장하는 교회의 질서의 기본 원칙에는 하나님이 개인의 양심의 주인이시라는 원칙과 그러기에 그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함께 분별하고 판단해 나간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성소수자들을 포용하는 교단의 결정을 개교회의 교인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그들이 자신의 양심을 따라 교단을 나갈 수 있는 절차를 교단 차원에서 준비해 놓았습니다. 특히 저희 교단에서는 개교회의 모든 건물이 노회에 신탁되어 있기 때문에 각 노회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책임감을 가지고 행사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개교회가 교단을 탈퇴할 때 노회의 대표로 구성된 협상팀이 개교회와 충분한 협상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노회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참 선한 교회가 한인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교회여서 이런 껄끄러운 절차를 진행할 협상팀에 들어가 일하고자 하는 한인 목사님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상담이라는 특별사역을 하고 있던 새내기 여성목사인 제게 이 일이 맡겨졌습니다. 남성 한인목회자들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것이 반어적으로 자격 요건이 되어 협상팀장을 맞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 선한 교회를 도와 교단에 그대로 남도록 설득을 하든지 굳이 나가겠다면 절차대로 잘 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메뉴얼이 짜여 있던 일이었고, 절차를 따라 차근차근 진행하면 그들을 고이 내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참 선한 교회의 교인들의 일부가 교단을 탈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서 노회는 교단에 남겠다는 우리 교인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고, 교단을 떠나겠다는 다수와의 협상은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급기야 그 과정에서 참 선한 교회의 리더십팀은 노회와 교단을 적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노회 협상팀 대표로 담당해야 했던 일 중 하나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예배는 매주 전쟁터로 변해갔습니다. 그들의 목회기도는 동성애자들의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소환하고, 죄에 눈을 감은 교단과 노회의 죄를 폭로하고, 자신들의 열정을 호소하는 기도였고, 담임목사는 매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동성애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저는 악마이기도 했고, 마녀이기도 했고, 매국노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담대히 싸우라는 찬송으로 맺어졌습니다. 이 예배를 주관하는 이들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매주 같은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의 예배 속에서 성스러운 하나님은 나를 악마로 삼으셔야 했고, 저라는 인간과 이 교회 교인들 중에도 어딘가에 아파하며 존재하고 있을 성소수자들은 그들이 선포하는 주님의 선하심에 짓밟혀야 했었지요. 하나님을 대변하는 그들의 언어는 긴박했고, 그들의 내러티브 속에 저는 그들을 핍박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협상팀의 일을 생각하다보니 엘리야의 대답이 이렇게 들리더군요.  

 

저희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박희규 목사와 우리교단과 노회는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우리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우리의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대답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바위를 쪼개는 큰 바람이 지나가고, 지진이 일어나고, 불이 났지만, 그 안에 주가 계시지 않았다고 열왕기자가 기록합니다. 그 후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서야 엘리야는 외투자락으로 얼굴을 싸고 동굴 어귀에 섭니다. 주님이 다시 물으십니다.“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갈멜산 사건이 하나님의 참되심과 강하심을 명백히 보여준 기적이었듯이, 시내산에서 주님이 엘리야 앞에 지나가신 사건은 주님의 임재를 확인시키는 엘리야가 존재론적으로 압도될 법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 압도적인 사건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상담하는 이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목소리에서는 다른 겹의 아픔을 읽어냅니다. 새로운 경험에서 아무런 배움도 찾아내지 못하는 목소리, 꽉 닫힌 목소리가 들립니다. 불안과 우울에 찌든 목소리이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가느다란 생각을 확신처럼 잡고 고집부리는 이의 자기부인의 목소리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에 대한 의분에 차서 850명을 학살한 죄책감에 대해, 내가 옳았다고, 이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라 우기면서 남들의 폭력만 기억하고 자신의 폭력을 들여다 보지 않는 이의 목소리입니다. 유일신을 섬겨야 한다는 신명기 사관을 거둬내고 사람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렇게 자신의 도덕적 외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지 못하고 온통 자기부인에 가득 찬 한 남자가 보입니다. 그가 만약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는 주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주님 제가 이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부드럽고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떤 음성을 들었을까요?

      

사실, 제가 노회의 협상팀에서 일할 때 처음부터 전쟁으로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선한 교회 교인들 중 교단에 남겠다고 버티던 분들은 이 교회의 창립 멤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젊은 목사님이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해나가실 때 자신들이 교회 활동에서 계속 소외되어 왔다고 느꼈던 분들이었습니다. 성소수자문제에 보통 어르신들이 열린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고들 하시는데, 이 분들은 지극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열린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실 성소수자 문제가 아니라 담임목사의 목회적 돌봄에서 소외되지 않고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대의명분은 성소수자들을 교회에서 품자는 것이었지만, 그들과 오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욕구는 사실 담임목사와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고, 참 선한 교회 담임목사님과 리더십팀과 이 그룹이 화해를 하고 함께 교단을 탈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전화 통화와, 대화와, 그룹 모임을 알선하고 양쪽의 아픔의 소리를 들어보고, 양쪽이 원하는 바를 조정하고, 심지어는 서로가 원하는 바를 미리 쌍방에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이 두 그룹이 대면으로 만나 서로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교단에 남겠다고 한 그룹은 이 모임에서 담임목사님이 자신들에게 그동안 목회적 돌봄을 소홀히 한 점을 사과하면 담임목사와 뜻을 같이 하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 모임에서 담임 목사가 겸손과 아량으로 이들을 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깔끔하게 교단에서 참 선한 교회를 보내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노회 측에도 확인하고 준비해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날 담임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꾸고 그 그룹에게 등을 돌려 버리더군요. 그때 명백해진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건 반동성애의 깃발은 사실 자신들의 내부의 갈등을 도려내려는 명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으려던 협상팀의 정성스런 노력은 이렇게 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그때부터 참 선한 교회는 아군과 적군을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나누고 협상팀을 적으로 몰아 전쟁을 벌여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둘로 나눈 절박함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한 두려움을 넘어 엘리야가 그 자리에서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이 무엇인지를 분별했다면, 아마 그 목소리가 대면하기 쉬운 목소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오랜 광야길을 걸어 도달한 곳에서 대면해야 하는 목소리들은 아마 기손 와디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덕적 외상, 자신의 순간적인 오만이 만들어낸 폭력이 자아낸 아픔과 대면해야 했을 것입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해결이 되지 않는 자신과의 고된 씨름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폭력을 휘두른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나의 죄악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치열하게 자기성찰을 하고 나온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성찰의 결과로 대답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그런 대답을 해내지 못한 엘리야는 폭력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다음 과제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사관을 가지고 글을 쓰는 열왕기자는 하나님의 입을 빌려 이들의 칼이 폭력의 사슬을 이루어 복수를 잇는 복수로 이어졌음을 설명합니다. 즉 엘리야를 통해 폭력은 이스라엘의 다음 역사에서도 계속 이어져 열왕기자가 보여주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의 길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행동을 수행하고 트라우마와 도덕적 외상을 겪고 있는 엘리야의 자기부인과 열왕기자의 신명기 사관의 절박한 신정론이 만들어 내는 둘로 갈라진 세상은 갈라디아서에도 등장합니다. 유대사람과 그리스 사람,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사이를 둘로, 둘로 갈라놓아왔습니다. 이렇게 둘로 갈리는 시점에는 늘 누군가의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절박함이 깔려 있습니다. 아기를 보호하는 엄마의 안돼처럼 율법은 선과 악을 가르며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개인교사의 역할을 해왔다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가 온통 엄마의 안돼로 둘러 쌓인 아기는 자신의 주체성에 상처를 입습니다. 바울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설교를 맡은 이유는 성정의주일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정의의 문제는 목회현장에서는 제 삶과 목회의 발목을 잡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성정의의 문제가 참 선한 교회에서처럼 표면화된 이슈가 되었을 때 너무도 자주 그 문제는 그 공동체 내면에 있는 아픔을 부인하고 누르는 절박한 아픔의 증상일 때가 대부분이더군요. 참 선한 교회가 반동성애 담론을 통해 교단을 떠나고자 했던 이유는 결국 내부의 골깊은 아픔을 도려내는 작업이었듯이 말이지요.

 

내 것이 되었던 남의 것이 되었던 간에 엘리야의 목소리처럼 경직된 확신의 목소리가 들릴 때, 선과 악이 둘로 정확하게 갈린 목소리가 들릴 때, 누군가가 하나님의 관점을 대변할 때, 누군가가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신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두었어도 결국은 아픔을 가리기 위한 절박한 시도일 때가 많더라는 관찰을 이 자리에서 나눕니다.

 

열왕기서는 사실 이분법의 경직된 사고를 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기록하는 이가 절박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바울은 그 믿음이 이미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다고 313절이 기록합니다. 엘리야의 광야에서,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속에서 대면했어야 하는 850명에 대한 자신의 폭력에 대한 성찰에서, 죽고 싶었던 로뎀나무 아래에서의 절망 속에서 버텨내고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가 받은 저주를 보고 속량하심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믿음 있는 답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 전 잘 보이지 않는 여러 차선의 고속도로를 폭우 속에서 달려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곧 대학에 가야할 딸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기에 아이에게 폭우 속의 도로가 비가 내리지 않을 때와 얼마나 달라지는지 잘 관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녀석도 곧 운전을 하게 될 터이니 말이지요.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더 이상 차선의 구분이 없어진 상태에서 내가 앞으로 달릴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차들의 뒷면에 밝혀진 붉은 등들을 의지하여 차 간의 간격을 가늠하는 것 밖에 없다는 설명을 해주며 문뜩 고속도로 위의 모든 차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폭우는 우리의 다름과 경계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모든 차의 속도와 거리를 평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게 만들었더군요. 이를 보며 딸이 말합니다. “이 비가 그칠 때까지 우리는 운명 공동체이네요.”바울이 말하는 너와 나, 유대인과 그리스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허무는 믿음이 혹시 폭우 아래 함께 취약해진 상태에서 서로 의지하는 이런 모습으로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믿음이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