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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불확실성의 바다 ㅣ 김정현 ㅣ 2023-09-17

by 정현 posted Sep 23, 2023 Views 9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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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09-17

불확실성의 바다

(창조절 셋째 주일, 기후정의주일 / 출애굽기 14:19-31, 로마서 14:1-12, 마태복음 18:21-35)

 

  안녕하세요. 어느덧 무덥던 날씨가 조금 풀이 죽고, 아침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저는 이렇게 날이 선선한 날에는 자전거를 타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번 주에는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2021년에 발매한 영원한 사랑이라는 앨범을 쭉 들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스러져가고, 때로는 파멸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해도 사랑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 끝까지 남아 우리를 지켜준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기저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깔려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느 순간 음침하게 타락하거나 혹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2000년대 이후로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책 파라다이스’ 2권에서 재밌는 상상을 펼칩니다. 대기업의 자본력이 국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세상이 도래해서, 기존 국가의 역할이 해체되고 전 세계적으로 기업 국가체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서는 디즈니국이 플로리다 지역에 실버타운을 만들어 관리하고, 펩시국과 코카콜라국은 콜라의 원료를 두고 용병을 고용해 전쟁을 벌입니다. 애플국과 마이크로소프트국은 다른 행성을 우선 점거하기 위해 대규모 우주 함대를 만들어 우주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다뤄지진 않았지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삼성국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스갯거리로 넘길 수도 있는 상상 속의 이야기면서도, 어쩌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은 뼈아픈 상상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세계를 살아가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 자본주의 체계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암울한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저 또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청년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을 남들에게 묘사할 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는 표현을 종종 합니다. 청년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대학에 가거나 사업을 시작하며, 또는 집을 구하기 위해 각종 대출을 받으며 채무에 시달리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불안한 노동시장과 가혹한 노동환경에 몸을 던집니다. 당장 눈앞의 빚을 갚으려면 이것쯤은 잘 참고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몸과 마음의 병을 얻기 일쑤입니다.

  자본주의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성장과 개발의 생존방식은 잔인합니다. 그 잔인한 습성은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비인간 동물과 식물들에도 미칩니다. 그리고 그 죗값을 치르듯,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이례적인 재난 상황을 유달리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산불과 산사태가 덮치고, 집과 도로가 물에 잠기고, 폭염과 태풍이 닥쳐옵니다. 위험을 초래할 줄만 알았지, 책임질 줄을 몰랐던 인간은 닥쳐온 재난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재난 상황은 제1성서에 등장하는 이집트의 정치 현실과 겹쳐 보입니다. 파라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긴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의 의무와 소명을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이집트의 정치 환경은 곧장 파라오의 욕망에 따라 재편되었습니다. 강제노동과 인권유린 위에 기반을 둔 파라오의 도시 계획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됩니다. 일종의 산업사회를 꾸리려는 파라오의 폭주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고혈을 쥐어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치 파라오의 폭력을 드러내듯, 나일강이 피로 뒤덮입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여태 겪어보지 못한 이례적인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수차례 이집트를 강타합니다. 결국 생명이 눈앞에서 스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파라오는 그의 고집을 잠시 꺾습니다.

  이 유명한 성서의 이야기가 우리가 오늘날 겪는 일과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파라오에게는 재앙을 돌이킬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재앙을 돌이킬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 IPCC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전 인류에게 강력한 경고와 협력을 촉구합니다. 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 중 작년 4월에 승인된 제3 실무그룹 보고서에서는 당시로부터 30개월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지 않으면, 1.5지구온난화 제한 목표를 달성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작년 4월로부터 30개월이었으니 이제 약 1년 정도가 남은 셈입니다. 하지만 왠지 우리도 파라오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 명백하게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테지만, 그러면 참 쉽고 편하겠지만, 정직하게 돌아보면 사실은 내가 바로 그 가해자인지도 모릅니다. 전선이 명확하지 않아 복잡하고 비루한 싸움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 본문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 내용에는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 아니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조언과 함께 예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 비유 속에는 너 자신도 용서받은 사람임을 기억하라라는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간 제가 살아오며 저질렀던 바보 같은 실수와 잘못들이 떠오릅니다. 기후 위기에 관해서도 떳떳한 마음보단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매번 다른 신경 쓸 것이 많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침묵하고, 방관했던 세월이 길었습니다. 마치 용서받고 난 뒤 돌아서서 자기 잇속을 챙기던 종처럼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복잡한 불안과 자기 후회의 혼란 속에서 때로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적 냉소를 내뱉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어차피 망한 세상 편하게 살다 가자라는 식의 말입니다. 저는 이런 냉소야말로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이런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독일의 활동가인 디르크 슈테펜스와 프리츠 하베쿠스의 책 인간의 종말에서는 멸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제합니다. 책의 내용에 의하면 이미 지구 생물 역사상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이어서 일어나게 될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류가 살아가는 지금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어차피 망한 세상이란 말은 맞는 말입니다. 다만 이 대멸종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맘 편히 소비하고 낭비하며 살다 갈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모든 인류가 이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남은 생애 동안 아주 고통스럽고 다양한 재난을 직면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해마다 겪는 재해들이 더 무서운 얼굴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일련의 기후 위기에 저항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종의 보전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이기심을 인간이 가진 본성으로 인식하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의 생태 보전 행위가 고작 이기적인 욕망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고 분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가장 먼저 멸종을 마주할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라는 점입니다. 해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기후 난민, 식수의 고갈로 고통받는 사람들, 온갖 종류의 오염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지하에 살다가 수해를 당하고, 폭염에 시달리며 과한 노동을 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체제가 견고하게 남아있는 한,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은 허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체제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마 꽤 많은 부분이 불편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 불편함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현실에 안주해서 살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찾아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추상적인 각오는 쉽지만, 실질적인 불편 앞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고개를 치켜들기 때문입니다.

  랭던 길키라는 미국의 신학자는 산둥 수용소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북경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저자는 일본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수용소가 내부의 생활공간이 비좁다 보니, 비교적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자는 그들의 도덕적인 수준을 기대하며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당시 중국에 거류하던 서양인들은 모두 중산층 이상으로 사업가나, 의사, 선교사, 변호사 등의 존경받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단 몇 평을 내어주지 못하겠다고 저자를 거칠게 내쫓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일을 상기하며 위기에 처한 인간에게서 그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가장 실재적인 본성이 드러난다는 점을 씁쓸하게 서술합니다.

  어두운 인간의 본성 앞에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빛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제1성서의 출애굽기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감하게 이집트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윤과 성장을 목표로 한 채 생명을 착취하는 파라오의 도시를 등져야 합니다. 물론 그 앞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드넓은 바다입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불확실성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그곳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설령 그 바다를 운 좋게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수십 년간의 떠돌이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그 발을 디뎌야 합니다.

  시 한 편을 읽으며 하늘 뜻 펴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의 날씨

김해자

 

오늘의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매우 춥겠는데요, 오후부터 동쪽은 중국을 중심으로 폭우가 내리고 곳에 따라 사과만 한 우박이 쏟아지겠습니다. 해일이 덮쳐 물바다가 된 도시로 배와 고래가 헤엄쳐 다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쪽은 태풍과 토네이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후에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겠습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북반구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져 건물이 얼어 고드름처럼 떨어져 내리겠으며, 항온동물은 밖으로 나오는 즉시 얼어버릴 염려가 있으므로 강아지나 고양이는 외출을 삼가시길 바랍니다.

 

내일의 날씨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밤 날씨로 인해 내일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 지표면이 바뀔 수도 있으니, 각자 알아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건물과 아파트가 너무 많아 고민인 분은 오늘 집 없는 사람들에게 싼값에 세를 주시고, 등락 폭이 높은 주식과 가상화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분들은 오늘 내로 안심과 단잠 쿠폰으로 교환하시길 권유합니다.

 

돈을 시간과 바꿀 시간은 오늘밖에 없으니, 부디 오늘 내로 시간을 구입해서 친구들과 나누고 함께 먹고 즐기시길 바라며, 전기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자정 즈음이면 사지가 얼어 심장이 정지할 수도 있으니, 지식과 지폐를 태우거나 서로의 가슴을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날씨 예보였습니다.

 

[파송사]

불확실성의 바다로 떠납시다번영과 개발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그곳에서 등을 돌려 한 발 내딛기조차 두려운 불확실의 세계로 떠납시다그곳에는 주님의 자유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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