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 20240107 주현절1
“거룩한 혁명의 시작"
창1:1-5 시편29:1-11 행19:1-7 막1:4-11
오늘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였고 또 동시에 교회력에 따라 새로운 계절, 주현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주현절은 주님의 현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성탄절 이후 1월6일 주현일을 시작으로, 사순절 곧 예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까지 약 6주간의 기간이 주현절입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부터, 세 명의 제자들과 변모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던 시점까지,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의 그분의 삶과 구원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자는 의미로 매년 우리에게 주현절이 찾아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교 예배는 크게 “시간의 예배”와 “공간의 예배”로 구분합니다. 이것은 예술을 시간예술과 공간예술로 구분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소리와 같이 시간의 한정 안에서 이루지는 음악 또는 춤 등이 시간예술이고, 화폭이나 오부제와 같이 공간을 차지하여 이루지는 그림, 조각 등이 공간예술입니다.
이와같이 지금 이 시간에 드리는 주일예배는 “시간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일요일 11시면 예배에 참석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배순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예배순서는 시간과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동방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왔던 이콘, 성화는 “공간의 예배”의 한 가지입니다. 라틴어를 알지 못했던 과거 유럽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화가 그려진 이콘을 통해서 성서를 기억했습니다. 교회의 사제는 이콘 그림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강론하였고, 교인은 이콘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기억하면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곳 광화문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북쪽 계단에 “순례길”을 만들어 곳곳에 향린정신을 새겨넣은 것도 “공간의 예배”의 일환입니다. 일곱개 마당의 조각과 부조를 통해서 향린공동체의 신앙고백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현절을 포함하는 교회의 절기는 “시간의 예배”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인의 1년의 삶을 크게 성부의 계절, 성자의 계절, 성령의 계절로 구분하고, 그 계절에 마음을 모아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기를 바라며, 일요일 11시에 주일예배를 드리자고 우리가 약속한 것처럼, 절기를 그렇게 설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현절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예배의 시간으로 들어섬을 의미합니다. 이 계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나심의 특별한 의미들을 찾아 깊이 되새기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이른바 “산 제사"의 예배자가 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공간의 예배" 그리고 “시간의 예배" 곧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연출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시간, 그리고 우리가 처한 모든 공간에서 세상의 논리는 우리 삶을 엄습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세상의 논리에 젖어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 우리 안에서 말씀을 양육하기 위한 신앙생활입니다. 세상의 논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예배는 세상을 향한 혁명의 선언입니다. 제국의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잉태한 평화를 세상에 외치는 우리의 예배는 혁명의 도모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혁명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사건 또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은 혁명의 빛이었습니다. 죄인으로 살았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인에서 구원으로의 급격한 전환, 이것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현현, 주현절은 혁명의 절기입니다.
혁명의 “혁"자는 가죽을 의미하는 뜻글자입니다. 동물 가죽의 털을 갈고, 건조하고, 무두질로 다듬어, 쓸모에 맞춰 새롭게 했을 때 그것으로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혁명 선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으면서, 우리 자신을 갈고, 인내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무두질하여, 이 세상에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비추는 혁명가가 되기를, 이 주현절에 기도합니다.
오늘 창세기 본문에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신 것은 가장 처음 행하신 혁명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성서 전승자들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였습니다. 바벨론은 “에누마 엘리쉬"라는 신화로써 제국적 서사를 유포하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신들이 괴물들과 싸워서 이 세상과 바벨론을 창조했다는 신화입니다. 여신 에아의 아들 마르둑이 바다괴물 티아맛을 죽여서 반으로 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그 피에 흙을 이겨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폭력과 계급적 체제를 옹호하는 바벨론의 신화는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지만, 야훼의 눈에 그것은 혼돈 자체였고, 삶을 상실한 공허였으며, 깊은 어둠에 잠긴 역사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이상향에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선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빛을 창조함으로써 낮과 밤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국에 대한 거절이자 혁명입니다. 폭력과 힘의 문명인 제국에서 혼돈과 공허와 어둠의 세계를 살았던 포로들에게 생명의 빛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그것이 창세기 창조설화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탄성입니다. 제국적 질서를 거절한 하나님의 혁명이 아들에게 계승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교회에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전승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혁명이 계승되는 사건의 기록입니다. 그 혁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승되어야 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빼앗긴 자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혁명을 어떻게 계승해 나가야 할까, 이것이 주현절을 맞는 우리의 기도제목이어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본문 5절에,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그 세례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하나님의 탄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태초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혁명을 깊이 품었을 때 생동하는 기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성령의 기운으로 세례를 받았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갑진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혼돈과 공허와 어둠에 휩싸여 있습니다. 야당 대표의 생명이 위협당한 테러가 있었고, 국회가 의결하고 많은 국민들이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쌍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무지몽매한 대통령, 또 그가 한반도에 저지른 크나큰 죄악의 업보를 짊어져야 하는 현실입니다.
바벨론 포로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혁명이 올해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오늘로 시작하는 주현절, 혼돈과 공허와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성령의 거룩한 혁명이 우리에게 계승되기를 기원합니다.
침묵하겠습니다.
……
(파송사)
예배자의 삶은 혁명입니다.
태초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지,
그의 의지로 세상에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를 지어갈 혁명가 우리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