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출 17:1~7, 롬 5:1~11, 요 4:5~42)
2023.05.12. 사순절 셋째 주일 / 청년 주일
[평화의 순례, 약속의 발걸음]
지난 2주간 ‘DMZ평화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기장 평화공동체운동본부에서 마련한 이 사순절 행사에는 백여 명의 교단 목회자가 참여하여, 서쪽 강화도에서 동쪽 고성까지 하루에 이십여 킬로미터를 걷고 때로는 차로 이동하면서 순례를 이어갔습니다.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DMZ 인근에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세워져 있는 수많은 전적비에서는 수십만의 억울한 목숨을 보게 됩니다. 지난 수요일, 양구를 지날 때 도솔산을 넘어 해안면으로 내려가는 산기슭에서는 ‘피의 능선’으로 불리는 격전지를 보았습니다. 움푹 파인 지형 때문에 펀치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정전협정이 진행되던 1951년 여름 수만 명의 병사가 치열한 전투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원치 않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은 그들이 만일 되살아난다면 다시는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오늘 현실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현 정부 들어 대결과 적대의식이 노골적으로 조장되고, 우리 사회 곳곳에 내면화한 갈등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습니다. 특히, 내일부터는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됩니다. 이런 전쟁연습은 정전상태에 있는 분단국가에서 해서는 안 될 악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현실에 익숙해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화를 말하다가도 금세 전쟁의 분위기로 빠져들곤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한 사회학자는 ‘냉전 자본주의’라고 표현합니다. (김동춘, 전쟁과 사회, 53) 분단과 전쟁이 심어놓은 폭력의 순환구조가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기에, 평화를 말하지만, 뿌리 깊은 원한과 상처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과 분단체제의 폭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혐오와 대결의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으며, 약자의 비참과 소수자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마치 생존의 기술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죄악의 사슬에 묶인 것처럼 아직 평화의 과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측은히 여기신다면, 과연 어떤 약속을 주실지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약속을 안고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묻게 됩니다.
우리는 선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제도로 정착한 구조적인 악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런 상황을 ‘원죄’(original sin)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원죄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동의하거나 행동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 자체가 죄악의 구조에 깊이 연루된 현실을 의미합니다. (마조리 H. Suchocki, 폭력에로의 타락, 144)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롬 7:21~24)
하지만, 바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5:21)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비록 죄의 법에 묶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죄악의 현실은 어둠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을 향한 믿음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여성신학자 마조리 수하키는 역사를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은총의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에서 풀려날 때, 현재의 고통에 공감할 때, 미래를 새롭게 상상할 때입니다. (Suchocki, 폭력에로의 타락, 67) 과거가 정의롭게 기억될 때 과거의 폭력이 반복되지 않으며, 현재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할 때 사회적 한계를 극복해갈 힘을 모을 수 있으며,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통해서 다른 세계를 열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재구성이라고 하겠는데,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성서 본문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므리바 사건의 기억 / 출애굽기 17장 1~17절]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므리바 이야기는 출애굽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기적 사건에 관한 과거의 기억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유를 찾아 이집트를 탈출한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하던 도중 마실 물이 없자 불평합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가족들과 가축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습니다. 절망한 모세가 부르짖자, 하나님은 해결책을 알려주십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말씀을 따라 했더니, 반석에서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모두가 물을 마시고 갈증을 씻어냅니다.
이 이야기는 원래 목마른 백성이 바위에서 물을 얻은 축복과 기적의 사건에 관한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을 겪은 광야의 사람들은 죽다가 살아난 놀라운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손들에게 들려주었겠지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성서가 기록되었을 때, 이 이야기는 다른 기억으로 재구성되어 전해집니다. 목마른 광야에서 물을 얻게 된 그 사건은 기적과 축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므리바’에 관한 이야기는 제1성서에 모두 열 번 나오는데, 그중 아홉 번이 하나님을 시험한 장소로 기억됩니다. 결국, 므리바에서 기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민 20:12),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모세 또한 이 므리바 사건에서 했던 행동 때문에 가고 싶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성서는 기억합니다. (신 32:5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인이 되게 하고 정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빠져들고, 기적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성서는 그것을 경고하며 므리바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자유인이 되고자 했던 출애굽 백성은 고난으로 채워진 광야에서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 기억을 기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관한 것이었다고 경고합니다.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시 95:8)
기억이란 단지 모든 과거의 암기가 아닙니다. 기억에는 선택적인 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욕망과 증오로 기억되는 과거에는 자신을 살릴 생명의 순간에 대한 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여 들려줍니다. 노예살이에 젖은 사람들이 만족한 기적에 관한 기억 대신,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셨는지에 관한 기억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16살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함께 갇힌 어머니와 세 여동생은 모두 살해당하고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잊지 않았고 그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평화의 동력을 끌어냅니다. 그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진실하고 정의로운 기억, 화해를 추구하는 기억으로 재구성됩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는 사람은 과거의 기억에 생명의 빛이 깃들게 합니다. 그것이 고난을 겪는 세계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의 초대 / 요한복음 4장 5~42절]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수가(Sychar)라는 지역에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대결의식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에게 이방인의 땅보다 더 적대감을 주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고단한 삶을 사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물을 길으러 ‘야곱의 우물’로 갔다가 만난 낯선 남자로부터 물을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노동에 지치고 관습에 매인 그녀는 그 부탁을 거절합니다.
예수는 그녀를 대화로 초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 목마르지 않을 생수, 영생에 이르게 할 샘물에 관한 것입니다. 대화가 차츰 깊어지자 여인은 자기 안에서 솟아오르는 참된 삶의 열망을 보입니다. 예수는 그녀에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에 관해 말해줍니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해준 분을 통해서 눈을 뜬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예수에 관한 소식을 전합니다. 율법과 관습이 더는 그녀의 삶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목마르지 않은 샘물을 마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삶에 지친 그녀의 현실을 새롭게 인도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통의 현실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약속을 얻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그 약속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신비한 영적인 변화가 제자들에게는 분명치 않았던 것으로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육의 양식에 집착하며 스승과의 대화에서 엇갈립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먹어야 할 양식과 마셔야 할 물에 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은 영생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삶, 씨를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홀로 승리하여 자신만 생존하는 삶이 아닙니다. 아무리 광야와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목마른 만큼 이웃의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생명과 평화의 삶을 지어가야 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성서가 말하는 광야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남과 북의 깊은 증오로 갈라진 그 세계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재촉합니다. 그것이 현실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부어질 희망의 약속 / 로마서 5장 1~11절]
바울의 이야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갖는 길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길과는 다른 믿음의 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1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2절), 하나님과 화해하는 삶을 사는 길입니다 (11절).
모든 삶에는 여러 모양의 환난이 다가옵니다. 바울은 그 속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환난 속에 길이 있음을 바라보며, 환난 속에서 인내를, 인내를 통해서 단련된 인격을, 그 인격에 담길 굳센 희망에 관해서 말합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구성해가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희망으로 삼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5)
오늘 우리는 어떤 약속을 안고 있나요? 우리 시대는 어떤 믿음의 약속을 세워가고 있나요? 비록 우리 사회가 피를 뿌리며 가꾸어 온 ‘자유와 정의’의 언어가 오염당해 있을지라도, 미래는 절대 잠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음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울이 가진 하늘의 약속이요, 오늘 우리가 가질 주님의 약속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진통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광화문 거리는 좌우의 대결로 얼룩져있고, 우리의 시대는 갈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약속을 안고 믿음의 순례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가며 새순이 돋는 봄이 가까이 왔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 우리 모두 사순절의 순례를 삶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주님의 약속을 안고 믿음의 순례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예수가 주는 물을 마시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발걸음을 걸어갑니다. 고난을 겪을 때는 인내합시다. 그 속에서 삶을 단련하고 희망을 굳게 세워갑시다. 주님의 약속이 우리 모두의 삶을 이끌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