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부활과 4.16 ㅣ 김경호 ㅣ 2023-04-16

by 김지목 posted Apr 23, 2023 Views 94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3-04-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러나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나의 백성아! 집으로 가서, 방 안으로 들어가거라.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의 진노가 풀릴 때까지 잠시 숨어 있어라." 주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니, 그 때에 땅은 그 속에 스며든 피를 드러낼 것이며 살해당한 사람들을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26:19-21)

 

예수께서는 다시 큰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그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πολλα σωματα των κεκοιμημενων αγιων ηγερθη)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마태 27:50-54)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것인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고전 15:51-53).

 

몸의 부활과 4.16 / 김경호 목사

 

오늘이 4.16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해는 그 사고 이후 처음 맞는 주일이 바로 부활주일이었다. 절대로 기뻐할 수 없는 가장 슬픔에 잠긴 부활주일이었다. 올해는 부활절 둘째주일인데 부활의 의미와 세월호 사건을 연결해서 살펴보겠다.

 

부활장으로 알려진 고전 15장에는 여러 가지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집대성 해 놓았다. 서로 다른 부활의 개념들이 혼재해 있다.

 

첫째, 초월적 부활이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절대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습니까?(고전 15:29)

 

이것은 죽음 후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세계로 부름 받는 것을 말한다. 대개 장례식 때 말하는 부활은 이런 종류다.

 

둘째, 실존적 부활이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 15:31).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를 위하여 늘 몸을 죽음에 내맡깁니다. (고후4:10-12)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또 생활 속에서 누리는 부활이다. 바울은 날마다 죽으면서 산다.”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예수의 삶을 기준으로 매일 자기를 돌보고 성찰하는 신앙이다.

 

셋째, 역사-사회적 부활이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들인데 집단의 부활이고 박해상황에서 희생당한 이들이 다시 살아오는 부활이다. 특히 구약성서의 부활에 대한 증언은 역사의 불의가 바로 잡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회복되는 부활이다. 우리가 죽으면 낚시질 하듯이 바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모두 잠잔다고 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릴 때 우리는 집단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집단의 부활이며, 역사의 임계점이 이르러 마침내 폭발하듯 일어나는 사회가 변혁하는 부활이다.

 

고전 15장에 여러 성격의 부활이 혼재해 있지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집단의 부활이고 고린도전서의 표현대로하면 몸의 부활이다. 몸의 부활이라는 표현은 당시 희랍신앙에 대항하기 위한 언어다. 희랍의 신앙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어서 없어지지만 그동안 몸속에 갇혀있던 영혼은 자유를 얻어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깔끔하다. 그러나 무덤에서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는데 그들이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은 난해하다. 그러나 구약 성서의 부활에 대한 본문들을 보면 그것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드러난다.

 

자신들의 집과 땅을 빼앗긴 사람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 그들이 흘린 피가 그 땅에서 드러나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도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는 억울함도 없이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함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 나라는 집단으로 성취되며, 미래로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전 15장은 몸의 부활을 말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할 때 아이들이 고래를 타고 그 광장에 합류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바로 그것이 몸의 부활이다. 아이들이 다시 살아와 지금 안전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시민들에게 합류하는 꿈이다. 아이들이 새 역사의 주역이되는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 큰 날개를 단 천사의 품에 안기거나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염이 긴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다면 그것은 초월한 부활, 저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는 부활일 것이다. 그러나 고전15장의 부활장이 강조하는 것은 그런 부활이 아니다. 죽어서 천당가는 부활, 초월한 부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영역 속에 있다.

 

부활절 그림 중에 가장 흔한 그림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고 예루살렘 건너 편 올리브 산에 묻혀있는 성도들에게 손을 들어 일어날 것을 명하시니 모든 무덤이 열리고 흰 옷 입은 성도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부활도 바로 이 집단적인 부활 바울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몸의 부활로 표현한 집단적인 부활을 의미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실존적인 부활과 세 번째의 부활, 이 사회가 집단적으로 변화는 집단적인 부활이다. 그 때 그동안 고통과 억압으로 그 몸이 비틀어지고 이지러진 사람들, 피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모든 몸들이 다시 건강한 몸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들이 우리들 앞에 나서서 새 세상을 여는 주인들이 되어 이 땅의 민중들, 그들의 지치고 이그러진 몸들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몸의 부활이다.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열정, 다시는 억울한 사고가 없는 안전한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꿈들은 잠자고 있다. 지금은 비록 무덤 속이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다.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지금 심장은 뛰고 있고 움직이고 있다. 생명의 고동이 맥박치고 있다. 지금 무덤과 같은 세상 속에, 인내심도 고갈되고 영원히 진실은 땅에 묻혀버릴 것 같지만, 언젠가 이 역사의 나팔소리가 울려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때 우리들은 모두 함께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날은 홍근수 목사님도, 안병무 선생님도, 임보라 목사도, 물론 우리들도 함께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분들이 다시 옛 몸을 입고 나타나는 것은 하늘 위에서 일어날 일이지만, 이 땅에서는 수많은 홍근수, 안병무, 임보라들이 나와서 그들이 외치던 세상을 활짝 펼쳐나가는 집단적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어느날 홀연히 나팔소리가 울려 날 때, 그들의 숨결과 심장의 열기가 우리의 몸속에 꿈틀거려 함께 폭발되어 이 땅에 모든 몸들과 함께 덩달아 춤추게 될 것이다.

 

제가 세월호에 대해서 간단한 글을 써보았다. 향린국악찬송 가사로 낸 글인데 써 놓고 보니 역시 목사글이라 노랫말이라기 보다는 설교조/ 그래서 노랫 보다는 설교에서 읽고 끝내는 것이 낫겠다.

 

남겨진 뱃머리에 망치소리 울리고 / 길잃은 갈매기만 빈하늘을 날아간다

황금의 우상들은 조용하라 기다리라하나/ 묻어버린 진실들은 부메랑되어 돌아오리

 

영문도 모르는채 보낼수는 없다고 / 가슴에 얼굴안고 길거리를 맴돌았다

권력의 우상들은 잊으라 묻어두라하나/ 멈추지 않는 외침은 역사로 살아나리

 

세월은 흐르는데 그리움은 날로더해 / 꿈으로 만난설렘 먼산보며 식혀본다

일상의 분주함은 그만하자 지나치자하나/ 잊혀지지 않은 말씀은 계시되어 밝혀주리

 

세월호 참사는 보수정권이건 진보정권이건 흐지부지 하더니 드디어 10.29 참사로 돌아왔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의 대표인 이종철 씨는 아들 이지한 군에 대해 회상한다. 이지한 군은 MBC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차기작에는 주연을 맡기로 되어있어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뜻 밖의 소식에 가족 모두가 희망을 잃었다. 그래서 다 같이 죽자고 하던 때에 민변의 변호사들이 도움을 주었고 가족 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랬더니 이 정부 관계자들을 사건을 묻어 두려고만 하다가 왜 하필 그런 사람들과 손을 잡았느냐고 불손하다고 난리이다. 이종철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이 다 함께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 유일하게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이 진보적인 기독교였고 민변이었다. 만약 북의 김정은 이라도 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그 손을 잡아서 건져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당시는 대면조차 거부하고 철저하게 무시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건 당시 이소연 양은 가족이 달려와서 5미터 정도 앞에서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경찰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접근을 막았다.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못들어 가게 하더니 그 후로 16시간이 지난 후에 평택에서 그 시신을 찾았다. 세월호에서 묻어버린 진실들은 부메랑되어 돌아온다

 

 

부활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주님께서 다시 살리시는 은총이다. 조금도 자기에게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는 부활도 없다. 죽음을 부득불 당하는 사람이 있고, 죽음을 넘어 이미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 믿음의 자매 형제들은 매일 스스로를 죽여가며 늘 새로운 세상을 앞당겨 살아가는 부활의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몸이 완전한 부활로, 모든 민중의 자유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 우리 모두 함께 어께 걸고 춤추며 부활의 축제를 맞이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