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희가 새해 둘째 주일 주현절 예배로 모였습니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 새해의 제단을 쌓습니다. 늘상 게으른 종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희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고 향린의 여러 지체들이 함께 준비하고 함께 머리 숙였사오니 하나님, 저희가 마음 모아 드리는 이 예배를 받으시고 새해에는 새 생명의 손길로 저희를 인도하옵소서.
하나님, 저희가 회개할 것이 이 연말연초에 너무도 많습니다. 저희가 한반도에 가득찬 미움과 증오의 기운을 걷어내지 못해 마침내 그것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독립운동을 온전히 한반도 통일로 이끌지 못하고 분단이라는 냉전시대 미완의 숙제로 남겨두었던 잘못이 한번의 전쟁으로 폭발했고, 이제 21세기 초반에 두 번째 열전으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모두 저희의 잘못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아슬아슬하던 한반도 정세가 지난해 가을 남북한이 경쟁이나 하듯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더니 이제 북한측은 아예 내놓고 ‘한 동족이 아니다’고 하는가 하면, 남북 서로 간에 서해에서 사격훈련을 빙자한 무력시위를 벌이고, ‘적’ 또는 ‘주적’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습니다. 북한 측은 남쪽을 향해 “전쟁을 불사한다”고도 하고 ‘초토화’ ‘대한민국의 완전소멸’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 동안 남쪽의 대통령과 통일부장관 등이 “전쟁을 불사해야 평화가 온다”고 하던 말이 부메랑이 되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정전협정이 휴지조각이 되어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분단과 전쟁 이후 수십년간 그래도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평통사 등 헌신적인 통일운동가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애쓰고 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지경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는 북에 사는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고 작은 정성이라도 모아 보내자는 말을 입밖에 내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맨정신으로는 더 이상 부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길을 열어보여 주옵소서. 저희를 당신의 도구로 보내주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고,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한반도에 反戰과 平和의 물결이 다시금 일어나고 그 모든 방해물들을 도말하시는 당신의 역사에 저희를 도구로 써주옵소서.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면, 또 누군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면 저희를 보내셔서 그 길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마음을 합하여 빕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올해는 광화문의 새 예배당에서 저희가 온전히 맞는 첫 해입니다. 이 예배당을 지키고 관리하며, 이곳에서 이뤄지는 예배와 당신의 영광을 위한 모든 순서를 준비하고 공동체를 섬기며, 나아가 이곳을 발진기지 삼아 주님의 선교를 준비하는 모든 손길들을 강건하게 하셔서 이곳 광화문의 예배당이 당신의 공동체의 보금자리가 되고 선교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이 손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 땅의 평화, 비록 점점 멀어지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가 아직은 지켜낼 수도 있는 이 땅의 평화를 일구어 나가는 작은 기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은 우리 민족사의 또 하나의 어두운 부분, 해외 입양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평생 애써 오신 김도현 목사님을 이 강단에 보내주셔서 하늘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을 해 왔는지 이 시간 깨닫게 하시고, 입양 문제를 이제 하나님의 정의의 지평에서 다시 보며 거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하옵소서.
이제 저희의 부끄러운 입을 닫습니다. 역사에 책임지지 못한 잘못을 통회하는 심정으로 돌아보며 당신의 자비를 구합니다. 이 시간 경건으로 기도하는 심령들 속에 성령의 은혜로 함께 하옵소서.
(침묵)
새해엔 푸르게 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