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라 세우리라” | 이덕주 | 2023-10-29

by 박정범 posted Nov 04, 2023 Views 13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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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20231029 창조절9, 교회개혁주일

 

허물어라 세우리라

시편 311-8,로마서 18-17, 요한복음서 213-22

 

이덕주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이미 헤롯 임금이 46년 동안 짓고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보십니다. 이제 곧 완공을 눈앞에 둔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참 웅장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그런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나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 오히려 솔로몬의 성전 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은 헤롯이 자기 자신의 콤플렉스 혈통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떤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그러한 정통성에 문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과장해서 더 크고 화려하게 성전을 지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으로 백성들의 지지와 백성들의 호응을 받고자 했던 게 그의 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그 성전은 완공되자마자 바로 로마군의 침략을 받아서 AD 70년에 완전히 무너져 지금의 이르게 되었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성전을 둘러보실 때 많은 제자들이 이 성전이 완공되면 무너졌던 우리의 자존심 이스라엘 민족에 이 식민통지를 받는 저희들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그런 웅장한 하나의 건축물이 되지 않을까 하고 칭송 일변도로 고했지만 우리 주님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않고 무너질 것이다.’ 예언을 하셨습니다. 세워지는 성전을 보고 주님은 무너질 것을 예언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항의하러 온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앞에서 너희가 헐라 내가 세우리라주어가 다르지요. ‘너희가 헐라, 내가 세우리라’ 2000년의 교회 역사를 보면 항상 세워지는 교회가 있으면은 무너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 이어진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이스라엘 망한 후에도 기독교 2천여 역사를 보면은 항상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지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세워지는 역사를 반복합니다. 영원불멸한 교회 건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에서 부터 욕망에 바벨탑이 무너지면 바로 믿음의 노아의 방주를 세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기복에 산당, 모리아 산당이 허물어진 그 자리에 시장에 제단이 세워지죠. 예수님이 강도의 굴혈이라 표현했던 그 성전이 무너진 그 자리에 기도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육체 일을 소멸시키면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서와 이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여 주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걸 위주로 이루어진 성전과 교회는 반드시 무너진다,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 반복 되어 있었던 것이죠. 오늘날 이 시점에도 정욕의 목회자가 무너지면, 청빈의 성직자가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죠. 육적인 교회가 무너지면 영적인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를 성서와 기독교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우연히 한번 언제 무너지고 언제 세워지나 했더니 500년 주기로 그것이 이뤄지는 것을 저는 발견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지 정확하게 500년 만에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그 성전은 처참하게 붕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스룹바벨에 의해서 그 성전이 세워지고 이제 500년 세월이 지난 다음 이제 헤롯에 의해서 또다시 성전이 세워진다. 스룹바벨의 성전은 그리스 로마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서 철저하게 파괴가 됐었죠. 헤롯이 지은 성전도 완공을 보지 못하고 파괴됩니다. 그 후에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던 로마, 그 로마가 제2의 예루살렘 역할을 했는데 6세기에 롬바르드족 고트족 그런 이교도들에 의해 처참하게 붕괴가 됩니다. 이 로마 성전의 붕괴는 많은 신학자들 교회 지도자들에게 충격 가져다 주었지만, 그때 어거스틴 그리고 그레고리 1세는 그동안 교회가 보이는 교회를 지으려고 너무 애를 썼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 그걸 다시 세워야 된다 해서 증세 가톨릭 교회가 세워지죠. 그것이 500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 깔뱅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중세 가톨릭 교회는 다시 한번 무너집니다.

 

종교개혁이 있은 후, 5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지난 2017, 전 세계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와 사역을 했지만, 그저 조용하게 지나 갔습니다. 그렇다고 하면은 결국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어떤 운명을 간직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 교회가 아니라고 많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사 공부하는데 공부하다 보면 참 우리 한민족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제일 늦게 받아들인 나라인데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불과 130년에 압축해서 경험한 것이 우리 민족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순교와 박해의 역사, 한국교회가 경험했습니다. 부흥과 성장의 역사 한국교회가 경험했습니다. 전도와 선교의 역사 한국교회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통과 이단의 역사, 한국교회만큼 종교재판을 많이 한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 하나만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근본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종교개혁의 역사 그래서 저는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지금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순교와 박해가 아니요, 부흥과 성장도 아니요, 전도와 선교도 아니요, 정통과 이단 종교 재판도 아니요, 종교개혁이다.

 

물론 그동안 종교개혁은 설교한 목회자들도 많고 가르친 교수들도 많았지만 또 많은 저술들이 나왔지만 진정으로 진정으로 진정으로 입이 아니라 삶으로 머리가 아니라 영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교개혁 역사가 한국교회에 있었는가? 그래서 저는 신학생들에게 얘기를 합니다. 제군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나갈 때 제군들의 눈앞에는 무너지는 교회의 샘플과 세워지는 교회 샘플이 있을 것입니다. 무너지는 교회 샘플은 단순합니다. 과시합니다. 돈으로 쳐 바릅니다. 건물을 중시합니다. 조직을 중시합니다. 사업을 중시합니다. 저희들은 눈에 보이는 그것을 그 가치관을 추구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세워지는 교회,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 형식과 포장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중요시하는 교회입니다. 육으로 과시하는 교회 아니라 영으로 두려워하는 교회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어떤 사역을 알지 어느 교회에서 봉사할 지는 여러분이 결정을 할 것입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 3대 죄악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성직매매와 성직자의 윤리적인 타락과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의 결탁,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병폐가 되고 있는 것이죠. 바로 그럴 때, 바로 1517, 루터를 하나님은 택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쓰임을 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죠.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15171031, 만성전 전날, 비텐베르크 성전에서 그때 당시에 교회가 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95가지 제목으로 항의하고 질문했던 그 발제문 그것을 시작한 날이죠. 루터는 항상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러난 성서의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교황의 적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가난하고 비천한 농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성경에 대해서 잘 아는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당시 타락한 교회 권력의 상징인 교황의 적이 되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이죠.

 

제가 다행히 루터의 종교개혁 성지를 순례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과거의 동독 지역이었던 그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주로 생활하였던 곳은 아이슬레벤입니다. 아이슬레벤은 원래 그의 고향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너무 가난해서 농로로 살다가 너무 가난해서 이대로는 내가 우리 가족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생각해서 북쪽에 있는 탄광 동네로 그래서 광산 지역으로 노동자로 삶의 자리를 옮겨 가는 과정에서 만삭이 된 그의 엄마 한나가 아이슬레벤 여관방에서 루터를 생산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길 가던 중에 예수님처럼 여행 중에 여관방에서 출생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유아세례를 받죠. 그리고선 이제 광산 지역에 가서 노동을 부모님이 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꿈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들만큼은 출세시켜야 되겠다. 아들만큼은 가난을 대물림 해서는 안 되겠다 해서 10대 소년을 이제 아이제나흐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래서 10대 소년부터 유학을 하면서 라틴어를 공부하고, 그리고 에어푸르트 작섹지역의 최고의 명문 에어푸르트 대학에 입학을 시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 아이제나흐 에어푸르트 대학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그 아버지는 얼마나 희망에 부풀렀는지 모릅니다. 이제 분명히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서 의학을 아니면 법학을 전공해서 의사나 판사가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할 원래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법과대학원 로스쿨로 진학하려 그랬던 그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에어푸르트로 돌아오는 도중에 천둥 번개 체험을 하죠. 그래서 천둥번개 속에서 '하나님 나, 사제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학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게 유명한 천둥번개 체험이죠.

 

과연 스무살 된 그 대학 졸업생이 천둥 번개가 무서워서 천사를 부르면서 자기가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사가 되겠다고 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0대 소년 때부터 외지 생활하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중세 말기 타락한 교회, 타락한 대학 생활, 타락한 성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기숙사 선배들이 보여 주는 음주문화, 성매매 문화, 이런 문화 속에서 루터는 그런 유혹과 도전 속에서 바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 윤리적인 문제로 고민을 하기 시작 했겠죠. 이제 자기가 검사나 판사가 되어서 결국엔 해야 할 일은 죄인들을 심판하는 일인데, 그것은 육체적으로 드러난 죄를 심판하는 것이지만 이제 대학을 다니면서 생각해보니 행위로 드러난 죄보다 무서운 것이 심령의 죄요, 마음속에 숨겨진 죄라는 것, 이것은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분노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고, 관음을 정죄하기 전에 음욕을 다스려야 하는 그래서 이것은 내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고민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는 그의 아버지의 뜻대로 법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윤리적인 문제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겠죠. 그러다 천둥 번개 그 소리를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그렇게 해서 수도원 아우구스투스 어거스틴 수도회에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이후 아들 얼굴 보지 않았답니다. 법관으로 출세할 것을 기대했던 아들이 가난한 수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그 아버지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때부터 치열하게 윤리적인 문제 죄의 문제 의의 문제 구원의 문제 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천착합니다. 끊임없이 그래서 수시로 금식하고 금욕생활을 하면서 로마까지 걸어서 도보로 마지막 성베드로성당은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면서 이런 선행을 통하여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그 의를 경험하고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작센 제후의 신임을 받아 비텐베르크 영주가 거주하는 그 성채교회 담임자로 파송을 받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의 이 젊은 수도자는 종교를 통해서 출세하는 길이 열린 것이겠죠.

 

저도 비텐베르크에 가 봤습니다. 바로 비텐베르크 성채 문에 95가지 면죄부를 파는 가톨릭교회의 죄상을 공표하는 95가지 죄목을 붙였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죠. 저는 처음 비텐베르크 성전에 가서 봤을 때, 물론 백년전쟁때 다 파괴가 되어서 그 후에 복원이 됐다고는 하지만 바깥에서 본 비텐베르크 성채 정문은 철문이었습니다.

 

제가 배울 때는 루터가 95가지 질의서를 종이에 적어가지고 그것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망치질을 해서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렇게 선생님들한테 배웠습니다. 그런 상식을 가지고 비텐베르크 현장에 갔더니 저 철문에 어떻게 망치를 박았을까? 고민이 되더라구요.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화려함이 그대로 보이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루터 기념교회로 명명되었기 때문에 그의 부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곳에 그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저는 무덤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저 사과 박스 하나 정도 될 자그마한 소박하기 짝이 없는 그 무덤은 바로 그가 설교하던 설교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 목회자들이 죽을 자리는 자기가 설교하는 그 자리다. 오늘 우리는 황성규 목사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도 화려한 그렇게 해서 뭐 이름을 내고 적지 않은 한신대 교수들이 총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내고 실제적으로 정치하는 목사님들 많이 나왔고 그러나 황 목사님 그런 분은 아니었습니다. 자주는 뵙지 못했지만 늘 겸손하시고 늘 조용하시고, 당신이 전하는 말씀을 생활로 보여주려고 애를 쓰셨던 그런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루터의 무덤을 보면서 목사로서 마지막 자리가 어딜까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치고 나오려는데 어떤 관광객들이 그 정문 안쪽에 나무에 뭐가 붙어 있는걸 자꾸만 보고 있어요. 그게 뭔가 가까이 가서 봤더니 바로 루터가 작성한 95개조 반박서를 프린트 해 가지고 복제품을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는데 그게 바로 그 문 안에 붙어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밖에서는 철문이었지만 안에는 나무인데, 나무문에 불화살을 막기 위해서 바깥에 철을 대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럼 15171030일 만성전 전날, 만성절 “All Saints' Day” 인데 가톨릭 교회에서 제일 큰 행사, 성탄절 보다 더 큰 명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때는 하늘에서 내려와서 성도들을 축복해 준다고 여기기 때문에 1년 내내 교회 안 나오던 사람들도 만성절날에는 꼭 옵니다. 복 받으려고. 그게 면죄부 상인들에게는 대목 장날이죠. 그렇게 해서 이 면죄부 판매상들이 비텐베르크에 몰려오는 그 시간에 맞춰서 루터는 면죄부가 왜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지금 교회가 잘 못 가고 있는지를 그렇게 해서 95가지 질의서를 적어서 교회 문에 붙였던 것이죠.

 

95가지 질의서를 교회밖에 붙였을까? 문 안에 붙였을까 이것이 저에게 던져진 질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문 밖에 붙였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현장에 가서 보면서 문 밖에 붙였을까 문 안에 붙였을까 밖에 붙이는 것과 안에 붙이는 것은 독자를 누구로 염두했냐는 것인데 누구에게 읽힐려고 루터는 그것을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16세기 독일의 문맹률은 80%였습니다. 괴테 이후에 독일어가 발전되었지만 문자로서의 독일어는 없었습니다. 그 때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라틴어로 해독할 수 있는 10% 미만에 전문가들밖에 없었습니다. 루터는 독일어로 쓰지 않았습니다. 라틴어로 썼습니다. 루터는 95가지 질의서를 세상을 향하여 쓴 것이 아니라 내 강의를 듣는 신학생들 나와 같은 수도자들 사제들에게 쓴 겁니다. 우리가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향한 질책 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향한 채찍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나 세상을 향하여 정의를 요구하기 전에 내 안에 과연 의가 있는가? 세상을 향하여 지적하기 전에 내게 과연 깨끗함이 있는가?

 

루터가 잘 알고 루터가 했던 아우구스투스 수도원 지금은 루터 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제가 저 종탑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루터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저 빌딩에서 같이 수도 생활을 하면서 신학교 강의를 했습니다. 루터는 법관이 된 걸 포기하고, 수도사가 된 뒤에 어거스틴 수도원 수도자로서 이제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를 담임할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수도회 지도 교수가 됩니다. 끊임없이 그는 수도자가 된 후에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금욕과 절제 생활을 했습니다. 철저하게 말씀대로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고 이것이 구원의 은총이 되고 이것이 바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오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허툴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에게 오는 가장 중요한 내적평화가 없었습니다. 내적평화, 내적평화. 그것은 그만 압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은 자, 의로운 자가 느낄 수 있는 이 내적평화가 그에겐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그런 의와 구원과 평화가 자기에게 임하기를 천둥번개 번개 체험을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는데 전 현장에 가서 느낀 게 비텐베르크에서 그런 95가지 발제문을 밝히기 5년 전에 바로 저 종탑에서 하루는 점심을 먹고 오후 강의를 준비하면서 종탑 꼭대기에 기도실이 있는데 그 기도실에 올라가서 묵상을 하며 기도하는 짧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낮 기도 시간에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보고 자기가 내려 온 것 같은 그런 체험이었습니다.

 

그는 그 날 오후 시편을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침에 읽은 말씀에는 여호와의 주님의 구원하는 능력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 옛날 개역 성경에는 '주의 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이 말씀이 루터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공의, 나의 정의, 내 의로움, 내가 착하게 살고 내가 의롭게 살면 그것이 구원으로 그것이 의로 연결 된 것으로 그래서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이죠.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읽으면서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요, 나의 공의가 아니라 주님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구원은 100% 주님의 의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자기가 했던 모든 번민과 고민이 사라지면서 내적평화가 임하는 것을 것을 느꼈습니다.

 

이거구나, 바로 이거구나 헌금 잘 하고, 봉사 잘 하고, 십일조 내고, 구제사업 많이 하고, 착한 일 많이 하고 이러면은 내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 그 표현이 그분이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거구나. 의는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구나.

 

 

그리고 한 달 후에는 로마서를 강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날도 역시 로마서 강해를 준비하다가 바로 117절 오직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믿음으로만 삽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에 대한 나의 믿음의 응답이 그것이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구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구나. 그때부터 그것을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제 비텐베르크에서 15171031일 그 일을 한 거죠. 그러니까 종교개혁은 15171031일 시작된 게 아니라 날짜를 알 수 없는 1512년 그 어느 여름 날, 말씀을 받는 그 순간에 개혁은 시작되었다.

 

그는 이건 바로 면죄부 상인들이 들고 다니던 헌금 상자입니다. 돈독에 찌든 교회 지도자들이 면죄부를 팔면서 거둬들인 돈 그것으로 교회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했더니 뭐 그런 것들 다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소환되죠. 로마에서 파견된 추기경단이 그를 고발합니다. 그래서 보름스에서 5년 후에 종교재판이 열리죠. 한쪽 편에는 그를 정죄하는 로마 교회에서 파견된 신학자들과 추기경들이 그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한, 루터가 그동안 썼던 저술둘과 팜플렛들과 했던 설교의 녹취록과 이런 것을 증거물로 내면서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고 교회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로 그를 고발합니다.

 

황제는 재판정에서 어떤 것을 할까? 빌라도의 입장이었습니다.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은 재판정에 한 명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오직 루터 혼자 빌라도 앞에 예수처럼 홀로 섰습니다. 이제 마지막 언도를 내리기 전에 황제는 그에게 기회를 줍니다.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네가 지금까지 언급하고 발설하고 저술한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없던 걸로 치고, 다시 사제와 수도원장 자리를 그리고 교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러나 여기가 마지막 여기서까지 네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파문, 그것은 교회밖으로 추방 그것은 죄인, 죄인 사냥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죄인이 되기 전, 바로 그 순간 루터가 했던 말이라죠.

 

물론 역사가들 사이에 진짜 했느냐 마느냐 하고 논쟁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많은 사람들이 재판정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판장도 그리고 그리고 고발하는 추기경도 보지 않았습니다.

 

"Hier, stehe Ich. Ich kann Nights anderes. Gott, Helfe mir."

 

나 여기 섰습니다. 나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하나님도 없어서 그는 하나님만 바라봤던 것입니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런 고백을 하고 나가는 루터 뒤에 파문 선언을 하죠. 그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정 밖으로 나오니까 수만의 군중들이 루터를 에워싸고 나는 당신의 의견을 동의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이 교회 권력에 대한 이 부정부패에 대한 여기에 쌓이고 쌓였던 이 모든 하소연을 당신이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를 사냥하려 했던 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군중들이 그를 에워싸서 루터의 생명을 구했죠.

 

이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망치를 두드리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세상을 향하여 정의를 외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내 설교를 듣고 내 강의를 듣는 우리 자신을 위한 처절한 찔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밖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는 것입니다.

 

 

나부터... 그 말씀 허물어라 허위가 무너지고, 정욕이 무너지고 바깥이 허물어질 때 내적인 것이 세워지고, 영적인 것이 회복되고, 그것이 바로 정의라, 너의 정의가 아니라 나의 정의가 세워지리라. 너희가 헐라, 내가 세우리라. 주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개혁의 역사 우리 향린교회에서 시작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